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 문학 수상자

[인간과문학 2018년 겨울호, 신인추천 / 시부문 당선작] 고무줄 - 이성룡

신아미디어 2018. 12. 14. 09:52

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고무줄    -   이성룡


새고무줄은 늘기도 줄기도 하지요.
우리는 인연을 늘이기도
줄이기도 하며 삽니다.


고무줄을 너무 늘이면 끊어지듯이
인연도 마구 늘이면 떠나 버리지요.
고무줄을 그냥 두면 축 처져 있듯이
인연을 무시하면 무기력해집니다.


늘이기만 또는 줄이기만 하지 말고
늘임의 긴장과 줄임의 여유가 균형을 이루는
조화로운 인연을 그려 봅니다.


찻잔은 비울 수도 채울 수도 있지요.
우리도 이처럼
채우기도, 비우기도 하며 삽니다.


찻잔을 너무 많이 채우면 흘러넘치지만
인생을 채우기만 하면 풍선처럼 터져 버리지요.
찻잔을 비우면 술잔도 물 잔도 될 수 있듯이
자기를 비우면
새로 채울 것이 생겨납니다.






신인추천 / 당선소감


  또 다른 삶을 열다

 

   반평생 논문을 쓰며 살았으면서도, 글은 타고난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2004년부터 2년간 호주 Curtin대학교에 방문 교수로 근무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던 것 같다. 광활한 서호주의 대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내 생각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대해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그냥 내 생각을 표현하면 되는 거라고 자위하며 생각날 때마다 적어 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시인 최동현 교수님의 권유로 용기를 내 보았는데, 《인간과문학》에 채택되는 영광을 얻었다. 내 전공 분야의 연구 논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에게 또 다른 삶을 열어준 《인간과문학》과 심사위원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이 기쁨을 평생을 같이 걸어온 동반자 장정화와 두 아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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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추천 / 심사평


   선적 혹은 아포리즘적 모티프


   이성룡의 시 〈고무줄〉 외 4편을 관통하고 있는 모티프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다분히 불교의 선적이며 아포리즘적이다. 이성룡 시는 입체적이라기보다 평면적이다. 하지만 그 속에 온축된 삶의 궤적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의 언어가 함유되어 있고, 자연친화상상력으로 형상화된 시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탐색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가 짧든 아니면 다소 길든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예컨대, 시 〈달〉의 “앞산에 걸려 있는 달./호수 위에 앉아 있다가/물 흐르니 달도 따라 흐르네.//마루에 걸터앉아/흐르는 마음 붙잡고 있네”(전문)에서의 ‘마음’은 시 〈금산〉에서 “금산에 올랐다/내 마음에 바다가 들어왔다./바람이 불었다./내 마음이 풀피리가 되었다”에서처럼 바다가 들어와 풀피리가 된 마음으로 변용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시 〈마음의 문〉에서 빗장을 풀고 집착을 버렸더니 눈부신 세상이 들어오는 곳이 된다. 그리고 시 〈고무줄〉에서는 ‘하심下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그의 시는 확대되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신인추천을 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부탁한다.

추천심사위원 : 최동현, 소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