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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고양이 IQ - 변애선

신아미디어 2012. 5. 29. 18:40

하하하하, 고양이 IQ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아~세~요~. 모르신다면 변애선님의 수필을 읽어보세요.

 

 

 

고양이 IQ


   그 모든 것을 망쳐버린 건 바로 나였다. 식은 개죽보다 못한 지금의
이 신세가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주인님은 이제 오지 않는다. 오
지 않는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그 사람을 처음 만났다. 정원을 배회하고 있던
나를 발견한 그는 대뜸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 당시 유
기동물이었다, 길러주고 보살펴 주었던 식구들은 미국으로 간다며
난리를 치더니 나를 경비실에 팽개친 채 떠나버렸다.
   버려진 나를 데려가서 그가 씻겨줄 때 앙탈을 부리지 않았다. 그 사
람을 나의 주인님으로 모시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때부터 주인님
침대를 독차지했다. 주인님의 겨드랑이 틈새나 날씬한 배 위에서 잠
들었던 그 시절은 화려한 야옹천하 그 자체였다.
   그런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주인님을 만나기 전에
자칫하면 죽어버릴 뻔했다. 사실은 죽기 싫었다. 얼마나 예쁜 고양이
를 몰라보고. 그런 오기로 살았다. 사자는 고양잇과 포유동물이라 하
더니 나도 사자처럼 살고 싶었다. 경비아저씨가 주는 사료는 밍밍하
였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은 사자의 혈통에 거슬렸다. 반지르르하
던 털은 푸석해지고 수염은 오그라들고 꼬리는 아무리 치켜들려고
해도 내려앉았다.
   태초에 나는 자유였다. 초원을 질주하는 치타처럼 먹이를 급습하
거나, 선창가에서 살아 파닥이는 물고기를 잽싸게 낚아채어 그것의
피가 뜨거울 때에 맛을 볼 수 있었다. 모험이나 변수가 무서워서 벌
벌 떨며 안온함을 택한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사막을 횡단하는 죽
음의 ‘다카르 랠리’ 그 자체였다. 위험을 불사하고 심장이 요동치는
삶을 살아갈 자유, 나는 이제 자유다, 외치고 싶었다.
   막상 길을 떠나려 하니 겁이 버럭 났다. 인간이 주는 사료만 먹고
살았으니 야생의 향기조차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런 것이 자유라면
참 버거웠다. 인간의 보살핌이 당장 급했다. 결국 그 아파트를 전전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가혹한 시절이었다. 에이즈, 조류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구제역
같은 바이러스 질환들이 넘쳐났다. 유기동물이 그런 전염병의 매개
체라는 추측기사라도 뜨는 순간 당장 포집되어 살처분 아니면 생매
몰되는 것이다. 까끌까끌한 혀가 벗겨지도록 몸을 정갈하게 닦았노
라 항변한들 야생조류의 똥오줌 취급이나 받을 것이다.
   사방이 흉흉하였다. 그날 밤도 안전하게 노숙할 곳을 찾느라 아파
트 정원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그가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인간쯤이야 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그리고 왝왝 한참
을 토하더니 오동나무에 기대어 울었다. 거기에 오롯이 웅크리고 있
는 나를 발견한 그가 불렀다.
   “야옹아!”
   그날 이후 나의 이름은 야옹. 나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천상의
밀월이었다. 그는 종일 취해 있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음악
을 듣거나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무언가를 애도하는 방식이든
아니든 나의 곁에 그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저 좋았다.
   주인님이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웬 걸. 그는 점점 식어갔
다. 약속이 점점 늘어났고 그가 부재한 공간은 적막했다. 주인의 환
심을 사보려고 발광을 했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벽지를 긁어대거나
닫힌 문 앞에서 밤새 목이 쉬도록 야옹거렸고, 그가 아끼던 도자기를
박살내고 책이나 그림 같은 것을 찢어놓았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침실 문을 열어주거나 쓰다듬어주고 다시 들어
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더 난리를 쳤더니 결국 현관 화장실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사료 비슷한 것을 부어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러나 야옹이는 먼저 반성을 했다. 이 모든 것
이 나의 잘못이라는 것. 질투와 집착에 사로잡혀 도도함과 오만함을
포기했다는 것. 나의 유일한 매력이었을 그 냉정함을 잊어버린 채,
개나 간직해야 좋을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정 때문에 존재의 근원을
망각하고 비굴하게 모든 것을 주인에게 의존했다는 것. 그러나 돌이
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
   그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든 순간 미친 것이다. 그
런 생각은 고양이 사전에 없다. 인어공주가 인간의 다리를 얻으려고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맞바꾸는 일은 동화책에 나온다. 그것 읽
고 얼마나 코웃음을 치면서 비웃었는지 모른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
신의 소중한 무엇을 포기해야 하다니. 그딴 사랑은 왜 하나. 야옹이
사전에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처참지경이 따로 있겠나. 그 화장실 차가운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
려 차라리 굶어죽어 버릴까 하던 무렵 경비아저씨가 찾아왔다. 미국
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나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주인이라는
이 인간은 두말없이 선뜻 나를 내주었다. 정녕 떠나고 싶은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예전 식구들과 해후를 했다. 방울, 나비넥타이, 사료스페셜까지 선
물이 넘쳐났다. 아무 감각이 없었다. 가슴이 먹먹하였다. 어디가 아
픈지 병원에 데려가서 여기저기 주사를 맞혔다. 나는 앙탈을 부렸다.
속사정도 모르고 그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 같은 것 우습게
알고 도도하게 굴면 굴수록 고양이는 역시 까칠한 것이 매력이다 하
면서.
   주인님은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결국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그 오동나무를 내려다보면서 하염없이 주인님을 기
다렸다. 벨이 울릴 때마다 그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와 흥분에 전율
하면서.
   덧없는 기대에 지쳐 남은 삶을 보내는 것도 한 방편이다. 화장실에
처박아두고 사료나 근근이 주던 그런 놈을 뭐가 좋다고? 주인님을 애
써 잊어보려고 분하고 억울한 생각들만 추려내어 떠올릴수록 더욱
괴롭기만 하다. 차라리 하염없이 기다리는 편이 가슴이 덜 아프다.
   영영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자유. 스스로 정한 율법에 따라 살
아간다 하여 그런 한심한 상황도 자유라고 주장하며 부득부득 인생
을 허비하는 그런 지능이 어찌 사람의 것이라 할 수 있겠나. 한때 나
는 고양이 IQ로 살았다.

 

 


변애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