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2012년 여름호, 신작수필20인선] 용서容恕 - 김승환

신아미디어 2012. 9. 25. 18:12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 이라 했습니다."

 

 

 

 

용서容恕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상당 기간 부모나 타
인으로부터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식들이 장성하여 나름
대로 삶을 이어가지만 이 세상에 멸균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
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싫든 좋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서로 상처주고 때론 상처받으며 살아갑니다.
   시나브로 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계절의 탓일까요. 지나온 세월
을 뒤돌아보는 애잔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하기에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 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삶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내가 지금까
지 살아온 삶은 반듯한 모습이었을까?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단풍잎
을 보면서 스스로의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지는 않았는지. 좀 더 조신하게 말을 가려서 하였
는지. 시간이 흐르고 보니 별것 아닌 것이 그때는 왜 그렇게 서운하
고 분이 났던지 모두가 용서받고 용서해야만 하는 하찮은 일들이었
습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로 시작되는 이별의 노래는 고등학
생 시절에 즐겨 부르던 가곡입니다. 이 노래를 지은 유명한 시인은
어느 날 여대생과 눈이 맞아 함께 가출을 했답니다. 부인은 이 소문
을 듣고 그네들이 신접살림을 차린 제주도로 찾아갔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였습니다. 그리고는 곧 겨울이 닥
쳐올 듯하여 두 사람 입을 겨울옷 몇 벌을 지어왔다고 했습니다. 사
양하지 말고 받고 어려운 살림에 보태어 쓰라고 돈 봉투까지 내밀었
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왔답니다.
   아내가 떠나고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었습니
다. 너무나 큰 충격과 감동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기 때문이겠지요.
   밤새 뜬눈으로 고민하던 두 사람은 마침내 헤어지기로 결심하였습
니다.
   여인이 배를 타고 떠나갑니다. 눈앞에 여인을 실은 배가 멀리 사라
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인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바로
<이별의 노래>입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 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
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기울면은 밤이 오듯이 우
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여기서 시인의 부인이 보여준 고차원적인 용서는 두 사람을 단번
에 고꾸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알려진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은 여수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을 공산당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인간으로
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오죽 했겠습니까? 하지만 목사님은
모든 증오의 감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스리고 아들 죽인 원수
를 용서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으로 되갚아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인데……. 용서라는 넓은 아
량과 사랑을 배푼 것은 큰 그릇 순교자이신 손양원 목사님이기에 가
능한 일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내게도 몹시 서운하게 하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도 그의 인사성 없는 거만한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아예 별종으로 취
급하였지요.
   하지만 나에게 만큼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주고받는 정이란 게 있는 법이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예
의와 도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가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한직에서 한직으로 전전하다가 옷을
벗었지요.
   본시 우리 사회는 혼자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고 고개를 치켜들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저만 외로워 지지요. 주위에 사람이
없습니다. 가련하고 불쌍한 모습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그를 갈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했습니
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래야만 나의 모습이 건강하고
어른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 더 절박한 것은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품고 있으면 그
분노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스의 다음
과 같은 대목이 떠오릅니다.
   당신의 삶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용서하라. 삶을 누리려면 용
서해야 한다.
   용서는 살기 위한 기술이다.
   멍청한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
   용서는 분노, 원망, 자멸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돕는다 했습니다.
용서는 상처를 감추지 않고 치유한다 했습니다. 나 스스로가 살기 위
한 몸부림으로 용서를 택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배반하고 떠난 남편과 여인을 용서한 시인의
부인이 겪었을 분노에 비할 바 못 되지요. 하물며 아들을 죽인 원수
를 용서한 손 목사님의 다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
습니까? 어림없는 일이지요.

 

 


김승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