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9년 2월호, 통권208호 I 세상마주보기] 이게 나라냐고 - 박창권

신아미디어 2019. 3. 22. 07:12

"노송정의 옥루무괴에서 느끼는 비장감을 보는 이의 감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현대사가 너무 부끄럽다."


 





   이게 나라냐고      -    박창권


   한때, ‘이게 나라냐’는 구호에 온 국민이 흥분한 적이 있다. 이즈음에는 같은 일을 두고 보수 진보 양측에서 서로 이게 나라냐고 다그치는 장면을 더러 본다. 정부의 기업정책이나 노동정책과 같은 사회경제문제가 주로 시비의 대상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들 문제가 가치선택과 맞물려 있어서 그렇다. 예컨대, 대기업의 일탈에 대한 정부조치를 두고 보수 쪽에서는 정부가 경제를 죽이려 든다고 나라 꼴을 탓하고, 진보 쪽에서는 처벌이 느슨하다고 온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이 대체 어떤 것인가부터 제대로 정립되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주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부가 하는 일이 자기들 입맛에 맞으면 나라답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답지 못한 것이 되고 만다. 아스팔트 광장에서 꽁꽁 언 손으로 치켜든 촛불이 나라의 횃불이 되리라고 믿었던 염원은 아랑곳없다. 아전인수라도 유분수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이 구호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하는 모양새가 되어가고 있다.
   일전에 퇴계 가문을 방문하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선비의 기개를 보고 왔다. 퇴계의 조부인 노송정 이계양 선생은 단종 원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봉화 훈도로 내려왔다. 곧이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에서 물러나, 인근의 용두산 옆 봉우리에 단을 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를 향해 망제를 올렸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상념을 안고 한여름의 뙤약볕도 엄동설한의 눈길도 마다하지 않고 국망봉에 올랐을까. 어린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한편, 끓어오르는 충정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이로부터 500년이 더 지난 오늘날 대통령 탄핵과 이후의 국면을 보면서 노송정을 떠올리게 된다. 국정농단 관련으로 많은 사람이 조사받고 진술하는 가운데, 그 누구도 내 책임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권력을 추종하며 그 핵심부에서 남을 단죄해왔던 그 누구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나는 모른다.’ ‘나는 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그 일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랬더라면 일부 정파의 추종이라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은 책임정치이다. 벌어진 일은 있는데, 그 일을 한 사람은 없다고 하니 이게 나라냐는 것이다.
   노송정은 봉화현의 정9품의 지방관직에 머물면서도 세조의 패도를 바로 잡지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관직을 사직하고 폐위된 선왕께 사죄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집 정자에 걸린 옥루무괴(방구석에 혼자 있어도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 현판이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라의 불의를 보고는 직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분연히 일어나야 부끄럽지 않다는 뜻을 새긴다. 그런 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조선왕조가 500년을 넘게 버틸 수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노송정과 같은 인물이 어디 한둘이던가. 사육신의 충정은 애절함을 넘어 오히려 아름답다. 목숨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를 지켰으니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빛난다.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선비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인다. 임진왜란 때에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가 관직을 받아들인 것은 왜군을 몰아내기 위한 방편이었고, 항전에 방해가 되자 벼슬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면암 최익현은 대원군에 맞서 당백전의 폐해를 상소했다가 삭탈관직 당하자, 민간의 신분으로 의병을 일으켜 국가에 충성했다. 퇴계의 11대손이면서 노송정의 13대손인 향산 이만도는 고종때에 장원급제한 인물로 아들 며느리와 손자까지 3대에 걸쳐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쳤다. 매천 황현은 나라 잃은 선비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자결했다. 그는 벼슬에 오르지 않으면서도 선비라는 이유만으로 불의에 맞섰다.
   누구도 국가를 탓하지 않았다. 이게 나라냐고도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책임을 자기에게 돌렸기에,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해도 또 다른 방도의 충성의 길을 찾았다. 우리에게 다시금 이런 기개와 충절을 기대하기 어려운가. 앞으로도 어느 정권이나 국정운영의 공과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을 것이다. 선인들의 자기책임까지는 따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한 일은 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정치의 시발이고 역사를 두려워하는 자세이다. 노송정의 옥루무괴에서 느끼는 비장감을 보는 이의 감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우리의 현대사가 너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