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는 잔소리에도 치를 떠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학교에서까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시험을 쳐야 하는 애들이 나를 친구의 엄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믿어 주리라.’ 다짐하는 엄마의 양심을 집에다 두고 와야만 했던 내게도 지금 눈앞에 있는 애들이 더 이상 우리의 자식일 수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하다. 기득권자의 횡포라고 말하면 과한 표현일까."
시험 감독을 마치고 - 김숙현
교실 창 너머로 커튼이 펄럭인다. 꼭대기에 걸린 고리를 풀지 못해 날 수 없는 커튼은 이미 태양을 가려주는 순기능을 초월했다. 마음껏 날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나폴거리는 끝자락마다 매달려 대롱거린다. 그를 도와주려는 듯, 바람이 한소끔씩 불어 주지만 창틀에 끌리는 자락은 오히려 검은 먼지들만 품을 뿐이다. 새까만 끝자락을 보니 저 고리를 벗어나려 무던히도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과거 어떤 정치인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고 간절히 말했던 때가 있었다. 모든 인간관계의 근원이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부터 이 세상에는 불신이 존재했다. 그리 말하면 불신은 원초적이라는 말이리라. 조물주도 어쩌지 못해 사랑하는 인간을 지상낙원에서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거짓말, 속임수, 배신. 그 말들을 지금 여기선 그럴듯하게 ‘커닝’이라 규정하고 애들을 감시하란다.
‘창의반’이라는 표지판 아래로 열려 있는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아직은 비릿한 젖내를 품길 만한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평소 교문 앞에서 딸을 기다릴 때 몇 번 마주친 기억이 나서 옅은 미소를 보였지만 아이는 먼저 고개를 돌려 버린다. 예의가 없다는 생각은 사치임을 안다. 오히려 미안할 뿐이다. ‘학부모 명예교사’라는 명찰은 ‘시험 감독 보조’라는 말을 미화했을 뿐이라는 걸 모르는 애들이 없다. 엄마가 하는 잔소리에도 치를 떠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학교에서까지 엄마의 눈치를 보며 시험을 쳐야 하는 애들이 나를 친구의 엄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믿어 주리라.’ 다짐하는 엄마의 양심을 집에다 두고 와야만 했던 내게도 지금 눈앞에 있는 애들이 더 이상 우리의 자식일 수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하다. 기득권자의 횡포라고 말하면 과한 표현일까. 교실 분위기가 야릇하다. 일학년 한 줄, 삼학년 한 줄 섞어 앉혀 놓은 것만으로도 한 겹 방어는 해 둔 듯하지만 앞은 선생님이 지키고 뒤는 엄마가 맡으란다.
열 평 남짓한 사각형 공간 안에 크고 작은 애들을 골고루 모아 두고 ‘엘리제를 위한다’는 멜로디를 들려줌으로써 어른들이 정해 둔 제도 속으로 애들을 몰아가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서도, 옆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말소리는 더더욱 불허하며, 뒷좌석에서 앞 학생의 시험지가 보이도록 해서도 안 되는 규율들을 누가 누가 더 잘 지키나 감시하며, 동시에 잘 지킬 수 있도록 무언의 압박감으로 조정해야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이다. 내가 규정과 애처로움 사이에서 주저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이미 잘 길들여진 애완견마냥 성적을 잣대로 줄 세우기 하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수학 문제들은 며칠간의 시험으로 지친 애들에게 수면제로 작용하는 듯하다. 십 분, 이십 분,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를 푸는 애들보다 책상에 엎드린 애들이 더 많아진다. 누가 이 애들을 조정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커닝이라도 해서 성적을 올리려는 애살이라도 보여 준다면 측은하지는 않을 텐데, 한창 꽃망울을 맺는 나이에 쉽게 포기해 버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학창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나 역시 공부가 지겨워질 때마다 그 말을 곱씹으며 책으로부터 탈출할 궁리를 하곤 했다. 세월이 지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더라도 역시 행복이 성적과는 무관함이 보인다. 간혹 우수했던 성적만큼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반드시 행복지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닐 터. 지겨운 오후 한때 다음 채널에 무슨 프로가 방송되는지 알고 있지만 버릇인 양 채널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구태의연함 속에 길들여진 기성세대들은 내가 살아 온 인생길이 수십 년 후에도 반복되리라 생각하며 낡은 제도 속으로 애들을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들이 앞으로 펼쳐질 새 나라의 기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명 한 명 애들이 책상에 고개를 파묻으며 현실을 벗어나 꿈속으로 줄달음치고 있을 즈음 다시 한 번 엘리제를 위한다는 멜로디가 흐르고 나의 느슨한 시선 또한 맥이 풀어져 버렸다. 며칠간의 긴박한 조정 속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고장 난 로봇마냥 주인의 조정을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질주를 따르지 못하는 성능 약한 리모컨들은 멀리서 시험의 결과를 궁금해하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교정을 빠져 나오며 뒤돌아본 학교는 애들의 보금자리가 아닌 듯하다. 눈에 띄지 않는 무수한 감시의 전파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꽂히는 듯하다. 애들이 빠져 나간 빈 교실에는 내일 다시 새로운 역할을 할 또 한 부류의 리모컨들이 지도감독이라는 명분 아래 준비를 하고 있겠지. 애들이 남기고 간 미련들을 날려 보내려는 듯 열려진 창 너머로 여전히 커튼이 펄럭이고 있다. 언제쯤 저 고리에 매달린 애들의 자유를 풀어 줄 수 있을까?
김숙현 ----------------------------------------------------
계간 ≪문장≫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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