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야!" 정말 소통이 중요합니다. 여러가지 행동을 하지만 결국 가려운 그곳을 긁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그러나 가려운 그곳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려고 하면 소통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여러분 통하고 계시나요...
아, 이제야
살다 보면 속이 후련하고 기쁠 때가 있다. 뭔가 조금 깨닫거나 못
이룬 일을 해내면 ‘아, 이제야!’ 하는 소리를 연발한다. 막혔던 봇물
이 터져 나오듯 보잘것없는 사소한 일에도 그러하다. 나이가 들면 감
동을 쉬 하게 되나 보다.
욕실에 들면 내 모습이 오롯이 다 보인다. 세월의 풍파를 그 누가
비껴가겠는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묻어난 세월의 흔적이 거울에 비
친다. 허약한 팔다리와 균형 잃은 몸매는 연륜의 증표다. 몸 관리한
답시고 이리저리 기웃거리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집 안 자그만 욕실은 내가 즐겨 찾는 곳. 뜨뜻한 욕조물에 몸을 푹
담그면 피로가 스르르 풀린다. 한데 곤고해진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이 공간이 요새 쉴 틈이 없다. 시집간 딸네 가족이 집에 와 욕실 이용
이 빈번해져서다. 아무나 예고 없이 달려든다.
그뿐인가. 욕실에 문제가 생겼다. 물 빠짐이 신통치 않다. 바닥도
미끌미끌하다. 관리 손길이 뜸해졌기 때문. 아내는 젖먹이 손주 돌보
느라 앞가림도 잘 못하는 형편이다.
요즘 아내의 불평이 늘었다. 남자가 뭘 하느냐는 눈총을 내게 준
다. 집안 관리가 엉망이라며 나더러 해결해내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모른 체할수록 목소리를 높인다. ‘철없는 당신과는 소통疏通이 안돼
답답하다.’는 투다. 사실 여태껏 자잘한 일은 아내가 해왔다. 손재주
라곤 없는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을 모른다.
후덥지근한 어느 날이었다. 큰맘 먹고서 욕실과 세면기를 청소하
고 하수구도 손보려 했다. 과연 잘 될까. 세면기 수도꼭지를 트니 물
이 밖으로 넘쳐난다. 하수 파이프가 꽉 막혔는가 보다. 이건 쉽지 않
겠다. 고개를 내저으며 목욕이나 하기로 마음을 돌려버렸다.
이런 젠장, 비누 수건질을 하는데 갑자기 몸이 휘청하더니 아차! 소
리치는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미끌미끌 아찔한 욕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힘없는 팔다리를 깜빡 잊었나. 젊었을 때만 생각하다니
그건 천만의 말씀이었다. 다리가 아파오고 허리가 뻐근했다. 말로만
들어왔던 욕실 사고,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여보, 괜찮아요?”
놀란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기웃한다. 그러고는 입을 비쭉 내민
다. 큰 사고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는지 고생 좀 해보라는 표정이다.
어쩔 것인가.
다친 다리 때문에 한동안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방심했다가
고생을 사서 하는 셈이다. 그래도 “그 정도로 다친 걸 다행인 줄 알
라.”는 아내의 위로가 약이었다. 괜찮아진 건 보름쯤 지나서였다. 혼
나봐야 정신이 든다는 말이 맞나 보다. 누구라도 모든 일을 다 알지
는 못하고, 다 해낼 수도 없는 거라며 스스로 달래보지만 신통치 않
다. 걱정이 마음 안에 흐르며 불안이 더 커져간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궁즉통窮則通이라 했던가. 딸의 도움으로 컴퓨터에서 정보를 얻어
냈다. 가정 내 안전사고 원천 차단을 위해 자료 화면을 열어보라는
거였다. 화면 대화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욕실에서 종종 넘어진다. 언제 한번 크게 다칠까 걱정이다. 좋은
대책이 없을까?”
“물 빠짐 불량으로 바닥이 미끄러워서다. 욕실 매트를 깔아주시
라.”
내가 찾던 게 이것이었다. 우선 믿고 사용해보라고 하지 않는가.
곧바로 결심을 했다. 성능과 품질이 어떤지 몰라도 욕실 매트를 써
보기로.
즉시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를 주문했다. 얼마 후 도착한 매트는 둘
둘 말고서 청소하기도 편리한 원형 레일 매트였다. 색상도 예쁜 연분
홍빛 표면이 산뜻하고 정말 좋았다. 왜 이런 걸 진작 몰랐을까. 매트
촉감이 어린애 살결처럼 보드라웠다. 자꾸만 만져보고, 맨발로 걸어
보고 싶을 만큼.
며칠 안 돼 이게 웬일! 매트의 품질을 의심하다니. 넘쳐흐르는 세면
기 물이 문제였다. 깜빡 잊었었다. 미끄러움을 막으려면 물 빠짐이
우선 좋아야 한다는 걸. 근원적 원인인 물의 소통을 간과한 것이다.
막힌 하수구를 뚫어야만 했다.
작업 도구로 공사(?)를 시작했다. 반나절을 부여잡고 하수 파이프
를 뚫고 닦아내느라 땀으로 흠뻑 목욕을 했다. 게으른 값을 톡톡히
치렀다고나 할까.
콸콸 쏟아지는 물이 쑥쑥 빠진다. 막힌 통로가 한참 만에 뚫린 것이
다. 그동안 답답하고 불안함이 얼마였더냐. 드디어 해냈다는 이 기
분! 날아갈 것 같다. 소소한 일이지만, 잘했다고 남편을 추켜세우며
미소 짓는 여인네가 곁에 있어 참 좋다. 꽤나 달뜬 듯 아내의 두 볼에
불그스레 홍조가 번진다. 아, 이제야 둘 사이 막혔던 소통도 탁 트인
듯 시원하다. 오호라! 쏟아지는 물소리가 살짝 귀띔하누나. 부부간의
불안은 소통의 부재에서 온다고.
이웃과의 소통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게 잘 되면 동네방네 웃음꽃
이 만발이요, 안 되면 불협화음이 온 동네를 휩쓸어 주변이 삭막해지
고 마찰과 갈등으로 우리네 삶은 고단해진다. 한눈팔고 방심하면 탈
나게 마련. 어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도 이제 철이 좀 드나 보다. 막힌 곳이 없는지 주변을 다시 둘러
봐야겠다. ‘아 이제야!’ 하는 감동과 기쁨과 안심의 소리 들렸으면 좋
겠다.
살맛나는 세상, 소통이 먼저 아니겠는가.
오승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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