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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신인상수상작] 가야금 소리 - 정곤

신아미디어 2012. 5. 14. 09:01

정곤님의 가야금소리를 같이 같이 들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가야금 소리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 시골 뒤뜰 풀벌레 소리처럼 고요하게 들린다.
창가에 서 촉촉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쓴 곡인 <kiss the rain>을 듣
는다. 이 곡은 이루마가 피아노로 연주한 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하여 많
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았던 곡이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어린 시절 아저
씨가 들려주던 가야금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아저씨가 시골 토담집으로 이사 온 것은 늦은 봄이었다. 그날은 안개
같은 봄비가 지분거렸다.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질척거리는
황톳길이었다. 장화를 신지 않고는 들어오기 힘들었다. 장화가 없는 사
람은 신발을 들고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올리고 맨발로 걸어왔다.
   할머니와 여동생이 신발을 왼손에 들고 허리춤에 치마를 끼워 단단히
동여맨 채 이사를 왔다. 잔주름이 많은 할머니는 머리에 이불을 이고
있었으며 앞니 하나가 빠졌으나 눈빛만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여동생
은 눈두덩이 부어 올라있었고 귓불은 작았으며 얼굴은 창백했다. 그때
나는 아저씨가 짊어진 지게 위에서 가야금을 처음 보았다. 저것이 도대
체 무엇에 쓰는 것일까 궁금했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미처 챙기지 못한 짐을 날라다 주면서도 온통 가야금에 정신이 팔
려있었다. 신기해서 만져보고 당겨보고 튕겨보았다. ‘슬렁 스르렁’ 소리
가 났다. 아저씨는 가야금 줄을 고르더니 연주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현침(머리 부분)이 있는 쪽을 연주자의 오른쪽에 올려놓았다. 부들 쪽
(줄이 있는 쪽)은 바닥에 내려놓고, 책상다리를 한 자세로 연주를 한다
고 설명해 주었다.
   별이 총총 빛나는 어느 날 저녁. 가야금 소리가 바람에 분가루처럼
날아왔다. 동생은 가야금 소리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물 위를 걸어가며
춤추는 아름다운 선녀 같은 목소리를 지닌 가야금 소리였다. <흥타령>
과 <도라지타령> 그리고 <아리랑>을 연달아 들을 때는 궁둥이춤이 절로
추어졌다. 나는 신이 나서 오른 손으로 아래 입술을 위로 당겨 ‘획’하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마당 한쪽 장독대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이슬이 내릴 때까지 들었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넋은 반쯤 나갔다.
가야금 소리를 담아다가 시내 한복판 네거리 하늘에다 뿌려주고 싶은
밤이었다. 더러는 깊은 밤 책 읽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보내어
잠을 깨워주고도 싶었다. 신명나게 울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절한 기다림처럼 가슴을 흔들다가 이내 포근한 어머
니 가슴 같은 소리로 변해가기도 했다. 가야금 소리는 바람과 구름 그리
고 풀벌레까지도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복을
곱게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가야금을 연주했다. 박수를 받으며 노래
도 불렀다. 무대가 있고 휘어지듯 흐르는 장고 소리가 고막을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했다. 애절하게 넘어가는 아쟁의 숨소리가 줄에 꽂혀 함께
떨고 있었다. 황홀한 꿈이었다. 꿈은 내 가슴속에 갇혀 불덩이처럼 남아
있었다.
   보름달이 비친 날 밤에도 가야금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집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원-. 안
됐구먼….” 어떤 사람은 소리를 먹고 산다고 했다. 나는 가야금 소리를
먹고 사는 것인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그리
고 그들은 항상 즐거웠다. 우린 노래를 듣고 나서 슬그머니 감자 몇 개를
그 집 마루 위에 올려놓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 떨어진 방죽에서
그 집 동생이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발작 증세를 일으켜 죽었
다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토담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으며 가야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름 방학 때, 서해 바다 작은 포구에 살고 있는 친구 집으로 쉬러
갔었다. 초가집 방 안에는 한문책이 가득했다. 오래된 책들이 역사같이
쌓여 있었다. 책을 빌리려고 고르고 있는 순간이었다. 봄눈 같은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실로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반갑
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아저씨가 들려주던 가야금
소리를 내심 그리워하고 있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가 들려
주던 그 가야금 소리! 나는 친구 아버지가 가야금을 연주해 주었기에
가야금 소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가 있었다.
   가야금의 명창 황병기 선생의 <춘설>은 이른 봄 아름다운 풍경을 상
상하게 한다.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 나그네를 상상하게 하기도 하고,
깊은 산골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낭만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런
가 하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에게 손짓하여 잠을 깨우는 산들바
람이 산으로 강으로 흐르는 느낌이다. 마지막 장은 자진몰이 장단으로
템포가 점점 빨라지면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가야금 소리는 내 어린 시절 소리이다. 옛 추억들이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소리이다. 평생의 소리가 되어 내 가슴속에서 자라는 소리이다.
예술회관에서 가야금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꼭 가게 된다. 가야금 줄
고르는 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하는 힘이 있어 보인다. 마치
서울중앙박물관에 있는 신윤복의 <거문고 줄 고르는 여인>처럼 한 폭
그림이 연상된다.
   살다보면 사무치게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다. 가족들이나 책도 날 달
래주지 못할 때가 있다. 등산으로도 갈증이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친구를 만나 그리운 목소리를 찾아간다. 한국의 소리, 가야
금 소리, 그 소리가 듣고 싶어서이다.

 

 


정곤 --------------------------------------------------------------------------
전북 김제 출생. 법무부 교정직 공무원으로 정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과정 문예창작과 수료.
덕진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수강. ≪월천≫, ≪덕진문학≫ 동인.

 

 

 

수상소감  --------------------------------------------------
   지난 3년 동안 글과 함께 살았습니다. 당선소식을 듣는 순간, 원고
뭉치를 들고 시골길을 걷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신록이 꽃보다 아름
다우며 가정의 달이기도 한 이 계절, 내 인생 문학의 봄을 심도 깊게
음미해 보겠습니다.
   텃밭은 하늘같이 싱싱한 채소로 가득합니다. 그 기운이 둘레의 삶을
싱그럽고 풍요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상추를 심었던 밭에서 채소를 바
구니에 가득 담아 오는 그런 소박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즐겁게 글을 쓸 것 같습니다. 교만하거나 만족
해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더욱 깨어있는 문학정신으로 더 나은 작품
을 천착해 나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부족함 많은 글이지만 도약할 수 있도록 뽑아주신 ≪수필과비평≫ 심
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과 문우님들 그리고 가족
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