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여행을 다닙니다. 그 중에서 가장 외로운 여행은 무엇일까요?
그 여행을 외롭지 않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요!
외로운 여행
몇 년 사이 원로 수필가이신 중문학자 한당 차주환 선생님, 철학자
우송 김태길 선생님, 국어학자 난대 이응백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
세 분은 수필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수필문학 진흥에 중추역할을
하신 분들이어서 이분들의 타계는 우리 수필 계에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초우 장돈식 선생님께서도 2년 전 망백望百에 영면하셨다. 평소 치
악산 자락 백운산방에서 자연과 벗하며 다람쥐, 딱새, 꾀꼬리, 왕토
끼, 풀벌레 등을 소재로, 수필을 써 독자들의 메마른 감정을 촉촉이
적셔주시던 분이다. 수필집《빈산엔 노랑 꽃》은 생명의 기쁨과 자연
의 질서, 우주의 비밀까지 풀어 보여주는 역작이었다.
1950년대, 1차 산업 시대로 우리가 농업에만 의존해 어렵게 살던
시절, 가나안 농원을 설립해 33년 동안 선진농업기술을 보급해 농민
들의 자립 터전을 마련해주셨고, 그 공로로 국민포장 산업상과, 3·1
문화상을 수상하셨다. 한편으로는 사회의 그늘진 곳에도 많은 관심
을 두고 도움을 주신 분이다.
K 동아리 문우들과 일 년에 한두 번씩 백운산방을 찾으면 초우 선
생님의 활짝 웃는 모습이 나이에 걸맞지 않는 동안에 신체의 건강 지
수와 사고는 젊은이를 능가하게 활기차서 그 산방의 자연을 닮아 있
었다. 갈 때마다 해주신 돼지 바비큐는 이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
는 별미로 잊을 수가 없다. 매사에 열정적이며 유머가 풍부하여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거웠다. 이제는 그 인자하신 모습과 방그러니 계곡,
그 천혜 자연을 접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또 한 분, 나와 10년을 하루같이 수필동아리에서 형 아우하며 우정
을 나누며 함께 장 선생님을 찾아뵙고 문학과 인생을 논하던 우리 모
임의 회장 K 형님도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아이들을 남겨둔 채 홀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주경야독의 고학으로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어 고국으
로 돌아온 신여성이다.
혼자 손으로 키운 세 아들이 훌륭하게 자라 사회의 일원으로 일익
을 담당하고 있다. 큰 손자와 손녀를 유학 보낼 때 며느리도 동행시
키고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7년 동안 기러기 아빠가 된 아들을 돌보
았다. 그 덕분에 손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치과의사가 되었고 손녀
는 변호사로, 유학한 나라에서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며 국위를 선양
하고 있다.
그리고 고인은 늦게 시작한 수필에 심혈을 기울여 일흔에 등단한
노력가다. 평소 모자를 즐겨 쓰고 의상은 디자이너답게 세련되고 단
정한 모습으로 흐트러짐이 없었다. 풍부한 유머로 우리를 즐겁게 했
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으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최은옥의
<빗물> 등은 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명가수였다. 그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악성 파킨슨병에 걸려 자제들의 지극한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애통함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긴 세월 동안 동아리의 발전적 수필공부와 부족한 회비 염출을 위
해 머리 맞대어 의논하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작고 수개월
전 수필집을 남겼다. 우리가 문병 갔을 때 그 와중에도 수필집에 사
인하려고 떨리는 손으로 연습하셨는데, 갑자기 병이 더 악화하여 끝
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천해서 문우들의 눈시울을 더 뜨겁게 했다.
이제 당신이 떠난 빈자리는 어떻게 채울까. 그리움으로 가슴이 아
려온다. 사랑하는 형님! 이승에 모든 번뇌 다 내려놓고 백일홍 33번
지 (묘지이름)에 편히 영면하소서.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인생의
한 과정이기에 저도 머지않아 두 분의 뒤를 따르겠지요.
인간의 평균수명이 백 세 시대가 왔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만이 능
사는 아닌 듯하다. 어느 조사에서 응답자의 43%는 장수가 축복이 아
니라 하고, 28.7%만 축복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노년기가 너무
길면 빈곤, 질병, 고독감을 이겨내기가 힘겹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
만, 막상 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면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것이 인
간의 본능이다. 내 욕심일지 모르지만 두 분 모두 10년 아니 5년만이
라도 더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하나, 필연적인
죽음을 뉘라서 거역할 수 있으랴!
죽음이 살아남은 자에게는 한낱 슬픔과 그리움일지 모르지만, 떠
나는 자에게는 한평생 땀 흘려 이룩한 부귀와 명예, 사랑하는 사람조
차 동반해주지 않는 처절하게 외로운 여행이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외로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
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한번 헤아려볼 일이다.
김외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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