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 문학 수상자

[인간과문학 2019년 봄호, 신인추천 / 시부문 당선작] 나이테 - 문우순

신아미디어 2019. 3. 13. 14:14

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나이테    -   문우순


전기톱 든 인부 둘이
고사한 은행나무 밑동을 베고 있다


일생의 속살 깊이 파고드는
강고한 톱날에
이제 무엇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랴


생명줄 놓고 그만 쓰러지고 마는 은행나무
밑동에 남은 나이테가
경련하듯 파문을 그린다


제각각인 파문의 간격
힘들게 살아온 자취 역력하다
내 나이테에도 저런 자취 역력하리


삶이란 하나씩 원을 그려가는 것
토막 난 은행나무 나이테 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신인추천 / 당선소감

  오직 하나뿐인 벗이여

 

   시를 벗한 지 얼마만인가.
   팍팍하고 온기 없는 세상, 시라는 벗과 함께 갈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그는 내가 만나려고 할 때마다 나를 애태우며 기다리게 한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만나 즐겁고 행복한 것에 비하면 내가 애태우며 기다리는 것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든지 언제까지나 기다려야지.
   오늘도 그와 팔짱끼고 안산 둘레길 걸으며 굳게 다짐한다.
   백세시대를 살면서 생의 끝자락까지 같이 갈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벗이 되어 우리 함께 가자고.


   시를 써 보라고 적극 권하고 추천해 주신 최금녀 이사장님과 부족한 저에게 시창작을 지도해 주신 홍헌서실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창작교실 문우님들 고맙고, 곁에서 열심히 응원해 준 나의 분신 미현, 일형, 은미 사랑한다.

..

 


신인추천 / 심사평

   자연친화상상력과 새로운 감성 인식


   최근에 들어 현대시에 대한 논란이 높아져 가고 있다. 소통이 어려운 시. 해석의 오류를 유도하는 듯한 난해시. 그리고 참신한 시적 표현 구조를 표방하면서, 깊은 사유가 보이지 않는 시. 이런 시 현실에, 깊은 사유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시를 쓰는 신인을 추천한다. 우순은 늦은 나이지만 그동안 시 공부에 열중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 보았다.
   문우순의 시 〈나이테〉 외 4편의 시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자연친화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한국의 서정시의 맥은 계승되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 시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재 전통까지도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면서 그 전통 계승으로 그치지 않고 시인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감성으로 새로운 서정시를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예컨대 시 〈나이테〉에서 나이테를 “제각각인 파문의 간격”으로, 그리고 “힘들게 살아온 자취 역력하다/내 나이테에도 저런 자취 역력”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삶이란 하나씩 원을 그려가는 것/토막 난 은행나무 나이테 위에/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라는 표현 등이 참신하여 문우순 시인을 추천한다. 좋은 시를 쓸 것으로 믿으며 시의 끈을 놓지 않고 정진하기를 바란다.

추천심사위원 : 최금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