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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사색의 창] 사돈을 기다리는 방 - 정성화

신아미디어 2013. 2. 25. 18:29

"사돈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 자식을 나누는 일이다. 밥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것도 즐겁지만, 자식을 나누는 것만큼 의미 깊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내 아들을 사위로 내주고, 대신 그 집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는 것이니, 해석에 따라 물물교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은 ‘원 플러스 원’ 행사다. 아들과 며느리 둘 다 내 사람이니 말이다. 사돈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돈을 기다리는 방  정성화

 

   여행을 떠나는 날, 집합 장소에 하나 둘 모여드는 여행자를 보고 있으면 벌써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어떤 모임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이는 얼마쯤이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여행과 함께 이런 궁금증들이 풀리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지난 여행에는 사돈끼리 온 팀이 있었다. 의외였다. 행여 자식에게 누累가 될까 봐 격식과 예의를 차리는 사이, 그러다 보면 부담스러워 가급적 피하고 싶은 관계가 사돈이라던데, 사돈과 함께 해외여행을 오다니……. 나는 공연히 마음이 씌어 간간이 그들의 안색을 살폈다. 아들네 부모는 시골에서 한우를 기르고 있다고 했고, 딸의 부친은 고위직 공무원이라 했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들네 부모와 희고 팽팽한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딸네 부모는 옷차림도 무척 대조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이번 여행 팀 중에서 가장 위험한 조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그 반대였다. 서로에게 맛있는 걸 권하느라고, 또 사양하느라고 그들이 앉은 식탁은 늘 부산스러웠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면 그들이었고, 안사돈끼리 손을 잡고 다닐 때도 있었다. 궁금증을 더 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사돈끼리 그렇게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얼~매나 고맙노. 딸을 자알 길러서 우리 집에 줬으니께.”
   “아이고, 사돈 무슨 말인교. 우리 김 서방 같은 사위는 이 세상에 다시 읎으요.”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감사의 말이 오고갔다. 그들에 대한 내 걱정은 이내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사돈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 자식을 나누는 일이다. 밥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것도 즐겁지만, 자식을 나누는 것만큼 의미 깊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내 아들을 사위로 내주고, 대신 그 집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는 것이니, 해석에 따라 물물교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실은 ‘원 플러스 원’ 행사다. 아들과 며느리 둘 다 내 사람이니 말이다. 사돈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식장에 가 보면 양쪽 혼주들이 모두 벙글벙글 웃고 있는데, 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돈’ 하면, 나는 왠지 흥부전이 연상된다. 제비가 물어온 박씨, 마침내 여문 박, 박을 타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들. 조금 더 풀어 쓰면 이렇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인연의 씨앗을 함께 품어 정성껏 싹을 틔운 뒤,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때 그들의 부모에게 돌아오는 선물이 바로 사돈이 아닌가 싶다.
   사돈끼리는 같은 ‘펜클럽 회원’이라 할 수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세상을 그들이 원하는 색으로 물들여가는 걸 지켜보면서, 같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새내기 부부 전선에 어떤 이상 기후가 덮치거나 마음 도둑이라도 들까봐 걱정하고, 때로는 119보다 더 빨리 출동하여 급한 불을 꺼주기도 하는 ‘사설 기동대’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끝까지 응원석을 지키며 앉아있는 사람들, 그래서 사돈끼리 뭉치면 대한민국 최강의 드림팀이 되는 것이다.
   ‘사돈’ 하고 소리를 내어본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되고 높은 음도 아니다. ‘ㄴ’받침이라 어감이 단정한 게, 예의가 내장되어 있는 말 같다. 우리 부부만큼 내 아들 딸을 걱정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동지’가 생긴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그러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고 애는 썼지만, 우리도 모르게 놓친 부분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오랫동안 만들어 온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봉을 앞둔 감독처럼 마음이 초조해진다.
   결혼 준비를 하는 중에, 혼수나 신혼집을 장만하는 문제로 사돈끼리 마음을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하면 부디 잘살아야 한다고 한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다른 한 손으론 예비 가정에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격이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이 대화를 할 때 큰 쪽에서 약간 허리를 숙여주는 게 필요하듯, 형편이 나은 쪽에서 먼저 사돈을 배려하고 이해한다면, 결혼 준비도 하나의 축제처럼 진행되지 않을까. 만나면 즐겁고 마음이 편해지는 사돈을 만나려면, 내가 전생에 쌓아놓은 덕이 많아야 할 텐데…. 신神의 장부를 감히 보여 달라 할 수도 없고, 나는 그저 사돈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오늘 저녁, 아들의 전화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한 옥타브쯤 올라가 있었다. 엄마의 직감이란 강력계 형사보다 더 예리한 법, 역시 좋은 일이 있었다. 직장 선배의 주선으로 한 아가씨를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에 내 마음은 이내 ‘조심 모드’로 바뀌었다. 부디 이번에는 제대로 싹이 트는 ‘박씨’였으면 좋겠다.
   마음이 울렁거린다. 이제 내 마음에 새로 방 하나를 들여야 하는 걸까, ‘사돈을 기다리는 방’을.

 

 

정성화  ----------------------------------------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집: ≪소금쟁이 연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