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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사색의 창] 비와 찻잔 사이  - 이수진

신아미디어 2013. 2. 24. 21:45

"심리학에서 우리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하죠. 내게 기대감이 많았던 어머니와 그것을 욕망한 나. 결국 난 무기력하게도 부드럽고 다정한 어머니를 둔 친구를 부러워했죠. 내 작은 고민에도 ‘그래, 힘들겠구나.’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어머니를. 내 고민이 어머니에게 건너가면 여지없이 감당할 수 없는 선으로 넘어가 있죠. 그래서 한동안 어머니를 쳐냈어요."

 

 

 

 

  비와 찻잔 사이 이수진

 

   가을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비에 젖은 낙엽이 바닥에 달라붙어 있네요. 곱게 물든 잎은 떨어져도 시선을 붙잡더군요. 하지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채 푸르뎅뎅한 잎 그대로 떨어진 낙엽은 덜 여문 곡식처럼 가벼운 실망감을 불러오네요. 애잔한 눈으로 물들지 않은 잎을 한동안 바라보았어요. 조용히 내리는 비는 계절을 재촉하고 있고, 비를 피하지 못하는 나무의 잎들은 흩날리고 있어요.


   그대여!
   요즘의 내 말씨는 딱히 어디라고 짐작하기 어려운가 봐요.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이에게 저는 선뜻 어디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네요. 청춘시기를 보냈던 서울 말씨, 유년기를 보냈던 전라도 말씨. 현재 살고 있는 부산 말씨, 시댁이 있는 충청도 말씨가 다 섞여서 나오거든요. 생각해 보니 산 세월이 엇비슷하게 10여 년이 지났네요. 여기가 아닌 그곳을 동경하며 살았던 나의 흔적 같아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요.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이곳저곳 옮겨다니기 바빴던 서울에서는 방이라도 한 칸 얻을 수 있는 친구가 가장 부러웠고, 부산에서는 이 골목 저 골목 속속들이 알고 있는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표정의 토박이가 부러웠으니까요.
   창밖에는 떠도는 잎들이 내 방황의 증거처럼 눈에 박힙니다. 10대 여학생 시절에 열정을 쏟았던 분야.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에서 공부한 분야가 각기 다르거든요. 꾸준히 한 우물을 파 온 사람에 비하면 어느 것 하나 내놓을 만한 것이 못 돼요. 곱게 물들지도 못한 채 한철을 마감하고 쓸려내려 가는 잎들에 마음이 부대낍니다.
   그대는 언젠가 제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의 슬픈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이 사무쳐 슬픈 눈빛을 지닌 그대여, 저는 어머니를 ‘무늬만 엄마’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보통은 ‘어머니’라는 한마디에 눈가가 적셔 와야 일반적인 우리의 정서일 텐데. 저는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만 봐도 뒷걸음질쳐져요. 그 강한 눈빛과 상대를 제압하는 말씨에 벌써 주눅이 들거든요. 어디 그뿐인가요. 그런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큰 행사에서 진가를 발휘하며 주위 사람들을 모두 굴복시키죠. 아니 감탄하게 만들어요. 오래전 오빠의 결혼식이 생각나요. 주례를 맡아주신 지역 시장님이 촌부인 어머니의 부탁에 꼼짝 못하고 불려나왔다는 일화와 연배가 훨씬 많은 동네 아주머니들을 손짓 하나로 다 부리고 있었다는 것이요. 또, 중국 여행 중의 일화는 듣는 이를 통쾌하게까지 만들었죠. 관절염이 심한 어머니는 가마꾼들의 가마로 산 정상까지 이동했는데 장정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달해서는 처음 약속한 금액의 두 배를 요구했다더군요. 일행과 떨어진 깊은 산속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국인들에게 어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렇게는 못 준다. 아니 약속한 금액도 못 주겠다. 너희들이 나를 처음 있었던 자리로 다시 되돌려 놓아라.” 호통을 쳤다더군요. 그 장정 둘이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 기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했다더군요. 그런 기세를 가진 멋진 분이라고 타인들은 인식하고 있어서 더욱이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서 결핍된 부분을 인식하기가 어렵더군요.
   심리학에서 우리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하죠. 내게 기대감이 많았던 어머니와 그것을 욕망한 나. 결국 난 무기력하게도 부드럽고 다정한 어머니를 둔 친구를 부러워했죠. 내 작은 고민에도 ‘그래, 힘들겠구나.’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어머니를. 내 고민이 어머니에게 건너가면 여지없이 감당할 수 없는 선으로 넘어가 있죠. 그래서 한동안 어머니를 쳐냈어요. 뒤늦게 내 안의 ‘유아기적 환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어머니와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자아였음을 대학원공부 중에 알았어요. 억압된 자아를 지닌 사람은 자신을 표출하는 데 상당한 저항감과 불안을 느끼죠. 약간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순진해서 남을 쉽게 믿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서툴죠. 그리고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몰아가요. 내가 찾아 헤맨 환상이 무엇이었나를 뒤늦게 알았어요. 환상을 가진 내가 선택의 순간마다 엇갈린 길에 또 들어서 버린 것을 후회했죠.
   한동안 그 환상의 노예였던 자아와 결별을 하고, 소원해졌던 어머니와 다시 편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의 힘입니다. 긴 갈등의 시간, 저는 많은 곳을 헤매고 있었던 거예요. 그건 더욱 외로워지는 길이었어요.
   내게도 두 딸이 있어요. 나를 닮은 듯 닮지 않은 큰애와 나를 닮지 않은 듯 닮은 작은아이, 큰애를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말이 안 통한다고 샐쭉 토라져버리는 모습에 마음 한편이 굳어지거든요. 그래도 내겐 잘 통하는 작은아이가 있어서 어머니보다는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은 날엔 “어, 엄마! 안 좋은 일 있었어? 이 달콤한 초콜릿 먹고 마음 풀어.” 작은아이 말에 뭉친 곳이 풀립니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도 비가 내리겠죠. 제 갈 길을 알고 과감히 떨어져 내리는 잎들. 계절은 그렇게 깊어갑니다.


   그대여!
   차가 식어갑니다. 그대 어느 곳에서든 잘 계시길.

 

 

이수진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