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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나는 행복합니다 - 맹광호

신아미디어 2013. 2. 1. 18:10

“그렇게도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나를 친절하게 올려다보며 엘리사벳 씨는 고개를 아래위로 여러 차례 흔들었다. 나는 깊은 미소를 띠며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그래요. 행복하셔야 해요!”

 

 

 

 

 

  나는 행복합니다  맹광호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후략)”
   음성 꽃동네 심신장애인 시설 ‘희망의 집’ 1층 홀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시詩의 일부다. 전신불수에 시력마저 잃은 상태로 20년 넘게 누워 지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여자환자의 시다.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몸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죄를 짓지 않게 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액자 시를 두 번 보았다. 첫 번째는 10여 년 전, 재직하던 의과대학 학생들과 함께 꽃동네로 하루 봉사 활동을 갔을 때이고, 두 번째는 지난해 10월 초 일주일 동안 그곳에서 열린 <행동하는 사랑학교, Love in Action School>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하던 중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무 큰 감동을 받고 시설을 안내하던 수녀님께 그 시를 쓴 엘리사벳 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어린아이 몸매를 지닌 그녀는 몇 명의 다른 환자들과 함께 방에 누워 있었는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환한 얼굴로 연신 웃고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조그만 트랜지스터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볼륨으로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도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나를 친절하게 올려다보며 엘리사벳 씨는 고개를 아래위로 여러 차례 흔들었다. 나는 깊은 미소를 띠며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그래요. 행복하셔야 해요!”
   그 후로도 나는 이런저런 일로 몇 차례 꽃동네엘 갔었지만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곳엔 엘리사벳 씨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엔 그녀와 같은 심신장애인 말고도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버려진 많은 노인들과 행려환자들, 그리고 미혼모들에게서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수백 명 넘게 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미 20년 넘게 그곳 꽃동네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온 S 수사修士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나의 의과대학 후배이자 제자이기도 한 수사님이 마침 미국과 남미 지역을 포함한 10여 개국으로부터 꽃동네에 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 40여 명을 초청해서 개최하는 <행동하는 사랑학교>에 나도 한 번 참여해 보라는 권유를 해 온 것이다.
   첫날 프로그램은 주로 그곳 꽃동네 시설들을 방문하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다시 ‘희망의 집’을 찾게 된 나는 거기서 낯익은 시 <나는 행복합니다>를 두 번째로 본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엘리사벳 씨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랬구나!’ 하는 애잔한 마음과 함께 해맑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한동안 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래요, 엘리사벳 씨. 이제는 여기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야 해요!’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날 하루, 나는 ‘행복’을 화두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행한가? 불행하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실제로 철학자들 중에는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까지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러나 이들 모두 진정한 행복은 감각적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절제하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교육수준도 낮다고 알려진 방글라데시나 히말라야 산맥 2,000m 고지대의 조그만 나라 부탄 왕국의 국민 행복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은 역시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특히 부탄 왕국의 국민 100명 가운데 무려 97명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2010년 어느 국제조사기관의 발표는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사실 현대 문명세계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도 행복이 학벌이나 돈, 그리고 육체적 건강 같은 소위 외적外的가치의 추구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알 수 없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그런 욕망들을 충족하기 위해 피 흘리는 노력과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과 경쟁하고 있으며 육체적 건강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내 삶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음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세계적 긍정심리학자이며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인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라고 했다.
   내가 참여한 꽃동네 <행동하는 사랑학교>도 말하자면 ‘관념’이 아닌 ‘실천하는’ 사랑에 대해 묵상하고 실천해보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모두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쓴 엘리사벳 씨의 시 마지막 구절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맹광호  ---------------------------------------

≪에세이플러스≫ 등단. 한국산문 작가상, 수필집: ≪동전 한 개≫, ≪동행≫,  칼럼집: ≪건강가치, 생명가치≫, ≪맹광호 교수의 생명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