"요즈음 신문지상에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자주 신문지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상주시 우산리에 있는 우복 선생의 별장인 계정을 한번 돌아보고 오게 하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봤다."
어느 청백리의 별장 - 정재호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는 우복종가가 있고 그 종가 앞에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선생의 별장인 계정溪亭이 있다. 우복 선생은 명종 때 태어나 인종 때 작고하신 분인데 서애 류성룡 선생의 수제자로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역임했지만 예학자禮學者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런 높은 벼슬을 하셨지만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사셨기 때문에 초가집 별장은 아주 초라해 보였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 계정을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서애의 제자이며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낸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 보일 만큼 계정은 보잘것이 없고 초라해 보였다. 그것을 보면 우복 선생의 인품이 얼마나 고결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요즈음 신문지상에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자주 신문지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상주시 우산리에 있는 우복 선생의 별장인 계정을 한번 돌아보고 오게 하면 어떨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봤다.
어렸을 때 가을만 되면 아버지를 따라 묘사를 지내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상주 우산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우산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우산은 경치도 좋고 인심도 좋아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사람들이 도시로 많이 떠났기 때문에 지금은 큰 마을에 드문드문 집이 흩어져 있어 얼핏 보기에도 서글퍼 보인다.
우복 선생은 따님이 한 분 있었는데 용모가 조금 못났다고 한다. 따님을 결혼시키기 위해 걱정을 하니까 어떤 중매쟁이가 충청도에 사는 송씨 집안의 총각에게 중매를 잘하여서 용케 성사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의 인품을 알아 보기 위해 신부에게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아느냐고 했더니 신부가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있다가 낮은 음성으로 재가종부在家從父, 적인종부適人從夫, 부로종자夫老從子라고 대답을 하니 신랑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맨끝 구절이 틀리지 않았느냐고 했다. 신부가 조용한 목소리로 알고는 있지만 가장 즐거운 밤에 차마 불길한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사死 자 대신 늙을 노老 자라고 말씀드린 것이라고 하니까 신랑이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 신랑의 이름은 송준길宋浚吉인데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라고 하며 현종 때 우참찬, 이조판서를 지낸 학자다.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만큼 우복 선생이 존경을 받은 분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우복 선생이 별세하고 나서 종손이 제사를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곤궁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들렸다. 백사 이항복 선생이 나서서 딱한 사정을 얘기하여 조정에서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상주 우산 근처의 산과 토지(7리 정도)를 하사하여 제사를 정성껏 지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당시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송동춘당 따님이 인현왕후가 되었는데 그 왕후의 도움이 컸다는 말이 민간에서 전해오고 있다. 요즘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재산과 학벌을 중하게 여기는 일이 많겠지만 옛날에는 가풍家風을 중하게 여겼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어찌하다가 딸만 넷을 낳아 길렀으니 언제 여가를 내어 사위와 딸을 데리고 우복 종가와 우복 선생의 검소한 별장인 계정을 보고 와야겠다. 거기를 한 번 다녀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게 되지 않을까. 내 건강이 허락할 때 우산을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하다.
내 나이 금년 80세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 세워야겠다. 뉘엿뉘엿 황혼이 저물어간다.
정재호 ---------------------------------------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원종린수필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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