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는개비 - 김동연
새벽부터 뿌옇게 내리는 비를 두고
우산을 펼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그냥 걷는다
얼마만인가
얼굴 한 겹 마음 한 겹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이 는개비처럼
일들이 순순히 풀려 갔으면
소망을 실어 본다
꾸미지 않아도 예뻤던
지난 시간들
버드나무 새싹 같은 연둣빛 호흡
한 번 더,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멀어진 시절로 돌아가 본다
는개비 맞는다는 핑계 삼아
집에서 너무 멀리 걸어와 버린 것인가
하지만 언제나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 사이에
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너무 많이 머뭇거렸다
내친 김에 길 끝까지
한 번 가 보자
가 보기나 하자
신인추천 / 당선소감
새로운 발견을 향하여
시는 특별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시가 나를 자극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읽고 쓰고 또 다시 쓰기를 해 오면서 시와 친해지려 무척 노력해왔다. 아직도 얼마나 더 많이 자신을 쏟아야 할는지 모르지만 끝을 만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손 놓아 버리자고 여러 번 마음먹었어도 시는 떨어지지 않고 틈만 나면 나를 두드리지 않았던가. 이제는 꼭 붙잡고 이 길을 함께 가려 한다. 그 길이 새로운 발견을 향한 최선의 길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지도 교수님과 따뜻한 격려로 늘 곁에서 함께해 주시는 홍헌서실 문우님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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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추천 / 심사평
시·공간 초월의 미학
김동연의 시 〈는개비〉 외 4편을 관통하는 서정적 정서와 인식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 〈는개비〉는 “ 꾸미지 않아도 예뻤던/지난 시간들/버드나무 새싹 같은 연둣빛 호흡/한 번 더, 한 번 더 느끼고 싶어/멀어진 시절로 돌아가” 인식하게 되는 시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시이고, 시 〈은설 유감〉에서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화분 은설”과 “함께 지낸 지 7년”에 대한 기쁨과 회한을, 〈김밥 한 줄〉에서는 김밥 한 줄을 들고 “김밥 가게를 나서는/남자의 뒷모습”을 통해 “엄마가 싸 주던 김밥 추억”을,〈 4000원의 힘〉에서는 “책상 위 형광 램프”의 십수 년의 묵묵히 미소로, 그리고 시〈동동주〉에서는 봄비가 내리는 저녁 “아버지 상 옆에 앉아/처음으로 맛보았던 동동주”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간의 벽을 넘어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야 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그것을 넘나들고 미지의 공간 속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 힘은 창조적이며 신비롭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래서 시인의 그리움은 한결같이 신비롭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그 단적인 예가 시〈 동동주〉의 마지막 연인“ 구름에 갇힌 별 하나가/툭 내 앞에 떨어진다”는 딴청부리기의 미학에서 탐색된다.
사소하기만 하는 일상성에서 시적 모티프를 건져내는 김동연 시인의 세계를 믿고〈 는개비〉 외 4편을 추천작으로 당선시킨다. 정진을 기대한다.
거듭 축하한다.
추천심사위원 : 유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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