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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노봉방주露蜂房酒 - 임영주

신아미디어 2013. 2. 6. 21:18

"말벌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험한 곤충이지만 한방에서는 유용한 약재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초강목≫에 말벌집露蜂房이 “풍을 물리치고 독을 없애며, 종기도 삭게 하고 통증을 멎게 한다.”라고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해소 천식에 좋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각종 서적들을 보니 살아있는 벌과 함께 담근 노봉방주는 각종 질환에 좋다고 하였다. 일부러 말벌 집을 채집하러 다닐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 채취하면 술을 담가 보기로 했다."

 

 

 

 

 

  노봉방주露蜂房酒  임영주

 

   서울에 있는 큰아들이 시제時祭에 참석하기 위하여 고향집에 들렀다. 집안을 둘러보더니 구석에 세워 둔 담금주가 궁금한지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아버지, 노봉방주가 뭡니까?”
   “응, 귀한 약술이지.”
   “곤충들을 잡아 약술을 담그면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해충이야.”
   자연 사랑이 남다른 큰아들다운 질문이었다.
   얼마 전 휴일이었다. 고향집을 방문한 친척 여동생이 베란다에서 갑자기 “아야,” 하는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손등을 벌에 쏘인 것이다. 즉시 벌침을 뽑아내고 약을 발랐으나 퉁퉁 부어올랐다. 통증에 고통스러워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진정되는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소동이 끝난 후 주변을 살펴보니 처마 끝에 물결 무늬가 있는 축구공 크기의 말벌집이 있었다. 벌집의 조그마한 출입구로 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으며 두세 마리는 입구를 맴돌면서 경계하고 있었다. 말벌은 낮에 왕성하게 활동하며 때로는 사람을 쏘아 절명하게 하는 등 위험한 벌이다. 벌은 밤이 되면 방향 감각이 둔해진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저녁에 제거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날씨가 어둑해지자 비옷을 입고 얼굴과 손 등을 무장한 채 손전등으로 벌집을 비추니 두세 마리의 벌이 입구에 있었다. 외부로 들락거리는 벌은 없었으나 빛이 닿는 순간 위험을 감지했음인지 안에서 빠른 속도로 벌이 나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들이 둥근 벌집을 새카맣게 둘러쌓았다. 살충제로 간단하게 처리하려 했으나 벌이 너무 많아 일시 중단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나 벌집을 살펴보니 경계 벌만 입구를 지키고 조용하였다. 이때다 싶어 살충제를 분사하였더니 입구의 벌이 떨어졌다. 계속하여 벌집 안쪽으로 살충제를 쏘아댔더니 안에서는 토닥거리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벌들이 필사적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입구가 아닌 다른 곳을 뚫고 나오기에 살충제로 습격했더니 베란다 바닥에 많은 벌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장용 비닐 포대에 벌집을 따 넣으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음날, 말벌집 제거 소식을 들은 뒷집 손 회장께서 농장에 있는 말벌집 처리를 부탁하였다. 다음 주말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하고 마산 집에 내려왔다. 말벌집을 안전하게 제거하기 위하여 말벌에 관한 특성 등을 조사해 보았다.
   말벌은 곤충 분류에서 벌목에 속하지만 꿀벌과는 전혀 다르다. 몸집이 크며 참나무 등의 수액을 섭취하기도 하지만 육식성으로 상당히 공격적이고 독성이 강하다. 특히 꿀을 모으지 않으며 꿀벌을 공격하여 꿀을 탈취하기 때문에 양봉 가에서는 무서운 적이다. 매년 개체수가 늘어나 인명피해도 늘어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되는 해충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말벌이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험한 곤충이지만 한방에서는 유용한 약재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초강목≫에 말벌집露蜂房이 “풍을 물리치고 독을 없애며, 종기도 삭게 하고 통증을 멎게 한다.”라고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해소 천식에 좋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각종 서적들을 보니 살아있는 벌과 함께 담근 노봉방주는 각종 질환에 좋다고 하였다. 일부러 말벌 집을 채집하러 다닐 필요는 없지만 이번에 채취하면 술을 담가 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현장을 먼저 답사하였다. 우선 벌집의 크기가 한 아름 정도 되는 엄청난 크기였으며 주변을 보니 혼자서는 작업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전번에는 벌집을 떼어내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벌집을 훼손하지 않고 벌을 생포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위험이 예상되었다. 아내를 설득하여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안전장구를 점검하면서 한밤중에 행동을 개시하기로 하고 예행연습도 해 보았다.
   밤 11시쯤 현장 100여 미터 가까이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전보다 보강된 보호구를 착용하였다. 두려워하는 아내에게 비상대비책을 알려주고 30여 미터 근방에 대기하도록 하였다. 나 혼자 살금살금 벌집 가까이 접근해보니 경계 벌만 두세 마리 있었다. 준비해 간 밀가루 반죽으로 단시간에 입구를 봉하였다. 그리고는 세 겹으로 겹친 비닐 포대로 바위에 달려있는 벌집을 씌운 후에 떼어 내는 데 성공했다. 아내에게 큰소리로 성공을 알리고는 벌집 포대를 들고 황급히 달려 나왔다.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밤에 당한 보쌈에 발버둥치는 벌들의 소리가 따다다닥 요란하게 들렸다. 집에 도착하여 벌들의 활동을 중지시켜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기에 벌집이 들어 있는 비닐 포대를 냉장고 냉동실에 넣었다.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움직이는 기척이 있었다. 아마도 냉동실에서 견디는 것은 세 겹 비닐 포대에 파괴되지 않은 벌집의 보온효과 때문인 것 같았다. 술 담글 준비를 마치고 벌들이 조용한 것 같아 포대를 꺼내 둥근 집을 뜯어보니 안쪽에는 7층으로 쌓은 집이 있었다. 그 속에는 움츠린 500여 마리의 벌과 애벌레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벌이 깨어나기 전에 처리해야 하기에 3.6리터 담금주 병에 말벌 100여 마리와 애벌레가 있는 벌집을 나누어 바쁘게 넣었다. 그런데 벌이 하나 둘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병에 넣기 전에 벌들이 깨어난다면 큰일이다. 서둘러서 작업을 했지만 마지막 병에 넣기 직전 몇 마리의 벌이 기지개를 켰다. 놀란 아내가 순간적으로 벌을 손바닥으로 덮쳤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일부 담금주가 엎질러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황한 나는 날아가는 말벌 위에 커다란 보를 덮어 위기를 모면하였다. 주변을 정리하고 아내의 손까지 치료하고 나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한참 후에야 마음의 평정을 찾았으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흥건하였다. 노봉방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기준에 따라 익충과 해충을 구분하고 있다. 말벌도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벌레 들을 잡아먹는 익충의 역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에 해충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해충 퇴치 작전에서 얻게 된 노봉방주가 좋은 약효까지 보장된다면 일석이조에 금상첨화가 아닐까.

 

 

임영주  ----------------------------------------------

  ≪수필과비평≫ 등단,  산문집: ≪소나무는 흙을 탓하지 않는다≫,  현, 마산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