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9년 2월호, 통권208호 I 세상마주보기] 변신 - 송신근

신아미디어 2019. 3. 25. 08:34

"낡은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원초적인 자신의 원형을 회복해 가고있는 바닷가재의 일생을 바라다본다."


 





   변신      -    송신근


   바다에서 서식하는 가재류들은 여러 개의 껍질이 마디로 연결된 외피를 입고 있다. 투박하게 보이지만 견고하게 둘러싼 갑옷이 그를 적으로부터 보호해준다. 도전자에 대항하여 싸울 투사와 같은 얼굴, 먹잇감을 단번에 물어뜯을 수 있는 두 개의 집게다리를 위엄 있게 과시하고 있다.
   바닷가재는 태어나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자기 변신을 거쳐야만 완전한 가재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유년기 때는 성년기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얕은 물속에서 헤엄쳐 다니며 쪽빛 꿈을 그리다가 변신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온전한 제 몸이 만들어진다. 다음 단계에 이를 때마다 이끼로 얼룩져 있는 딱딱한 옛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어떤 종류의 바닷게는 한 달에 몇 번이나 갑옷을 바꾸어 입는다고 한다. 그리고 성년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자라지 않으면서도 매년 한 번씩 낡은 옷을 갈아입는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옛 상처는 말끔히 치유되고 깨끗하고 순결한 새 몸을 얻는다. 갈등과 분열이 혼재된 차가운 어둠 속에서 생존을 위해 적과 싸우다가 잘려나간 수염, 떨어져 나간 다리도 그때 소생이 되어 나온다. 이러한 탈바꿈은 그의 몸 자체에 숨어있는 생리적 작용의 울렁임이 등불처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 속에는 이미 정교하게 짜여있는 시간의 톱니바퀴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머물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하며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그 현상들은 창조적인 신비로움마저 들게 한다.
   시간의 폭탄이 가재 몸속에서 터지기 시작하면 온 육신은 전율을 일으키며,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그 흔들림이 정지되는 순간, 딱딱한 갑옷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등을 직선으로 가르며 서서히 쪼개지기 시작한다. 긴 검으로 내려친 것처럼 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의 폭발이 껍질을 갈라놓는다. 마치 작은 씨앗이 굳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다. 자신을 해산하는 몸부림처럼, 변신의 고통을 불기둥같이 일으키며 섬세한 몸의 각 부분들이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감쪽같이 빠져나온다. 부채처럼 생긴 헤엄치는 꼬리, 집게처럼 물어뜯을 힘센 두 다리, 지네발같이 여러개가 함께 움직이는 좌우의 옆다리들, 돌출된 두 개의 위협적인 눈, 대상을 만져 의사를 전달하는 안테나와 같은 수염 등이다.
   다시 한 번 태어나는 자기 만남의 순간이란 이제까지 자신을 보호해 왔던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지고 연약한 속살이 세상에 노출되는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허물을 갓 벗는 가재는 무력해진 새 몸을 재빨리 캄캄한 돌 틈이나 막장 같은 굴속에서 은둔을 시작한다. 벗어버린 껍질이 다시 굳을 때까지 먹는 것을 끊고 일체의 활동을 정지한 채 고독한 성찰의 세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나 문어의 쉬운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유약한 몸은 상대를 물리칠 힘도 사냥할 능력까지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세상을 등진 채 숨죽이고 숨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행위로부터의 단절과 고립된 시간적 공백이 그를 부풀듯이 자라게 한다. 낡아진 것을 벗어 버리는 자유를 통해 더욱 성숙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생명의 사이클 속에서 그가 숨어있는 시간은 잠시일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 껍질이 굳으면서 튼실한 갑옷이 되어 삶의 마디를 다시 한 번 이어 놓는다.
   인간도 영혼 깊숙한 곳에 스며있는 변신의 씨앗을 발아시키지 않는다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온몸에도 덜고, 두르고, 묶어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더듬어 볼 수도 없다. 옷으로만 덮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규범, 질투심, 헛된 욕망, 그리고 인습이 만들어온 부질없는 가치 따위로 치렁치렁 감싸고, 덮고, 꿰매고 살아왔다. 그 껍질이 조금이라도 벗겨질까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런 것들을 벗어 던진 채 가볍게 살고 싶으면서도 한 번도 자신 있게 벗겨내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낡은 껍질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원초적인 자신의 원형을 회복해 가고있는 바닷가재의 일생을 바라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