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관세음보살!’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외우시던 이 염불의 나무와 뜰의 나무가 그만 하나로 어울리게 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염불하는 ‘나무’는 한자로는 ‘南無’라고 쓰는데, 그것은 부처에게 귀의歸依한다는 뜻이다. 부처에게 믿음 바쳐서 섬기고 모시고 함을 의미한다. 한데 나는 ‘나무南無 나무木!’, 곧 ‘나무木에 귀의하나이다.’ 하면서, 나무에게 사랑 바치고 나무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지경에 가깝도록 나무木를 섬기고 떠받들고 있는 셈이다. 한데 그 질긴 인연 탓으로 나무를 두고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좀체 겪기 어려운 신기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로 해서 가을철에 봄맞이를 하게 된 것이다."
가을이 봄을 품고서 - 김열규
나는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 가족들에 버금해서 아끼고 사랑한다. 나무 돌보기는 나의 생활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전지剪枝, 이를테면 가지치기를 비롯해서 나무 손질하기는 여간 흥겨운 게 아니다. 싹둑거리는 가위질 따라서 번지는 진액의 향을 따라서 나의 숨결이 파릇파릇 설레고 든다. 그것은 일하기가 아니라 바로 취하기다.
그래서 나무로 우거진 700평 넘어 되는 뜰은 정원이기보다는 삼림이고 숲이다. 집의 양 옆과 뒤가 산으로 에워져 있다 보니, 뜰인지 산인지조차 가리기 쉽지 않을 정도다.
20여 년 전, 서울에서 옮겨 왔을 때, 이삿짐으로는 살림살이나 가구보다는 나무가 더 많았다. 다섯 트럭, 가득 실려 오는 나무들이 흔들대면서 신명을 돋우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보다 나무가 이사하는 몫이 더 크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지척의 온 산이 나문데, 별나다.’
그렇게 흉을 보기도 했다.
그 뒤로 긴 세월이 가는 동안, 안뜰은 안뜰대로 바깥뜰은 바깥뜰대로 각기 제법 큰 연못을 끼고 수풀로 우거져 있다. 상록수와 낙엽수, 활엽수와 침엽수, 관목과 교목 등등 그 가지 수는 낱낱이 헤아릴 수가 없다.
그렇게 나무를 에워서 살고 나무에 의지해서 살다 보니, 내게는 나무로 말미암은 색다른 생각이 움텄다.
‘나무 관세음보살!’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외우시던 이 염불의 나무와 뜰의 나무가 그만 하나로 어울리게 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염불하는 ‘나무’는 한자로는 ‘南無’라고 쓰는데, 그것은 부처에게 귀의歸依한다는 뜻이다. 부처에게 믿음 바쳐서 섬기고 모시고 함을 의미한다.
한데 나는 ‘나무南無 나무木!’, 곧 ‘나무木에 귀의하나이다.’ 하면서, 나무에게 사랑 바치고 나무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지경에 가깝도록 나무木를 섬기고 떠받들고 있는 셈이다.
한데 그 질긴 인연 탓으로 나무를 두고서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좀체 겪기 어려운 신기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로 해서 가을철에 봄맞이를 하게 된 것이다.
11월도 하순, 남도 땅이라서 그런지, 이제야 온 뜰 안에 가을이 넘쳐난다. 꽤나 넓은 잔디밭이 온통 누렇게 시든 위로 갖가지 나무들이 곱게 물들어 있다. 노랑, 빨강에 갈색까지, 색색인 채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서는 눈이 부시다. 바야흐로 단풍의 철이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알록달록, 수북하게 단풍든 잎들 사이로 뭔가 파릇파릇한 게 눈에 띈다. 눈여겨보니, 갓 돋아 오른 푸른 잎들이다. 뜻밖이다. 철이 늦가을임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런 중에도 이른 봄날의 눈엽[嫩葉]인가 싶어지는 새파란 잎이 수북한 한 그루의 나무가 별스럽게 눈에 든다. 그것은 가죽나무다. 키가 다른 나무들을 웃도는데다 가지들이 꽤나 넓게 펼쳐져 있어서 계절을 벗어나 있는, 그 푸른 잎들이 사뭇 별나 보이다.
상록수 아닌 , 나무들이 하나같이 잎들이 더러는 찌들고 시들고 하는 한편으로 단풍으로 물드는 판에 연녹색의 어린 싹이, 파르란 잎사귀가 돋아오르다니, 무슨 기적 같다.
‘뭘 잘못 보았나?’
하고는 눈을 닦고 눈알을 부라려 보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가죽나무만 그런 게 아니다. 덩달아서 눈에 드는 옆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갈잎들 새로 초록 이파리가 두드러져 보인다.
한 나무에서도 가지들이 마치 남남끼리이듯이 그 지경이다. 찌들어 빠지거나 이울어 터진 잎이 달린 바로 그 옆 가지에서는 새잎이 파랗게 나 보란 듯이 팔랑대고 있다. 심지어 한 가지에서도 갈잎과 초록 잎이 한데 어울리고 있다.
이게 웬일일까? 이게 무슨 궤변인가?
한참을 궁리하고 또 한 끝에서야 겨우 생각이 잡힌다.
지난날, 이른 여름 동안에 태풍이 세 차례나 이 바닷가 마을에 휘몰아쳤다. 밤낮으로 폭우와 짝지은 폭풍이 난리를 쳤다. 겨우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굵은 나무들마저 몇 그루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간신히 버티고 선 나무들의 가지는 별로 성한 게 없이, 부러지고 꺾이고 했다. 그러니 잎들이 성할 턱이 없었다. 추풍낙엽이 아니고 하풍낙엽으로 나무들은 발가벗다시피 했다. 겨우 겨우 낙엽을 면한 잎들은 모조리 혹은 찢기고 혹은 찌들거나 시들고 했다.
그런 판에 여름 넘기고 늦가을에 접어든 시기에 앙상한 그 나무들에 문득 새잎들이 돋아난 것이다. 말라빠진 것 같은 가지들마다, 시든 잎들이 매달린 가지마다, 놀랍게도 초록빛 잎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지?’
자연의 일대 변이 앞에서 나는 넋을 잃었다.
늦여름이 갓 지난 , 초가을이긴 해도, 잎이 시들거나 떨어지거나 했기에, 나무는 그만 겨울이 온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런 다음 시간이 제법 오래 지나가자, 봄맞이 하듯이 새잎들을 움트게 한 것이라 여겨진다. 나무의 생리로나 섭리로나 그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마땅할 것 같다.
곡절이야 어떻든, 11월의 가을에 내 눈앞의 나무들은 봄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춘추를 함께 갖춘 우리 집의 뜰, 나는 자연의 또 다른 로고스에 삼가 고개 숙였다.
김열규 ---------------------------------------------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평론), 저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공부의 즐거움≫,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 ≪한국의 문화 코드 열다섯 가지≫, ≪기호로 읽는 한국문화≫ 외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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