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솟대가 걸린 하늘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으리라. 고개를 들면 하늘로 가는 길이 보이니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기대감 하나로 찢어지는 가난과 맞섰을 것이다. 솟대를 앞에 두고 피사체로 인식하는 나의 속된 욕심과 그들의 열망이 너무 대조적이다 싶어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솟대 - 이승수
내가 처음 솟대를 만난 곳은 지리산 피아골이었다. 새색시 볼 빼어 닮은 철쭉꽃 보러 ‘임걸령’ 가던 길 대피소 앞에서였다. 산은 여느 봄날과 마찬가지로 구름에 덮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지척불변의 상황이었다. 늘 있는 일이니 잠시 기다릴 양으로 툇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沼를 휘돌다 좔좔 떨어지는 계곡물 소리만이 하얀 정적을 깨는 산채山寨가 꿈속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처마 위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구름숲을 헤집다 사라진다 했더니 바람이 일 때마다 나타나서는 허공을 박차고 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저렇게 절절한 몸짓을 하는가 싶어 바짝 다가서서 살펴보니 오목가슴이 장대에 꿰어져 있는 게 아닌가. 고동색 막대기에 매단 정교한 새의 형상물, 솟대였다.
“우리 선조가 이곳에서 직전稷田을 일구던 시절, 배고픔이 서러워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힘이 솟았다는 거야.”
산장지기 함 씨의 말이다. 그는 하늘 길을 굳게 믿는 것 같았다. 천신의 전령사로 불리는 솟대를 자나깨나 돌보고 있으니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한때는 오리나 까마귀를 세우기도 했지만 주로 기러기 형상이 올려졌다는 말로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솟대와 함께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한恨 덩어리여!”
“화전민들의 땀과 눈물이란 말이여!”
그의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주변을 살피는 표정에서 세월의 고초를 느낄 수 있었다.
일리 있다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솟대를 올려다보았다. 날렵해 보이는 몸매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번득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환희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운집한 많은 사람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줄기 섬광이 번쩍였다. 새가 구름을 뚫고 비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솟대가 걸린 하늘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으리라. 고개를 들면 하늘로 가는 길이 보이니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기대감 하나로 찢어지는 가난과 맞섰을 것이다.
솟대를 앞에 두고 피사체로 인식하는 나의 속된 욕심과 그들의 열망이 너무 대조적이다 싶어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지리산 피아골은 태곳적 원시림과 함께 만 가지 생명체가 요동치는 곳이다. 특히 가을은 아름다운 단풍이 만산을 뒤덮는 화조풍월花鳥風月인지라 꿈의 골짜기로 꼽힌다. 그날 이후 나는 이곳에 가는 목적을 달리 했다. 솟대의 꿈 앞에서 딴전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솟대의 삶을 밀착해서 살피기 시작했다. 단조로우면서도 청아하며 기품이 있는 솟대의 움직임이 속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봄날의 솟대는 운애雲靉 속에서 메아리를 부른다. 여름이면 함초롬한 이슬 꽃 피우고 노닐다가 가을에는 단풍 숲에 다소곳이 몸을 감춘다. 겨울에는 삭풍의 언저리에 꼿꼿이 서서 하늘 길 술래가 된다.
어느 날 청학동에서 삼신봉을 오르던 차에 길옆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솟대 형상의 가로등을 보며 놀란 적이 있다. 새를 조각하여 뱃속에 전구를 끼우고 불을 밝혔던 것이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것은 솟대의 꿈을 아니 사람의 희망을 가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등燈 너머로 선인들이 노닐던 하늘이 파르라니 떨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봄이 되어 다시 피아골에 갔다. 청량한 소리를 머금은 솟대를 만날 것이라는 기대로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밋밋한 구름만 휘도는 허망한 하늘과 마주하게 되었다. 구름 지나는 길목을 지키고 있어야 할 솟대가 사라지고 없었다. 임들의 그 많은 기원이 한꺼번에 곤두박질쳐버린 것 같았다. 이제 배부른 세상이 되었으니 하늘에 안 가도 된다는 말인가. 하늘이 사다리를 거둬버리면 어쩌지? 얼마 전 하산했다는 함 씨가 궁금했다. 사다리를 기다리던, 사시장철 솟대를 향해 도닥거리던 내 마음이 온통 컴퓨터에 저장된 솟대 사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피아골 대피소 옆 솟대는 컴퓨터로만 봐야 한다. 솟대가 떠난 공간에 화전민의 설화도 산장지기 함 씨도 없다. 나도 없다.
이승수 --------------------------------------------------
≪수필과비평≫ 등단, 영화에세이 ≪울면 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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