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 창가에 앉아 별빛을 안고 차를 마신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은 모두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지금 기대고 앉아 편히 쉬고 있는 의자와 향기로운 차 한 잔. 아내가 정성껏 가꾸어 놓은 화분의 화초들, 새벽 일찍 문 앞에 갖다 놓은 아침 신문, 그 밖에도 내가 의지하고 있는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을 만들어준 사람의 고마움을 언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세밑에서 - 신규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은퇴 후 남은 7만 시간을 두려워하는 노인들>이란 제목으로 60세에 은퇴해서 80세까지 활동한다고 가정했을 때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대략 7만여 시간 남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장수가 축복일 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인명은 재천이라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을 말한다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위에서 읽은 기사 내용대로 계산해 본다면 아마 4만여 시간쯤 되는 것 같다. 거기에 마음 편히 섭생을 잘한다면 덤으로 얼마를 더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 그것은 긴 시간일까, 아니면 짧은 시간일까. 몇 달 전, 화성에 착륙한 로봇탐사선이라면 한가롭게 쉬면서 다녀와도 수십 번은 왕복할 수 있는 시간과 거의 맞먹으니 결코 짧은 시간만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산정해 놓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보다 원초적인 ‘삶의 문제’로 돌아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일까. 시쳇말로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도 작성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챙겨 보기라도 해야 할까.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지만 해마다 세밑이 가까워지면 느끼는 감상 정도로 돌리고 말았다.
예로부터 동양인의 바람은 오복을 갖추는 것이었다. 우선 오래 살고, 부를 이루며, 건강하게 살면서, 덕을 베풀고, 제 명대로 살다가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서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현재의 잣대로 치더라도 얼마나 행복한 일생인가. 그러나 가족이 대를 이어 한곳에 정착해서 살던 농경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재처럼 역동적인 사회 구조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생애 주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환갑잔치가 인생의 큰 축복이었으나,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젊게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환갑은 말할 것도 없고 칠순 잔치도 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현대에 있어서 생의 주기는 연령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구분되는 정서적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어느 주석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서 가까운 곳보다 먼 곳이 더 잘 보이는 것은 세상만사를 너무 편협하게 보지 말라는 것이요,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사소한 것은 듣지 말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것이며, 최근의 일부터 잊히기 마련인 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축복일 수도 있으니 지나간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가끔 떠오르는 젊은 날의 추억이나 무용담이 있다면 흘러간 영화를 다시 보듯 부담 없이 즐기고 말 일이라는 것이다.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당차게 한마디 대들었다.
“아니, 이 좋은 세상에, 그 많은 시간을 어찌 관망자로만 지내라는 겁니까. 젊은 날의 추억이나 무용담은 꺼져가는 열정을 되살리려는 불쏘시개 아닌가요?”
한쪽은 관용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고, 다른 쪽은 열정을 말한 것 같아 모두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 보면 노후를 지내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분은 그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루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며 보람을 느낀다. 어느 선배는 지역 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즐겁게 지낸다. 어느 지인은 독서나 취미 생활을 하며 한가로이 소일하다가도 기분이 나면 훌쩍 여행길에 올라 유유자적하며 세상의 풍물을 즐기고 돌아온다. 또 어떤 이는 젊은이들과 어울려 산과 들로 마음껏 쏘다니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마치 오늘을 위해 그 많은 날들을 준비해온 것처럼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가 넘친다. 그러나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기여를 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는다는 보상의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즐기고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는 장수시대에 걸맞은 좀 더 생산적인 사고로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
조용한 밤, 창가에 앉아 별빛을 안고 차를 마신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편안함은 모두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지금 기대고 앉아 편히 쉬고 있는 의자와 향기로운 차 한 잔. 아내가 정성껏 가꾸어 놓은 화분의 화초들, 새벽 일찍 문 앞에 갖다 놓은 아침 신문, 그 밖에도 내가 의지하고 있는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을 만들어준 사람의 고마움을 언제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지난 시간과 인연들을 생각해 본다. 그간 가볍게 보아 넘겼던 세상살이의 그늘도 이제 보이고, 까마득히 멀어진 옛 인연들도 눈앞에 다시 어른거린다.
얼마 있으면 또 한 해가 시작된다. 시간의 흐름은 늙음의 어두운 그림자만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세월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사랑과 자유로움과 지혜는 새로운 삶의 도전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그간 소홀히 했던 나의 인연들을 찾아 박주 일 배라도 나누며 힘찬 내일을 다시 이야기해 보자.
신규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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