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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 - 박일희

신아미디어 2013. 2. 1. 18:18

"소박하지만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진 밥상이 있는 집, 아버지의 배려가 돋보이는 행복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보면 나는 좋은 집에서 살았었다. 솜씨가 있든 없든, 직장일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따뜻한 새 밥을 꼬박꼬박 챙겨준 아내, 건강하고 착하게 자란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좋은 집에서 산다는 것  박일희

 

   아내의 노트북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바탕화면이 바뀌었다. 새촘하게 눈을 내려뜬 외손녀의 사진은 어디 가고 난데없는 해골이 앉아 있다. 제단 위에 나란히 앉은 백골이 두 손, 두 어깨를 맞대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다. 부부의 상인가 보다. 자기도 저러고 싶다는 뜻일 게다. 울도 담도 없는 곳이지만 죽어서도 함께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더니 허허벌판이라도 좋다는 말인가 보다.
   아내가 말하는 좋은 집이 나는 늘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집들이에 갔다 와서 집이 좋더라고 하면 큰 집을 샀나 보다라고 혼자 짐작할 따름이었다. 어떤 집을 좋다고 할까? 넓은 집, 비싼 물건이 많은 집을 의미하는 걸까?
   “집이 참 좋더라.”
   “뭐가 그리 좋던데?”
   “…….”
   “새 집이니까 당연히 좋지.”
   대화가 여기쯤에서 끊기니까 답을 알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과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나는 편안하고, 가족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house’의 개념이 먼저이다. 좋은 집을 구입했다고 할 때는 부의 상징 또는 재산상의 투자가치로 판단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면적이 어떠한지,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교통망은 편리한지, 선호하는 학군인지, 남향으로 전망은 좋은지 따위가 잣대가 된다. 아내처럼 단순히 집이 좋더라고 할 때는 내부구조와 실내장식, 가재도구가 기준이 될 것이다. 그 다음에 동선을 최소화하는 구조인지, 수납공간은 넉넉한지, 거실바닥과 욕조, 싱크대는 어떠한지, 가구와 전등, 가전제품은 잘 어울리는지, 액자나 화분은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지 따위를 말할 것이다.
   ‘평수가 넓으면 큰집이다. 학군 좋고 역세권이면 투자가치가 있는 집이다. 배산임수형으로 전망이 괜찮으면 명당이다. 외관이 미려하고 치장을 잘하면 아름다운 집이다. 세간이 화려하면 호화로운 집이다. 수목과 화초가 잘 가꾸어져 있으면 향기로운 집이다. 골동품이나 예술품, 수석과 분재, 수집품이 많으면 복잡한 집이다.’는 글이 생각난다. 좋은 집에 대한 말은 없다. 개개인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는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즉 ‘home’의 의미이다. 가정의 의미를 담고 있는 집은 가족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가족 구성원이 건전하게 성장·발달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휴식과 사랑을 얻는 보금자리이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얻어진다. 함께 건강하고 각자의 일에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느낄 때에 좋은 집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좋은 집에서 사는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아니어도 불을 밝혀 가족끼리 오순도순 정을 나눌 수 있는 집이다. 어릴 적, 호롱불 아래 엎드려 책을 읽을 때 배가 따뜻해지면 차오르던 행복감 같은 것이 좋은 집일 것이다. 대리석 욕조가 아니어도 씻은 몸에서 상큼한 향기가 날 것이고, 원앙금침은 아니어도 걱정없이 쉬이 잠들 수 있는 집.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문밖의 모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집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나는 좋은 집에서 사는 것 같다.
   행복한 집은 사랑이 가득한 집이라고 한다. 화려한 가구와 꽃이 아니라 어머니의 미소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집일 것이다. “웃음소리가 나는 집은 행복이가 들여다보고, 싸움 소리가 나는 집은 불행이가 들여다본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소박하지만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진 밥상이 있는 집, 아버지의 배려가 돋보이는 행복한 집이 좋은 집이라고 보면 나는 좋은 집에서 살았었다. 솜씨가 있든 없든, 직장일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따뜻한 새 밥을 꼬박꼬박 챙겨준 아내, 건강하고 착하게 자란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사를 했다. 썰렁하다. 살던 집을 남매에게 맡기고 분가를 했다. 아내도 익숙하지 않은지 걸핏하면 “집에 있는데.”라는 말을 한다. 어디 여행이라도 온 느낌인가 보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크다. 집의 크기는 한 사람이 5~10평이 적당하다고 한다. 친구가 퇴직하면서 스무 평 아파트를 사서 산다고 할 때 작다고 했는데 그것이 맞춤하다. 그나마 서재는 비워두고 주방에 노트북을 놓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나이가 들어 약해져가는 기력의 일부를 빈방에게 빼앗기게 되고, 아내까지 서재로 가버리면 화목과 행복의 근원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모델 하우스처럼 싱크대 위도, 거실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소원이라더니 벌써 하나 둘 올려지는 것을 보면 사람이 사는 집 같아서 안심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인생에서 행복을 최상의 가치로 올린 적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행복에 두고 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명강사로 알려진 분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행복한 삶을 주제로 한다. 방송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도 행복을 인생의 최고선으로 말한다. 삶이란 결국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CEO나 사원이나, 아이나 어른이나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간다. 집에서는 고단한 몸을 뉠 수 있고 마음 편히 쉴 수도 있다. 가족이 있고, 그들의 사랑이 있는 그곳이 최고로 안락하고 좋은 집이다. 그래서 집으로 간다. 바쁘게 가는 집, 그런 집이 좋은 집이다. 포근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집이 좋은 집일 것이다.
   오늘처럼 퇴근길에 쏟아진 눈 때문에 30분이면 오던 길을 세 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을 때 반겨주고, 걱정해주는 아내가 있어서 행복하다. 행복해서 집으로 곧바로 퇴근하는 것도 있지만 어김없이 제 시간에 도착하는 소위 땡칠이라서 행복하다. 이사 오던 날, 이 집에서 50년을 더 살자고 내가 말했으니 앞으로 50년 후가 되면 바탕 화면에 있는 사진처럼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

 

 

박일희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