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가 크고 딱 벌어졌다고 큰 가슴이 아니다. 봉오리가 크다고 멋진 가슴도 아니다. 눈으로 보는 가슴이 전부가 아니다. 가슴은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가는 따뜻하고 때로는 시원한 길이 되어야 한다."
가슴 - 고대관
‘배와 목 사이의 앞부분’이 가슴이다. 열두 쌍의 갈비뼈가 자리 잡고 있는 신체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과감한 가슴 노출 모습을 볼 때는 당황하고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가슴엔 근육질뿐만이 아니라 무한한 감성이 공존한다. 왠지 모를 신비로움이 있다.
가슴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지펴지기도 하고 스스로 부싯돌이 되어 타오르기도 한다. 삶은 가슴에 불태우는 일의 연속이다. 어릴 때는 남의 자식들보다 잘 키워보겠다는 엄마들의 극성스런 치맛바람이 경쟁심이라는 불을 가슴에 붙인다.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또는 사회적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이 불꽃 되어 타오른다. 어쩌다 사업의 길로 들어서기라도 하면 돈 벌어 성공하겠다는 욕망의 불은 더 뜨겁다.
이 세상 굽힐 것 없이 당당하게 살겠다는 젊은 패기가 자리 잡는 곳도 가슴이다. 잘못된 것 바로잡아 보겠다는 정의감이 타오르는 곳도 가슴이다. 애국지사들의 조국애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곳도 가슴이었다. 실패하거나 넘어졌을 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 불붙는 곳도 가슴이다. 큰 충격을 받거나 피할 수 없는 사연이 생길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조바심에 타들어 가는 것도 가슴이다. 이래저래 가슴에는 불 꺼질 날이 없다.
바람 잘 날 없는 곳이 가슴이다. 누구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에는 놀란다. 어떤 때는 어처구니없는 일에 당황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천장보다 먼저 덜컹 내려앉는 것은 가슴이다. 쓰라린 슬픔 앞에 팔 다리는 온전할지라도 가슴만은 찢어진다. 분함과 억울함에 입과 코보다 더 답답한 것은 가슴이다. 어느 때는 미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가슴의 아픈 상처에는 소독제도 없다. 반창고를 붙일 수도 없다. 화해와 용서만이 약이다. 옛날에는 가슴살이 흥정의 대상이기도 했다.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몸에서 도려내고자 했던 일 파운드의 살도 가슴살이었으니 말이다.
가슴에는 멍도 많다. 답답할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두드려 패대는 곳은 머리나 배가 아닌 가슴이다. 세상의 천대와 멸시를 받을 때마다 시퍼렇게 멍이 드는 곳도 가슴이다. 서로가 좋아서 하루라도 못 보면 죽을 것 같던 연인들이 헤어지면 이별의 상처란 멍이 남는 곳도 가슴이다. 일평생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칠 때 시퍼렇게 멍드는 곳도 그 어미 애비의 가슴이다.
가슴은 양심이다. 누구나 무언가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하노라면 날카로운 송곳이 그만 두지 않고 쿡쿡 찔러댄다. 부끄럽고 염치없는 일을 하거나 낯선 상황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잠자던 방망이가 스스로 쿵쿵거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가 두방망이질 한다. 두방망이질은 맷돌 위에서 구겨진 빨래를 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구겨진 마음을 펼 때도 가슴에서 이루어진다.
크고 작은 못이 수없이 박히는 곳도 가슴이다. 가슴에 박힌 못은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가슴의 못은 빼도 상처가 남는다. 벽에 박힌 못을 뺐을 때 남는 흔적보다 오래 남는다. 누구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억울함을 당한 사람은 복수란 이름의 시퍼런 칼을 품고 갈며 복수의 그날을 기다린다. 복수라는 이름의 녹슬지 않는 칼을 보관하는 곳이 가슴이다. 오뉴월에 찬 서리를 내리게 하는 여자의 한이 맺히는 곳도 가슴이다. 와신상담 굴욕을 새기고 품는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흘러간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가슴은 스펀지다. 체구보다 더 큰 감성의 스펀지를 가지고 있다. 무한한 공간이기에 무엇이든 받아들여 간직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일이 잘되었을 때는 뭉클함과 뿌듯함이 기쁨과 함께 스며든다. 그리움과 사무침도 이곳에 파고든다. 가슴은 사랑이란 뜨거운 용광로나 이별이란 차가운 얼음마저도 가리지 않고 묻어 둘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자 마음의 텃밭이다.
기쁨의 눈물이나 슬픔의 눈물이 나오는 곳은 눈이지만 그 눈물을 촉촉이 적시는 곳은 가슴이다. 부모는 죽은 자식을 도저히 잊을 수 없기에 선산에 묻지 못한다. 가슴에 묻는다. 참을 수 없는 슬픔마저도 흡수하여 녹이고 삭일 수 있는 것은 가슴이란 스펀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는 문이 있다고 한다. 빗장이 걸려 있으면 열리지 않는다. 가슴의 문은 자신을 위한 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문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사랑이란 감정이 가슴에서 오지 않고 뇌하수체에서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슴의 빗장을 풀어야만 사랑도 드나들 수 있다.
덩치가 크고 딱 벌어졌다고 큰 가슴이 아니다. 봉오리가 크다고 멋진 가슴도 아니다. 눈으로 보는 가슴이 전부가 아니다. 가슴은 서로의 마음이 오고 가는 따뜻하고 때로는 시원한 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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