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불상은 불자들이 금을 입히고 또 입히는 바람에 몽실몽실 꽃으로 피어났다. 꽃은 온통 금으로 덮여 이제는 사만 톤의 금불상이 되었다. 마하무늬 뜻처럼 위대한 인형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밍글라바 사랑꽃이 더 위대해 보였다. 밍글라바 밍글라바."
밍글라바 사랑법 - 고미선
마하무늬 사원에는 최대의 황금 불상이 있다. 이천 년 전에 만들어진 사원이다. 사원 입구부터 맨발 입장을 해야 한다. 특히나 이곳에서 여자는 불상을 만지거나 가까이 가서도 안 된다. 성스러운 사원에서 반바지 착용은 남녀를 불문하고 출입금지 구역이다. 참배객 중 남자만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 개금불사 차례를 기다린다. 순서가 되면 부처님 몸체에 금종이를 붙이고 살짝 겉 종이를 떼어낸다. 여성 참배객은 멀리 떨어져 정해진 위치에서 친견할 수 있다.
청년은 우리를 대신하여 공양물을 붙여주었다. 그는 합장한 채 서 있다가 경건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붙이고 있다. 브이티알 화면으로 붙이는 행동이 넓은 사원 군데군데 생중계로 보여지고 있다. 삼 배 올리는 모습은 진정성이 있어 소원성취가 이루어질 듯하다. 여행 중에 만난 훤칠한 키에 예의 바른 청년 얘기이다.
청년은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청년은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려고 출발하였다.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젊은 패기 하나로 인터넷 검색만을 의존한 셈이다. 미얀마 공항에 내린 후 지쳐진 일상생활의 면면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와 다른 세계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에서 무릎을 ‘탁’ 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고국에서는 불안이 겹쳐지며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생활이 연속이었다. 경쟁이란 별로 없는 그 나라 환경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곳은 별천지로 보였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와 퇴직금을 정리하면서 타고 다니던 차까지 처분하여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안내자 직업은 H 대학교에 다녔던 실력으로 미얀마 언어를 빨리 습득하게 된다면 매력으로 다가왔다. 통역을 겸한 가이드 시험 준비를 위하여 삼사 개월간 주어진 문제만 달달 외웠다. 이론에는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그 나라의 역사 문화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청년은 어학 연수원에 입학하였다. 옮겨진 오피스텔 입구에서 날마다 마주치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이 뭐라고 했으나 한두 번은 그냥 지나쳤다.
“밍글라바.”
“밍글라바.”
그는 집을 나서며 만나는 여인으로부터 머리를 조아리는 인사를 받았다.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니 또한 기분이 좋다. 하루가 즐겁고 공부도 더 잘되었다. 겸손과 미소를 갖추고 한 달 동안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라 여겼다. 그녀의 인사와 소리를 따라서 하다 보니 싫지만은 않았다. 무슨 뜻이 내포되었는지 미얀마 어원을 살펴보았다 한다. ‘안녕하세요.’에 해당하는 아침 점심 저녁의 인사법이며 행운과 행복을 드린다는 뜻이 포함되었다.
스물아홉 살 청년은 아낌없이 행운과 행복을 준다는 데 감동하였다. 그 소리는 초라해 보였을 외국 청년에게 신의 소리처럼 들렸다. 그가 가져간 비용도 바닥 나갈 즈음 가벼운 대화로 말을 걸었다.
미얀마 대학교에 다니던 여인은 한국어를 전공하는 중이었다. 인레마을에서 루비 보석 공장을 운영하는 부모를 고향에 남겨 두고 양곤으로 유학온 셈이다. 둘은 살기 위해, 언어 통달에 도움을 얻으려고 계약 동거에 들어갔다. 청년은 일 년 만에 통역과 미얀마 역사 문화를 겸비한 우수 안내자가 되었다.
청년은 정이 들면서 양쪽 집안에 결혼 의사를 밝히자 난리가 났다. 여인의 마음씨가 이제까지 알았던 한국 여성보다 마음에 들어 평생 반려자로 정했다. 생활방식도 우리나라와 비슷하였다. 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인데 미얀마의 국교도 불교였다. 종교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 또한 없어 보여 흔쾌히 승낙받을 줄 알았다. 여러 번의 사진 교류로는 설득이 모자라 그녀와 한국으로 동행한 후에야 허가를 받았다.
미얀마 결혼 풍속은 부족 마을에서 일주일에 걸쳐 잔치를 한다. 잔치 비용은 신부를 데려갈 때 남자 측에서 부담하는 미얀마 관례에 따랐다. 부족의 결혼 의식대로 양쪽 부모님을 모시고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게 성대하게 치러졌다. 밍글라바 인사와 더불어 남자는 집안에서 존경받는 대상으로 부인이 아침이면 삼배를 올린다고 한다. 살아있는 부처님처럼 남편을 섬긴다. 혼례를 치른 다음날 아침, 부시시한 눈에 앉자마자 여인이 절을 한다. 청년은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나. 청년은 삼 배 받는 게 익숙하여 이젠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한 과정으로 여긴다. 절을 받고 나가면 하는 일도 잘 풀렸다 한다.
인연이란 무엇이었을까. 미얀마까지 와서 집에서는 생불로 대접 받고, 밖에서는 황금 불상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복을 어느 만큼 지은 인연인지 궁금하다. 부처님 계실 때 설법에 감동한 국민이 사후에도 모실 수 있기를 계속 기도했다. 그후 하늘에서 내려와 조성되었다는 불상이 지금은 황금으로 덮인 인연과 비슷하다. 밍글라바 사랑법으로 인생이 바뀌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조그마한 일에 감사하고 긍정으로 뭉쳐진 마음이 예쁘다. 청년은 불국토에서 생활하리라 생각이나 하였을까. 이웃집 건너듯 세계는 하나였다. 조물주는 미리 점지하셔서 전생의 업 따라 청년에게 여행을 떠나게 하였으리라.
그는 한국에서 유명한 스님의 명상과 정부 관료의 안내를 맡기도 하였다. 여인과 예쁜 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김없는 한국인을 닮았다. 한국에서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부 혜택이 많으니 돌아올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 한마디로 거절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행복한 인연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황금 불상은 불자들이 금을 입히고 또 입히는 바람에 몽실몽실 꽃으로 피어났다. 꽃은 온통 금으로 덮여 이제는 사만 톤의 금불상이 되었다. 마하무늬 뜻처럼 위대한 인형이 된 셈이다. 하지만 밍글라바 사랑꽃이 더 위대해 보였다. 밍글라바 밍글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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