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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구채구九寨溝에서 지금 - 오순자

신아미디어 2013. 2. 5. 18:09

" 그들의 얼굴에 반세기 전의 우리 어머니들 얼굴이 오버랩 된다. 세상살이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맞설 수 없는 미지의 힘에 겸손히 머리 숙여 비는 마음. 자신이 가진 가장 정결한 마음을 정화수에 담아서 일상을 시작하기 전의 첫 시간을 자연의 신에게 바쳤던 마음이다. 지금은 시골 할머니들에게서도 사라져 가는 풍습이다."

 

 

 

 

  구채구九寨溝에서 지금  오순자

 

   수많은 영웅들이 뽑히는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
   피부색이 다른 세 사람이 금, 은, 동메달을 입에 문 채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다.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 선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일이 내 생활의 전부였어요!”라고 말한다.
   그 얼굴에서 희열이 넘치는 미소가 겹겹이 쌓여 돌처럼 굳은 인내와 피로를 덮는다. 그들은 소박한 일상의 기쁨을 외면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 자신의 한 가지 능력을 확장시키는 일에만 매달려 왔다. 마침내 메달을 목에 건 신화의 영웅이 되었다.
   부자연스러운 신화.
   자연을 인간에게 예속시킨 문명사회에서 신화는 더 이상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무리無理한 훈련으로만 만들어지는 영웅. 그래서 겨룸 터에서 내려온 영웅들이나 패배자들이 평범한 일상생활에 무리 없이 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카메라가 삼 대째 심마니로 살아가는 산골부부의 생활을 따라간다. 깊은 산속에 있는 외딴 집에서 그들이 길을 나선다. 오늘은 약초를 캐러가는 날이다. 부부는 집 앞 개울가에 동물 얼굴의 큰 바위 앞에 옹달샘에서 떠온 물 한 그릇을 놓고 절한다. 부정한 일을 하면 반드시 몸을 다친다고 말하는 그는 자연은 바르게 사는 사람의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경험에서 얻은 자연의 힘에 대해 경외심을 표하므로써 자신도 자연의 일부이고 그곳을 관장하는 신이 보호해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비탈로 올라간다.
   그들의 얼굴에 반세기 전의 우리 어머니들 얼굴이 오버랩 된다. 세상살이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맞설 수 없는 미지의 힘에 겸손히 머리 숙여 비는 마음. 자신이 가진 가장 정결한 마음을 정화수에 담아서 일상을 시작하기 전의 첫 시간을 자연의 신에게 바쳤던 마음이다. 지금은 시골 할머니들에게서도 사라져 가는 풍습이다.
   중국의 벌목꾼들이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는 말을 퍼트리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구채구. 그 안에 티베트인들이 사는 아홉 개의 마을이 있다. 수십 개 호수의 짙푸른 비취색 물은 삼천오백 미터까지 솟아 있는 예리한 산들에 둘러싸여 신비감을 자아낸다. 거울 같은 물이 산들을 품고 있어서 물속에 들어있는 세상은 그들이 숨겨놓은 신선들의 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속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뿌리째 가지를 펴고 누워서 햇빛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 뿌리를 덮고 있는 얄팍한 흙에다 가녀린 뿌리를 벋고 물 위로 줄기를 밀어올린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손바닥 위에 서서 재롱을 부리는 손자 같다. 그들은 나무에 숲의 정령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쓰러져도 손을 대지 않고 자연히 소멸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곧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다.
   지금 그렇게 보존된 자연 때문에 온 세상에서 인간들이 문명의 도구들을 가지고 몰려든다. 중국 정부로부터 기득권을 인정받은 토착민들이 관광 일체를 주도하고 있다. 매일 입장료로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고, 그 구역 안에서는 원주민들만 일할 수 있다. 산꼭대기까지 깔린 아스팔트 위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를 운전하고, 삼만 명이 이용하는 식당을 운영한다. 촌장은 관광객들이 쏟아놓고 간 돈의 이익금을 천구백 명의 주민들에게 일 년에 몇 천만 원씩 분배한다고 한다.
   그들은 돈을 손에 쥐고, 문명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우화羽化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지 않아 그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은 신화가 만들어지는 숭배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자연은 지배해야 할 대상이고,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바람처럼 변해가는 속도가 눈에 보인다. 오래지 않아 신들이 죽은 그곳에서 올림픽 영웅이 나타날 것이다.

 

오순자  ----------------------------------------

   ≪뉴욕 한국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에세이문학≫, ≪계간수필≫ 추천 완료, ≪생활 속의 글쓰기≫ 외 공저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