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오래 사는 나무로는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는 월등하게 많은 편에 속해서 이 나무에 붙여진 이름 또한 독특하다. 즉 ‘늙은 티가 난다.’고 해서 느티나무가 됐다는 것이다. 그 어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과 지근거리에서 친근하게 지냈기에 그런 이름도 붙여졌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느티나무와 할머니 - 임병식
내가 수령 250년이 넘은 노거수 느티나무 위치를 말하면서 그보다 200여 년이나 뒤에 세워진 마을정자를 언급하는 건 분명히 모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래야만 설명이 가능한 것 이외에도 나무 스스로가 밝혀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듯이 다른 지형지물을 예로 들지 않고는 위치를 나타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정자나무를 기준해서 보면 느티나무는 정자 옆으로 도로에서 비켜난 지점에 위치해 있다. 거기다가 푹 꺼진 낮은 지대이면서 외로 돌아앉아 있기 때문에 몸통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저 무성한 가지만 지붕 위로 드러나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정자는 규모는 작지만 트인 공간에 서 있어서 잘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는 해도 위치상으로 볼 때는 노거수 느티나무를 배경 삼아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뭇가지 하나가 유독 도로 쪽으로 튀어져 나와 정자 위를 마치 양산처럼 감싼 것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런 느티나무가 이번에 불어닥친 태풍 볼라벤과 덴빈에 의해서 가지 하나가 처참하게 찢겨져 버렸다. 그게 바라보는 마음을 여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꺾인 채 축 늘어진데다 그 찢긴 자리에서는 아직도 진물 같은 수액이 흐르고 있어서 고통이 진행 중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걸 보게 된 것은 산행을 하고서 하산하던 길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지름길로 내려오지 않고 마을쪽 길을 택했는데 그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상처 부위에서 흐르는 수액이 그때까지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게 사람이 흘리는 피처럼 그렇게 빨갛게 보였다면 충격은 휠씬 더 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자 가슴에서 대번에 통증이 일었다. 사람으로 말하면 살점이 찢긴 것인데 얼마나 통증이 극심할 것인가. 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방치한 상태이니 안타깝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이번 태풍은 전대미문의 피해를 입혔다. 농작물과 바다어장을 모두 초토화시켰다. 거기다가 뽑힌 가로수와 시설물의 파손은 어떠한가. 상실감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들리는 말에는 충청도의 정이품 소나무도 피해를 입고 용송도 쓰러졌다고 하는데 이것의 피해는 금액의 산출로는 불가한 것이다. 그런 만큼 안타깝고 아쉽기 그지 없다.
우리 주변에 오래 사는 나무로는 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느티나무가 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는 월등하게 많은 편에 속해서 이 나무에 붙여진 이름 또한 독특하다. 즉 ‘늙은 티가 난다.’고 해서 느티나무가 됐다는 것이다. 그 어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과 지근거리에서 친근하게 지냈기에 그런 이름도 붙여졌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런 느티나무가 이번에 큰 피해를 입고 서 있는 것이다. 얼른 꺾인 가지를 정리라도 해놓으면 좋으련만 행정당국에서는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아직도 방치해 두고 있어 지나다닐 때마다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나무는 어느 태풍에 직접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다. 하나 어느 태풍에 의해서 직접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두 개의 태풍이 다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2차 피해도 심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사는 사람을 떠올린다. 인파로 붐비는 노상에서 자리를 펴놓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인데, 그분은 끼니 잇기도 어렵게 살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식과는 10년도 넘게 연락이 끊기어 지내는데 규정에 묶여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할머니는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생계를 위해 버려진 공터를 일궈서 가꾼 채소를 가지고 나와 팔고 있다. 하지만 수입은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와 나는 수년전부터 단골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지라 내가 지나가면 버릇처럼 꼭 한마디를 던지곤 한다.
“이저씨, 이거 가져가이다. 떨어불고 어서 집에 가고 싶소.”
그러나 매번 사 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고 말면 할머니는 쓸쓸한 눈빛으로 나의 발걸음을 좇아 한참을 바라본다. 그것이 여간 부담스럽게 느끼지지 않는다. 이런 노인의 고단한 삶을 나무로 말하면 지금 가지가 꺾인 상처을 입고 있는 느티나무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느티나무는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어 아픔을 남에게 알리고나 있지만 노인은 그러지도 못한다. 가슴속 깊이 한숨과 함께 묵은 상처로 품고 살아갈 뿐이다.
임병식 --------------------------------------------------------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당신들의 사는 법≫ 외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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