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는 말 위에서 죽었다. 죽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나의 전생이다."
말 위에서
나는 달리는 말 위에서 죽었다. 죽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나의 전생이다.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 나는 그렇게 죽었다. 나는 매번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무술을 단련하고 첫 번째 전투에 나가서 적을 향해 돌진하다가 죽었다. 왜냐하면 나는 매우 용감했기 때문에. 그리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에. 화살이 날아오든 칼이 날아오든 오로지 적을 향해 달려나가다 죽었다. 한 번도 두 번째 전투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서른이 되도록 살아본 적도 없었다. 내 영혼에 스무 살 너머의 기억은 없다.
지금처럼 오래 살아보는 것은 내 여러 생애 중 처음이다. 현세에서 나는 여자로 태어났고, 내가 성인이 된 후로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오십이 넘도록 살아있다. 기적이다. 그래서 나는 몸을 아낄 줄을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도 그렇다. 적당히 작업을 하고 난 후에는 적당히 쉬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한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병이 날 때까지 몸을 쓴다. 병이 나면 징징 울면서 그제서야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한다. 병이 난 후에서야 몸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을 깨닫는다.
전생에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조금이라도 늙어보았으면 몸을 아껴 쓸 줄 알았을 텐데. 후생에 나는 평화롭게 잘 살 것 같다. 다음 생에는 친구들처럼 체육관에도 다니고 헬스도 하고 러닝머신도 타고 보약도 먹고 맨손 체조도 하고…….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말 잔등이 내 죽음의 침상이다. 내 최후의 기억은 말 잔등에서 멈춘다. 그래서 나는 말을 그린다. 왜 말을 그리는 줄도 모르면서 말을 그린다. 아무리 아무리 그려도 말을 그리면 행복하다. 아무리 아무리 그려도 말을 그리는 동안은 만족을 모른다. 아무리 아무리 말을 많이 그려도 또 다른 말을 그리게 된다.
나는 말 위에서 죽었다.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죽어가는 나를 태운 채 말은 달리고 있었다. 그때 말과 나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말이 내 자신인지 내가 말인지…….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났다. 화가가 되었다. 말을 그린다.
김점선 ----------------------------------------
김점선님(1946 ~ 2009)은 서양화가로 산문집에『나, 김점선』,『 10cm 예술1 · 2』,『 나는 성인용이야』등이 있으며, 박완서, 황석영, 최인호, 정민 등의 책에 그림을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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