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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얼차려 소대장 - 박종규

신아미디어 2012. 5. 24. 18:23

병역특례로 병역을 마친 나로써도 누군가 군대 이야기를 하면 마치 5년동안 군대를 다녀온 사람처럼 이야기를 한다. 4주 훈련동안 훈련생들과 얼차려를 받았던 일, 사격훈련 등등.. 인생을 살면서 이처럼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얼차려 소대장


   사람들은 내 인상 좋다고들 한다. 올처럼 유난히 추운 겨울이면
내 좋은 인상만 믿다가 초주검이 되어버린 옛 동료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중부전선의 겨울. 우리 부대의 주둔지는 높은 산 아래 계곡이었다.
우리 소대는 북한의 소형 정찰기 침투에 대비하여 고지대 경계근무
에 차출된다. U-2기라 불리는 이 정찰기는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기
때문에 특히 야간경계가 중요했다. 부대원들을 이끌고 가파른 산 정
상까지 오르는데 너무 힘겨워서인지 찬바람에도 땀 한 방울 나지 않
는다. 하얀 입김은 방한모 깃털에 얼음 가시로 돋아나고, 소변 줄기
는 바닥에서부터 고드름으로 솟아오른다. 산꼭대기에서 본 수은주는
영하 32도. 대원들의 뺨은 발갛게 익은 감이 가시에 긁힌 듯 보였는
데, 이 추위를 막아내기 위해 우선 소대 텐트를 설치해야 했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열기가 골고루 통하도록 호를 구불구불 판
다. 아궁이를 만들고, 판판한 돌로 구들장을 놓는다. 구들 위에는 흙
을 두텁게, 그 위에 낙엽을, 시루떡을 안치듯 다시 흙을 덮은 다음 매
트리스를 깐다. 마지막으로 이십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몽골
텐트를 덮어씌운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구들장이 달궈지면서 매
트리스로 온기가 올라와 텐트 안 온도는 서서히 상승하게 된다.
   밤이 이슥해지니 대지의 산등성이들은 거대한 검은 괴물로 변하
고, 하늘은 차가운 별빛을 쏟아낸다. 불 당번과 경계병을 지정하여
교대로 근무하도록 당부한 다음 소대장의 개인용 텐트로 들어온다.
선임하사에게는 새벽 세 시에 깨우라고 당부했다. 당번병은 매트리
스 두 장을 포개어 깔더니 위에 모포 두 겹을 더 깐다. 내가 드러눕자
수통을 건네준다. 끓는 물을 채웠는지 수통이 뜨겁다. 수통을 안고
눕자 모포를 겹겹이 덮어준 다음 밖으로 나가 텐트 자크를 채운다.
소대장은 별도의 온돌을 설치할 수도 없으니, 뜨거운 수통이야말로
각별한 난방장치다.
   추위에 떨면서도 두 손으로 받쳐든 얼음을 어쩌지 못하는 꿈을 꾸
다가 눈을 뜬다. 어둠 속에 귀울음이 요란하다. 손에 차가운 것이 느
껴져 확인해 보니 그새 수통의 물이 얼어버렸다. 꿈속에서처럼 얼마
동안은 얼음덩이를 안고 잠을 잤던 셈이다. 아랫배에 품은 따뜻한 수
통 때문일까, 나는 쉽게 잠에 빠졌던 것 같다. 아뿔싸! 시침이 벌써
새벽 다섯 시를 지나고 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을 두 시간이나 지났
다니. 나는 텐트를 박차고 밖으로 나온다.
   경계병, 경계병은 어디 있나? 사위가 쥐죽은 듯하다. 선임하사까지
잠들어버렸나? 상급부대에서 이를 안다면 근무를 소홀히 한 지휘책
임을 면치 못할 일이다. 선임하사! 경계병! 내 목소리는 어둑한 산과
계곡으로 쩌렁쩌렁 메아리친다. 그때, 소대 텐트 문을 젖히면서 두
병사가 총을 들고 후다닥 뛰쳐나온다. 너무 추워 텐트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것일까, 그러나 놀라운 것은 텐트 문을 열 때 병사들을
따라 뿜어져나온 연기다. 하얀 연기가 물컥물컥 검은 하늘에 반짝이
는 별들을 지워나가는데, 연기 속에서 잠든 병사들을 생각하니 정신
이 번쩍 난다. 전원 기상! 선임하사 어디 갔나? 즉시 기상하라! 나는
호루라기를 불어대면서 서둘러 텐트 문을 젖힌다. 잠결에 놀란 병사
들은 쿨룩거리며 막사에서 뛰쳐나오고, 어떤 병사는 연기에 취해 다
리가 비틀거린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철모도 안 쓴 선임하사가 다급
히 다가오면서 부대구호 “백골!”을 외친다. 백골이고 천골이고, 소대
원들 다 불고기 만들 작정이냐, 빨리빨리 텐트부터 거두라! 매트리스
를 들어올리니 밑 부분은 온통 벌겋게 불이 붙어 있다. 대원들은 매
트리스를 밖으로 내던지고, 불을 끄고, 옷을 챙기며 난리 법석이다.
대체 이 안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을까. 전날 온종일 힘들게 작
업하느라 많이들 지친 데다 따끈따끈한 온돌에 몸이 풀어졌으니 불
이 난들 알았을까. 정말 다행인 것은 화상을 입은 병사 한 명 없다는
것이다. 대원들은 아닌 새벽에 불을 끄느라 혹한 추위도 깡그리 잊은
모습이다. 둥글게 말려지면서 타고 있는 매트리스를 한 병사가 텐트
밖으로 밀쳐낸다. 순간 매트리스 불덩이가 계곡 쪽으로 굴러가면서
주변 마른 나뭇가지들에 불씨를 놓는다. 산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다. 저 매트리스를 잡아라! 산불로 번지지 않도록 해
라. 깜깜한 계곡으로 불붙은 내 고함이 매트리스와 함께 굴러내린다.
어둡고 차가운 겨울산 정상에서 불과 연기에 뒤엉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병사들을 수많은 별빛이 초롱초롱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로 취침!” “기상!” “뒤로 취침!” “기상!”
   다섯 명씩 한 조가 되어 어깨동무하고 산꼭대기에서 지대가 낮은
쪽으로 몸을 뒤로 뉘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호흡을 맞춰 동시
에 일어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지친 동료까지 들어올려야 하는 이 얼
차려는 가장 고통스러운 단체기합이다. 대원들의 기압은 그날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이어졌다. 55분이 지날 때마다 5분간 휴식을
주었으니 정규 일과를 얼차려로 대신한 것이다. 계속된 얼차려에 대
원들은 초주검이 되었다. 그 일은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3
개월이 지날 때 일어났다. 나는 부대원이 한가족같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이번 일은 나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소대원들의 기강해이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결국 나는 얼차려 소대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내 얼굴까지 달라져 보였을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 시절로부터 강산이 네 번째 바뀌고 있다. 가장 혹독한 추위 속에
서 뜨거운 불길과 맞섰던 얼차려의 추억, 젊음을 함께했던 당시의 소
대원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박종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