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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모자帽子 - 이금영

신아미디어 2013. 2. 5. 18:17

"내가 처음으로 사들인 모자는 검정색에 장미꽃이 수놓아진 검정색 베레모였다. 그 모습을 본 조카딸은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하더니 우연이 모자가게 앞을 지나다 작은엄마 생각이 나더란다. 그래서 골고루 써보라고 여러 색상을 사다 주는 것이었다. 베레모는 쉽게 말해서 빵모자다. 빵처럼 동그랗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나에게도 모자는 몇 개가 있었지만 뜻밖에 모자선물을 받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모자帽子  이금영

 

   베레모를 쓰고 거울을 보니 산뜻하다. 색상이 자주색이어서일까. 나는 긴 머리를 늘 좋아했었다. 머리를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그랬는지, 편해서 그랬는지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는 결혼하고서도 즐겼다.
   이제는 짧은 파마머리를 하는데 미용실도 자주 가야 되고 신경이 많이 쓰인다. 검은색 모자만 쓰다가 자주색 모자를 써 보니 자색 국화가 연상되기도 하며, 과꽃이 그리워진다. 이번에는 회색 모자를 써 봤다. 어딘지 좀 지적知的으로 보인다. 연회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인데 회색 투피스에 잘 어울리려나. 또 베이지색을 머리에 살짝 올리니 은근한 멋이 있고 온화해 보인다. 빨간색 코트와 화사하게 어울릴 것 같다. 보라색은 어떤 의상과 어울릴까. 이렇게 여러 색의 모자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것들은 내가 사들인 것이 아니라 조카가 사다 준 모자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사들인 모자는 검정색에 장미꽃이 수놓아진 검정색 베레모였다. 그 모습을 본 조카딸은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하더니 우연이 모자가게 앞을 지나다 작은엄마 생각이 나더란다. 그래서 골고루 써보라고 여러 색상을 사다 주는 것이었다. 베레모는 쉽게 말해서 빵모자다. 빵처럼 동그랗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나에게도 모자는 몇 개가 있었지만 뜻밖에 모자선물을 받고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역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머리가 시렸다. 모자를 쓰다 보니 유익한 점도 있었다. 갑자기 외출할 때 머리 모양을 손질하기가 어렵고 시간도 마땅치 않을 때, 적당한 모자를 골라 써버리면 머리 모양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겨울에는 체온을 유지하기에 모자도 한몫을 한다. 모자를 쓰면 체온이 3~6도 가량 오를 수 있으며, 격에 맞게 적당히 써주면 한층 돋보인다. 그렇지만 이왕 모자를 쓸 바에야 의상과 같이 연출하면 멋도 추구하면서 편하고 좋다.
   용기를 내어 자주색 베레모를 쓰고 동인 문학회에 나갔더니 지인은 화가 같다고 하였다. 또 남편이 그림을 그린다는 걸 알고 있는 문우는 화가의 아내라는 이미지가 풍긴다고 하였다. 그리고 작은 도서관 아이들은 논술선생님이 아니라 화가 선생님 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화가는 모자에서도 인상이 다른가 보다.
   내가 겨울철에 모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멋을 부리기보다 머리에 보온을 유지하려고 쓰기 시작했다. 한번 모자를 사서 이용을 하다 보니 길거리에서 여인들이 어떤 스타일로 모자를 쓰는지 자꾸만 시선이 머문다. 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봄에는 화사한 모자가 좋고, 여름에는 챙이 넓은 모자로 자외선으로부터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좋다. 가을철엔 젊은이처럼 야구 모자를 즐겨 썼다. 요즘 같은 겨울철엔 털실 모자가 제격이다. 두툼한 털실 모자에 동그란 방울이 달린 게 귀엽기까지 하다. 그리고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주로 선캡을 썼지만, 이제는 베레모를 멋스럽게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유년시절 처음으로 아버지의 모자帽子를 보았다. 농사일 하실 때는 밀짚모자, 외출하실 때는 여름에 한산모시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왕골로 만든 중절모를 쓰고 사립문을 나서실 때, 어린 내 눈에도 기품 있고 멋있어 보였다. 동절기에는 진회색 두루마기에 회색 중절모를 쓰셨는데, 외출에서 돌아오실 때는 모자 위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던 기억이 난다.
   고유의 한복을 입고 갓을 쓰는 우리 민족은 신분에 따라 금관, 제관, 패랭이 등으로 의관을 갖추며 모자帽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또한 교복이 자율화되기 전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검정 교복에 학생모를 썼는데 그야말로 제복과 모자로 학생 신분을 나타내 주었다. 그런데 지금 교복은 있어도 모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모자패션 하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떠올려진다. 공식석상에서도 왕관을 대신해 멋진 모자를 쓰고 나타나 일반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우아한 미모로 등장하는 여왕의 모습을 볼 때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겨울은 눈도 많이 온다. 춥고 긴 겨울은 마음마저 움츠러든다. 동장군의 터널을 따뜻한 모자와 더불어 보낼 생각을 하니 푸근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고, 온몸으로 세찬 바람을 막아주는 모자帽子, 담담히 기호품으로 다가올지라도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동반자가 되어줄 수는 없을까. 새해에는 나이 한 살 젊어지고, 멋진 모자와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마음은 모자帽子가 내게 가져다준 또 다른 선물이다.

 


이금영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