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연수, 요리교실, 컴퓨터교실 등등.. 부부간에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무엇인가를 배웠다는 즐거운 결말에 비해서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됩니다. 그러나 상상과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부부로 거듭나는 것이겠죠.
남편 요리교실
중년기 이후의 남성들이 요리를 배우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취
미도 살릴 수 있으며 행복한 40~50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내
말이 아니고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박상철 교수의 말
이다.
연이틀 무리를 해서 그런지 밥을 지어야 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귀찮을 정도로 온몸이 나른했다. 아침에 끓
여 둔 국이 있고, 밑반찬이 좀 있으니 밥만 하면 될 것 같아서 남편더
러 현미와 혼합곡을 한 컵씩만 씻어서 압력솥에다 좀 안쳐 달라고
했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남편이 주방 쪽으로 걸어가며 쌀을
퍼내는 것부터 밥솥에 안치는 과정까지를 차례로 묻기 시작했다.
“컵은 어디 있지?”
“쌀 옆에 있어요.”
“현미가 어떤 거지?”
“봉투에 한글로 크게 써 놓았잖아요.”
“이거 몇 번 씻는 거야?”
“첫 번째 물은 흘려버리고, 박박 치대 씻은 다음 두어 번 더 헹구세
요.”
“물은 얼마나 넣지?”
“솥 안에 숫자가 있어요. 백미 눈금으로 3까지만 붓고, 뚜껑을 덮
고 손잡이를 돌려서 솥을 잠근 다음, 메뉴는 현미 찰진 밥으로…….”
“한 번에 하나씩만 말해야지, 이렇게 복잡해서야…….”
밥 짓는 시간보다 물어보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복잡해서 못 하
겠다는 말에 그만 내 인내심이 바닥나버렸다. 결국 그날 내 몸을 움
직이지 않고 공짜 밥을 얻어먹으려 했던 내 의도는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자신이 실수를 좀 했다고 해도 그 일로 내가 여러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밥 짓는 얘기는 그날 이후 더 이상 꺼내질
않았다. 그런데 그이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후 토요일 아
침, 부르지도 않았는데 주방으로 와서는 아침 메뉴를 물어 보며 앞으
로 내가 요리할 때 한 가지씩이라도 배우겠다고 한다. 그동안 그는
내가 여행을 가거나 집을 비울 때를 대비해서 간단한 요리 몇 가지는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요리학원에 가서 배운다고 생각하고
내가 요리를 할 때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하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
지 않았다. 그러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요리를 배우려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일단 앞치마부터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요리교실
수강생이 명심해야 할 두 가지만 일러 주었다. 궁금한 게 있더라도
중간에 말을 끊지 말고 설명을 끝까지 다 듣고 난 다음에 질문할 것,
할 줄 아는 요리라도 절대로 강사보다 앞서가지 말 것.
제빵이든 요리든 처음 하는 이들은 모르니까 시키지 않는 일은 하
지 않고, 물어 보고 난 후에야 다음 순서를 하니 실수를 거의 하지 않
는다. 그런데 대충 아는 이들은 자기 실력만 믿고 강사보다 앞서 가
다가 꼭 일을 낸다. 제빵 교실에서는 반죽을 새로 하도록 하고, 요리
교실에서는 재료를 다시 받아가기도 한다.
애호박은 호박을 동글동글하게 썰거나 곱게 채를 쳐서 부친다. 동
그랗게 썰어서 부치면 보기는 좋아도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아침에
는 채를 쳐서 부칠 생각이었으니 채 써는 법부터 시작했다. 칼을 들
어봐서 앞쪽이 무거운 것은 식도食刀로 도마에 대고 썰고, 손잡이 쪽
이 무거운 것은 과도果刀로 칼을 들고 써는 게 편하다. 썰어야 할 재
료를 잡은 손가락 끝을 펴지 말고 손바닥 쪽으로 둥글게 말아 넣고
칼이 손마디를 스치는 느낌이 들도록 칼질을 하면 아무리 칼질을 많
이 해도 손가락을 베지 않는다. 칼질을 많이 하다 보면 손목이 아프
거나 인대가 늘어나기도 하는데 도마에 닿는 부분에 힘을 약간씩 주
면서 칼끝을 앞으로 밀지 말고 몸 쪽으로 당기듯이 하는 게 힘이 덜
든다.
당근, 호박 같은 것은 재료의 단면이 둥그니까 아랫부분을 약간 잘
라서 편평하게 만든 다음 썰어야 편하다. 애호박을 두 토막을 내서
내가 먼저 썰고 남편도 해보라고 했다. 내가 썬 것은 채가 쪽 고른데
남편이 썬 것은 굵기가 들쭉날쭉했다. 오래 익히는 요리는 그대로 두
어도 되지만 전은 조리시간이 짧으니 굵은 것은 설익을 수 있다고 했
더니 남편이 얼른 몇 개를 골라서 다시 썰었다. 이제는 전 부치는 요
령, 채 익지도 않았는데 자꾸 뒤적거리면 맛도 모양도 망가지니 전과
고기는 한 번만 뒤집는 것이 좋다.
다른 날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했지만 남편이 부친 애호박전
과, 씻고 썬 샐러드로 아침상을 차렸다. 완성된 요리 접시를 앞에 놓
고 요리교실에서처럼 시식하기 전에 먼저 평을 했다. 전이 얇지도 두
껍지도 않고 적당한 데다 불 조절을 잘해서 바삭하면서도 노릇하게
잘 구웠다며 첫 솜씨치고는 수준급이라고 했더니, 그이도 애들도 웃
었다.
남편에게 운전 연수를 받다가 이혼 직전까지 갔다는 말이 있을 정
도로 부부 사이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부부가 배우고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안전이 최우선인 운
전이 아니니 서로 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오늘 처음으로 요리를 배운 남편이 나를 계속 요리를
배울 만한 강사로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의
‘남편 요리교실’ 첫 번째 수강생의 실력이 나날이 늘어서 “아내가 곰
국을 끓여도 두렵지 않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경애 -------------------------------------------------
'월간 좋은수필 > 좋은수필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양탄자에 관하여 - 박지평 (0) | 2012.05.25 |
|---|---|
| [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얼차려 소대장 - 박종규 (0) | 2012.05.24 |
| [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무명 여배우 - 이옥자 (0) | 2012.05.23 |
| [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두가지유희遊戱 - 민병자 (0) | 2012.05.20 |
| [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아랑이와 몽실이 - 오세윤 (0) | 2012.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