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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두가지유희遊戱 - 민병자

신아미디어 2012. 5. 20. 09:08

민병자님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수필에 쓰신 "아이들은 소꿉장난 그 자체가 즐거워서 몰입"하는 것이고 그것이 유희삼매이며, 세상을 살때도 그렇게 과정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습니다.

 

 

 

두가지유희遊戱


   최악의 폭설이다. 창밖 놀이터에는 적요가 가득하고 간혹 새 한 마
리 눈 속을 난다. 동화 속 세상 같다. 설경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애들을 데려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딸한테서 온 전화다. 방학 중이라서 친손 둘과 외손 둘, 네 명의 아
이들이 우리 집에서 이틀 밤을 묵었던 참이다. 그 소리를 전해들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집에 가면 학원이다 뭐다 휘둘릴 판에 하
루라도 더 묵을 수 있을 터이니 저희들에게는 마치 복음처럼 들렸던
게다. 모처럼 부모 단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아이들은 우리 집
을 ‘천국보다 더 좋은 천국’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뛰고 떠드는 소리
가 창밖 나뭇가지에 얹힌 눈마저도 무너뜨릴 기세다.
   그러던 중에 딸이 다시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데려가야
할 것 같단다. 환호성도 잠시, 아이들은 금방 시무룩해진다. 그런데
그때부터 열두 살짜리 외손녀를 필두로 여덟 살짜리 친손녀까지 쪼
르르, 넷이서 방을 들락날락하는 품새가 심상치 않다. 저희들이 있는
방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데 살짝 보니 엉뚱하다. 내가 읽다가
한쪽에 놓아두었던 책《위대한 어머니 여신》을 표지가 보이게 펴서
책상 위에 병풍삼아 세워놓았다. 육백여 쪽이 넘는 데다가 하드커버
로 된 책이니 세워 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책 앞에는 작은 향초도
켰다. 그리고 그 앞줄 양쪽에는 유리컵에 물을 한 잔씩 담았다. 저희
들이 먹던 과자도 접시에 올려놓았다. 나름대로 제상祭床을 차린 모
양새다.
   그리고는 저희들 딴에는 격식을 갖추었다 생각했는지 책상 주위에
둘러서서 등을 보인 채 제법 간절하게 돌아가면서 웅얼웅얼 기도를
한다. “제발 우리 엄마가, 우리 고모가, 눈이 더 펑펑와서 오지못하
게” 해달라는 기도다. 살짝 방문을 닫은 남편과 나는 소리도 내지 못
하고 웃었다. 잠시 후, 하도 조용해서 다시 보니 아이들은 촛불을 켜
놓은 채 방바닥에 배를 깔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그저 그림
그리기나 낙서를 하겠거니 생각했다.
   열심히 기도를 한 보람도 없이 아이들은 결국 우리 집에서 하룻밤
을 더 자지 못하고 각각 저희들 부모 손에 이끌려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여전히 눈 속에 갇혀 있다. 아이들이 떠난 자
리가 마치 운동회 끝난 운동장 같다. 나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마
음이 허전하거나 사람이 그리울 때, 나는 고요 속에서 가장 많은 사
람들과 침묵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파피루스의 숲, 그곳
에서 현자들을 만나는 일은 행복하다. 수백 혹은 수천 년의 시간 저
편에 누워 있다가 언제든지 내가 부르면 책의 갈피에서 반갑게 깨어
나 영혼을 나눠주는 사람들, 산 자 혹은 죽은 자들, 새로운 것 혹은
묵은 것들, 관념 혹은 사물들, 그들을 만나러 나는 도서관으로 놀러
간다. 만상의 존재들과 얼굴을 맞대고 눈짓으로 말하고 침묵으로 수
다를 떨 수 있는 그곳은 그 어떤 걸림도 없이 내가 가장 즐겁고 편안
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멀다. 물론 이곳에도 도서관이 없는 것은 아
니다. 그러나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안온함을 즐기는 편인 나는 이곳
Y시로 이사를 온 지가 한참되었는데 아직도 단골로 다니는 도서관엘
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드디어 광역버스가 왔다. 나는 버스 앞문 입구 쪽의 맨 앞자리에 앉
는다. 이곳에 이사한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시간이 길에 떨어진 깨
알이라면 그것마저도 주워서 쓰고 싶을 정도로‘시간’에 매어 살아야
했기에 처음 이사를 와서는 길에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조바
심을 했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그 방편의 하나가 도로 전면이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좌
우 전면의 풍경을 즐기며 시간을 잊는 일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
은 종점과 가까워서 그 자리는 거의 매번 비어 있다.
   오늘도 그 자리는 내 몫이다. 그런데 출발한 지 이십여 분을 지나
겨우 삼거리 앞에 이르렀는데 버스가 더 이상 움직이질 못한다. 앞에
는 자동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주차장 같다. 차선도 엉켜 있다.
크고 작은 저 차에는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을까. 어디로 가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부질없는 망상을 하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말한다.
   “오늘은 어디든 길이 많이 막히니 꼭 급한 용무로 나가시는 분이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내릴 분은 내리라며 차 문을 연다. 승객 중 몇 명이 내려서
가드레일을 넘어간다. 급한 용무도 없는 나는 못들은 척 앉아 있다.
한 여인이 가방을 메고 뒤뚱뒤뚱 걸어간다. 눈의 반란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엉거주춤, 속수무책이다. 자
연의 힘에 이렇듯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거늘……. 가로수
에 얹혔던 눈이 꽃 뭉치처럼 떨어진다. 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바
람의 짓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유동하면서 눈꽃의 기운을 몰고 다
닌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삼십여 분을 더 기다리던 운전기사는 드디어
왼쪽 차도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역주행을 한다. 아슬아슬하
지만 이럴 때는 불법도 밉지 않다. 겨우 제 차선으로 끼어든 버스는
천신만고 끝에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멀리 보이는 산의 하얀 이마
를 아침해가 덥히고 있다. 이제 산의 이마를 덮은 눈도 소신공양하듯
녹아내리리라.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태양도 눈도 고맙다. 올 여름
뙤약볕 아래서는 꼭 겨울의 고마웠던 햇빛을 기억해야 하리라.
   버스를 두 번 더 갈아타고 도서관엘 도착했다. 두 시간이 넘게 걸렸
다. 입구에서 ‘서부해당화’라는 이름표를 단 나무가 내 얼굴에 눈가
루를 뿌리며 아는 체를 한다. 시방세계를 넘나드는 바람이 예까지 쫓
아왔나 보다. 보르헤스는 이 우주를 무한한 도서관으로 보고 만물을
상호텍스트적인 고리로 읽지 않았던가. 오늘 보니 눈도 태양도 바람
도 자연의 법칙 안에서 상호텍스트적이다. 자연의 이법보다 더 위대
한 것이 있던가. 그렇다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일점一點으
로 서 있는 나는 이 작은 물리적 공간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낯익은 풍경들이 반갑다.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자료를 찾는 사람
들. 소리 없이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아, 저편, 반백의 영감님은 무
슨 책을 저리 쌓아놓고 읽는 것일까. 방대한 서가書架에 일렬로 서 있
는 책들, 내게 길을 알려주는 저자들, 숨소리까지 들릴 만큼 조용한
공간에서 만나는 갑남을녀들, 어쩌면 나는 저들에게서 삶의 이정표
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폭설 속에서 길을 찾는 바람이 되어 하루를 소비했다.


   늦은 저녁 귀가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가 우연히 아이들이 써놓은
메모장을 발견했다. 아하, 그거구나. 어제 저희들끼리 방바닥에 배를
깔고 쓴 글들을 무심히 놓고 간 게다. 내용을 보니 기도문이다. 십자
가와 하트 모양의 그림도 그리고 저희들이 쓴 글을 종이집게로 묶었
다. 열두 살짜리 지수가 상상력을 발휘한 듯하다. 자신들을 ‘소원과
고민을 비는 비밀집단’으로 명명하고, 각각 2장씩 맡아 1장부터 8장
까지 ‘○○의 서’라고 저희들 이름을 붙이고는 목차까지 꾸몄다. 그
리고 온갖 신神을 다 동원해서 “우리의 신 하나님, 부처님, 알라에게
이 글을 쓰노라.”를 시작으로 10번까지 항목을 정하고 계명을 썼다.
십계명을 염두에 둔 듯하다. 다른 세 아이는 각자 기원을 적었다. 악
천후란 악천후는 모두 동원하여 “엄마가 오지 못 하게” 해달라고 적
으면서도, “부디 큰 사고는 나지않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걱정을 하
는가 하면, “엄마가 싫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니 용서해주시옵소서.”
라고 변명도 한다. 어린애들이 쓴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진지해
서 웃을 수만은 없는 대목도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간절히 기도문을 써놓고는 그 존재조차 잊고 일
상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의 기도에는 소망은 있되 집착
은 없다. 문득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소꿉장난 그
자체가 즐거워서 몰입”하는 것이고, 그것이 유희삼매이며, 세상을 살
때도 그렇게 과정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
다면 아이들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아이들에겐 기도가 놀이였다. 그
렇다면 나의 도서관행은 놀이가 기도였던 건 아닐까.
   새는 하늘을 날기 전에 먹이를 줄인다고 한다. 몸을 가볍게 하여 잘
날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몸이 가볍다. 지상의 헛된 것에 매이지 않
고 새처럼 가볍게 하늘을 난다. 그렇다면 나는 지혜가 아닌 잡동사니
양식에 배를 불리고 지상의 몸무게에 갇혀 뒤뚱거리며 하늘을 날지
못하는 새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민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