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 신인상수상자인 김미자님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무논에 잠기다
결혼 후 처음으로 양산에 있는 시댁에 가는 날이다. 봄철에 첫아이를
업은 나에게 그날의 시댁 나들이는 여행을 떠나는 듯 설레기까지 했다.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나를 배웅 나온 남편의 표정에는 까닭도 없이 약
간은 그늘져 있었다.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시키는 대로 다하면 안 된다
고 신신당부를 했다.
시부모님은 동네에서 소문난 농사꾼이셨다. 오래전부터 하루치 목표
량을 정해 놓고 논밭으로 나갔다고 한다. ‘흙은 부지런한 사람을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며 아무리 날씨가 험하여도 계획대로 일을 마쳐야 집으
로 돌아왔다. 늦은 밤에 들어오는 날이 다반사일 정도로 그것은 두 분의
철학 같은 철칙이었다.
시아버님은 작은댁의 양자로 들어와 2남 4녀를 두셨다. 첫째아들로
태어난 시숙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둘째였던 남편
은 어렸을 적부터 머슴마냥 농사일을 거들었다. 친구들이 딱지치기를
하는 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논을 맸고, 책가방을 논둑에 갖다 놓고 일을
하다가 허겁지겁 학교에 가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등생의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매사를 열심히 했
다. 장남을 지나치게 편애한 부모님에게 발목을 잡힐 것 같아 남편은
일부러 울산에 있는 고등학교와 부산에 있는 대학교에 갔다. 그 야속한
과거를 잊지 못한 듯 결혼 후에도 종종 밥상머리에서 찬거리로 삼았다.
시댁에 도착한 내 차림은 청바지에 스타킹이었다. 파마머리에 온갖
멋을 부린 차림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어머님은 허름한 몸뻬 바지
와 목이 긴 양말 한 켤레를 내 주셨다. 땀에 찌든 광목수건까지 두르고
나니 일순간에 시골 아줌마가 되었다. 설마 하던 모내기를 시킬 작정이
었다.
써레질이 깔끔하게 되어 있는 논으로 들어갔다. 난생처음 들어간 논
바닥이 물컹거리는 순간, 괴성이 저절로 터졌다. 그러나 젊은 일꾼 한
명을 사온 듯 신이 나서 시부모님은 모 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갓난아
이를 등에 업은 채 시키는 대로 모를 서너 포기씩 떼어 줄에 맞춰 심었
다. 내가 허리를 굽힐 때마다 아이는 힘이 드는지 등 뒤에서 끙끙거렸다.
아이도 나도 미련퉁이가 따로 없었다.
시골은 봄날의 밥상 같았다. 날씨는 병아리의 솜털처럼 포근하였고
신작로에는 시골 버스가 흙먼지를 피우며 오고갔다. 모내기가 끝난 무
논은 잘 다듬어진 푸른 바둑판 같았다. 집 마루에서 바라보았더라면 한
폭의 수채화였겠지만 요령을 피워봐야 소용이 없었다.
하루 만에 지쳐버린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잘하든 못
하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사방에 자리한 논을 오가며 모심기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다섯째 날은 집 앞 두 마지기 논에 모를 쪘다. 풍쟁이 아저씨의 이마마
냥 물기가 번들거리는 논둑을 참이 든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걸어갔다.
허리를 잠시 펴신 어머니를 보는 순간 참함지박을 받으러 오시려나 하
는 기대감으로 몸의 균형을 잃었다. 헛디뎠다. 논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숟가락, 젓가락, 반찬통들이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흙탕물을 느
닷없이 반쯤 뒤집어쓴 아이는 경기하듯 울어댔다. 작은 수놈을 등에 업
은 암개구리는 물속을 잘도 헤엄치건만 나는 논바닥에서 자꾸만 허우적
거렸다. 눈빛이 빨갛게 변하신 채 달려온 아버님은 젖먹이 손자만 살피
셨다. 야단맞은 어머님은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모만 찌고 있었다. 내
꼴을 본 마을 어른들이 집으로 가라고 등을 밀었지만 만신창이 된 옷과
신발만 뿌옇게 보였다.
정신없이 집에 돌아와 찬물로 씻고 이불을 둘러쓴 아이와 나는 사시
나무처럼 떨었다. 뒤따라온 아버님은 라면 한 그릇을 손수 끓여 내 앞에
놓으셨다. 내 처지를 내려다보는 아버님의 눈빛은 논물만큼 투명했고,
나는 반항이라도 하듯 라면 그릇만 바라보았다. 논에서 꿈쩍도 않았던
어머님이 더욱 야속했다. 터미널까지 따라와 요령껏 해야 된다던 남편
의 당부가 비로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날 밤 개구리는 유별나게 울어댔다. 날이 새도록 뒤척이는 내 낌새
를 참지 못하고 어머님은 등 뒤에서 중얼거리셨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날새기만을 기다렸다. 일해서 논마지기나 사고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안 살았나.” 철없는 내 속은 아리면서도 여전히
부글거렸다.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는 말씀이 논바닥에 고꾸라진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때만큼 친정어머니가 종종 토닥거
려주던 손길이 그리워지는 때가 없었다.
그 후에도 잔잔한 실수는 되풀이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마침내
9박 10일간의 첫 농번기 파견근무가 끝났다. 돌아오는 날 오후, 어머님
은 꼬깃꼬깃 접은 지폐 몇 장을 내 손 안에 밀어 넣었다.
“갸한테는 아무 말 하지 말거래이.”
어머님은 내심 무엇이 걱정이었을까? 평생 농사에 묻혀 살아오셨건만
아들한테서는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반쯤 기죽은 목
소리가 왠지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벼 포기처럼 안쓰럽게 들렸던
이유는 지금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봄가을 농번기가 될 적마다 나의 일손 돕기는 계속되었다. 4년 터울
둘째아이를 가졌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켜봐야 진
척이 없는 내 농사 솜씨가 답답하였던지 두 아이나 잘 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사립문을 나가셨다. 나한테 농사일을 포기한 듯했다. 손자
가 귀한 집안에 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낳은 공적을 인정하는지 그 후로
는 험한 농사일에서 면제되었다.
입춘이 지난 창밖에서는 봄볕이 익고 논갈이하는 경운기가 농번기의
시작을 알려준다. 덩달아 27년 전 일이 작년처럼 떠오르며 온몸이 긴장
된다. 등에 업혔던 아이는 새 직장에 몸을 담았건만 내 시간은 여전히
무논에 잠겨있다.
김미자 ----------------------------------------------------------------------
충남 대천 출생. 부경수필아카데미 수료.
수상소감 --------------------------------------------------
수년간 함께해 온 화초들이 베란다에 가득합니다. 봄을 맞은 가지마
다 몸을 푼 새잎들이 참으로 정겹습니다. 기쁩니다. 아마도 제 글쓰기에
봄을 맞은 듯합니다. 그래서 다들 봄을 희망의 계절이라 부르나 봅니다.
수필은 제 삶의 미완을 완성으로 이끌어가는 활력소입니다. 용기 하나
가지고 글쓰기에 뛰어들었던 시간에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참으로 바쁜 일상이었습니다. 가게 일을 하다 말고 학교 가는 저에게
싫은 내색 한마디 없이 격려해준 남편이 고맙습니다. 수필 쓰는 엄마의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든든한 두 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다정한 문우
들과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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