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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사색의 창] 하모니카 - 강중구

신아미디어 2012. 5. 30. 19:59

강중구님의 수필을 읽고 나니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저도 이제부터 기타를 배워보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화이팅!

 

 

 

하모니카


   퇴직을 하고 나니 텔레비전 앞에 자주 앉게 된다. 처음에는 뉴스와
정치, 경제 등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주로 보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학술
과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보게 되더니 요즘은 흥미 있고 재미나는 오락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그중에서도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SBS의 <스타킹>이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도전하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지금
모든 국민들이 최고로 궁금해하는 사람과 핫이슈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 해답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타킹(StarKing)은 놀라운 사람, 놀라운 사연, 놀라운 동영상 중 매주
최고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검색어 1위에 이름을 올릴
만큼 신기한 재능을 가진, 진기한 일을 겪은, 특이한 동물이나 물건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도전을 받고, 그중에서 최고인 1등을 뽑는 화끈한
서바이벌 게임이다.
   더구나 오늘은 금년도 상반기에 스타킹으로 뽑힌 사람들 중에서 왕중
왕을 가리는 총결산전을 방영하고 있으니 나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출연자는 대한민국의 우울증을 한방에 날려버린다는 세계적
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양으로 그녀의 연주 솜씨는 깜찍하고
발랄하여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는 14세 때 독일 마인츠 음대에 최연소
로 입학하여 교칙을 바꾸면서까지 중학교, 대학교를 함께 다녔고 독일
국비로 미국 대학원에 유학을 다녀온 수재로 독일에서 개최하는 세계적
인 콩쿠르에서 두 차례나 우승하였으며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원 전체
장학생으로 공부한 세계 클래식계의 살아 있는 신이라는 울프 훨셔 교
수의 수제자이기도 하다.
   다음 출연자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진유민 양으로 나이가 일곱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이인데도 노래 실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람들이 연기를 하더니 마지막에는 야식배달부로 놀라운 가창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승일 군이 출연하여 감동의 무대를 펼쳤다.
   그러나 상반기 우승의 영예는 79세 고령인데도 노래를 멋지게 부른
이덕재 님에게 돌아갔고 그는 아내에게 세레나데를 열창해서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101세의 나이로 스타킹에 출연하여 하모니카를
멋지게 불어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최영손 할머니가 생각
난다. 최 할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고종황제가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우리나라 역사의 산 증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스타킹에 출연하여 하모
니카를 불어서 우승을 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할머니의 하모니카는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사준 것으로 6·25전쟁 때
고향인 개성에서 피난길에 나서면서 가지고 와서 지금까지 95년 동안이
나 불었단다.
   백수를 넘긴 할머니가 정정한 모습으로 스타킹에 출연하여 하모니카
를 불어서 우승했고, 전국 노인복지관과 문화센터에는 하모니카를 배우
려는 수강생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니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나도 하모니카를 좋아한다. 하지만 혼자서 엉터리로 배운 하모니카이
고 보니 노래 하나 제대로 연주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가끔 마음이
한가로울 때 하모니카를 부는 것은 어릴 때 듣던 하모니카의 향수 때문
이리라.
   내가 처음 하모니카를 본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무렵 우리
마을로 이사 온 동기생 영애는 공부를 잘했지만 노래도 잘 불렀다. 더구
나 그녀의 오빠는 신기하게 노래하는 하모니카를 가지고 있었으니.
   영애의 오빠는 황혼 무렵이면 마을 어귀 언덕에 올라서 “해는 져서
어두운데”로 시작되는 <고향생각>과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라는 <오빠생각>을 하모니카로 불었다. 그럴 때면 영애와 나는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의 오빠가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
었다. 하모니카 소리가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얼마나 아름답고 애절하
던지 어느 때는 코끝이 찡해오고 눈물이 났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하
고 있다.
   내가 하모니카를 가지게 된 것은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단에 서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어느 날 퇴근길에 하모니카를 멋지게 불면
서 약을 팔고 있는 약장수 아저씨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부러워서 나도 하모니카를 하나 사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체
계적으로 배울 생각은 않고 그저 아무렇게나 불어왔으니 엉터리 연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옛 친구가 생각나서 함께
식사나 하려고 만났더니 그 친구는 미술이 전공인데도 하모니카를 잘
불어서 깜짝 놀랐다. 퇴직을 한 후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3년쯤 불었다는데도 연주솜씨가 대단했다.
   그는 나더러 하모니카를 배우라고 하기에 친구가 사주면 배우겠노라
고 했더니 그 다음날 당장 하모니카를 사주는 게 아닌가. 나는 하모니카
를 가지고 있어서 장난 삼아 말했을 뿐인데도 이 친구는 정말로 하모니
카를 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하모니카의 구조와 연주 기법을 설명
해 주면서 CD교본을 보면 쉽게 배울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모니카를 배울 생각은 않고
가끔 마음이 한가할 때에는 엉터리로 불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
하다. 아니, 하모니카만 그런가. 탁구도 테니스도 그림도 지금 쓰고 있는
수필마저도 그저 혼자서 끼적이고 있으니 모두 엉터리가 아니던가. 그
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모두 엉터리뿐이다.
   그런데 오늘 스타킹 결승전에서 79세 고령인 이덕재 님이 우승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격적이었다. 하기야 금년 초에도 95세의 할아버지가
영어공부를 시작하여 10년 후에는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서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고희를 지난 나도 지금부터 정식으로 하모니카를 배워볼까.
그리하여 10년 후에는 나도 스타킹에 한번 도전해볼까. 그래야 한 가지
라도 올바르게 이룰 것이 아닌가. 101세에 스타킹에 나와서 하모니카를
불던 최영손 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강중구 ----------------------------------------------------------------------------
1990년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집: ≪가을에 그린 초상화≫, ≪징검다리가 있는 마을≫,

           ≪산이 있기에 물이 있기에≫, ≪몽블랑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