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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겨울호, 다시 읽는 좋은수필]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박지원

신아미디어 2013. 1. 14. 21:50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다."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伯姉贈貞夫人朴氏墓誌銘

 

 

   유인孺人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趾源중미仲美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德水이택모李宅模백규伯揆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셋이었다. 지아비의 선산이 아곡鵝谷인지라, 장차 서향의 언덕에 장사지내려 한다.
   백규가 그 어진 아내를 잃고 나서 가난하여 살 길이 막막하여, 어린 것들과 계집종 하나, 솥과 그릇, 옷상자와 짐궤짝을 이끌고 강물에 띄워 산골로 들어가려고 상여와 더불어 함께 떠나가니, 내가 새벽에 두포斗浦의 배 가운데서 이를 전송하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막 여덟 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구르며 새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에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 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내게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말을 세워 강 위를 멀리 바라보니,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리고 돛대 그림자는 물 위에 꿈틀거렸다. 언덕에 이르러 나무를 돌아가더니 가리워져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 위 먼 산은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 같고, 새벽 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빗을 떨구던 일을 생각하였다. 유독 어릴 적 일은 또렷하고 또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세월은 길어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 하고 가난과 곤궁을 근심하였으니, 덧 없기 마치 꿈속과도 같구나. 형제로 지낸 날들은 또 어찌 이다지 짧았더란 말인가.


떠나는 이 정녕코 뒷 기약을 남기지만
오히려 보내는 사람 눈물로 옷깃 적시게 하네.
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올꼬
보내는 이 하릴없이 언덕 위로 돌아가네.


去者丁寧留後期猶令送者淚沾衣
扁舟從此何時返送者徒然岸上歸

 

 

박지원  ----------------------------------
박지원님(朴趾源, 1737 ~ 1805)은『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등을 쓴 조선후기 실학자겸 소설가다.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