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정순인님을 글을 읽고나니 웃음이 나네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좋은수필은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해주나 봅니다.
갑갑해서 어쩔꼬
'서재가 갑갑하다.'
달랑 한 줄 써 놓고 다음 문장이 안 나와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본다. 프로 작가들에겐 주변에 널린 거고 아마추어 작가들은 찾아도
없다는 그 소재, 지금 머릿속에서 풀리기를 기다린다. 뿐인가. 주제
까지 우아한 등장을 기다리는데 그것을 수필답게 꾸며줄 단어란 놈
들이 이상하리만치 생각 밖에서 서성이며 나 몰라라 한다.
아니지. 아무리 답답해도 그리하면 안 된다. 고귀한 한글에, 놈이
라니. 집현전 학자들과 힘들게 창제한 훈민정음에 천한 표현 썼다고
세종대왕이 저승에서 용포를 휘날리며 진노하시겠다.
컴퓨터를 끄고 거실로 나가 누웠다 앉았다 몇 번 하다가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수필 잡지를 뒤적인다. 혹시나 해서,
다른 작가의 글 중에서 벼락 같은 힌트를 얻을까 싶어 책장을 넘겨보
지만 아서라 시간만 축냈다.
세련된 작품이나 초보적인 글이나 다 “어딜 감히…….” 쏘아보는
듯해 얼른 방을 나오며 애꿎은 문에 눈 흘기고 서재에 들어와 다시
글 쓸 채비한다. 의자에 앉아 숨 한 번 크게 내쉬는 것이 고작이긴 해
도 감성을 관장한다는 우뇌가 가상타 여겨 문장에 물꼬를 트면 얼마
나 좋으랴.
반드시 원고 마감일을 지키리라 마음 다잡고 컴퓨터 전원을 켜자
모니터가 심정을 안다는 듯 한 줄 써놓은 파일을 재빠르게 띄운다.
자음과 모음이 얌전하게 배열된 자판에 손가락을 올리며 이번에는
굴비 엮듯 글을 엮으리라 작정한다. 하지만, 웬걸 손이 제자리다.
사실 서재가 왜 갑갑한지 말로 하면 몇 마디로 끝난다. ‘확 트인 하
늘을 볼 수 있고, 멀리 있지만 산 너머 또 산이 있는 전경이 좋아서 선
택한 방이었는데, 비어 있던 공간에 아파트 건축이 시작되면서 시야
가 막혀 가 서재가 답답해진다.’이니 짧은 이야기다. 그런데 소재가
있다는 자신감에 비례할 재주가 없는 사람이 여기에다 문학성을 양
념처럼 곁들여서 글을 쓰려 하니 힘이 드는 것이다. 내용을 고무줄처
럼 잡아당길 요량이라 이리 답답한 거다.
그나저나 멋진 문장이 술술 안 나오는 건 그렇다 치고 이제 정말 집
안에서 넓은 하늘을 보긴 글렀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대단지에다가 분수와 폭포와 벽천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아우르는 곳이라 소문이 자자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랴.
이미 거실은 앞 동 옆 동이 앞을 막아 고개를 치켜들어야 손바닥만
한 크기로 하늘이 보인다. 집 안에서 유일하게, 가름할 수 없는 넓이
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서재마저 공사 중인 아파트가 완공되면 거실과
같아진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빈틈없는 땅. 높다란 건물로 조각나는 하늘.
건축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태초의 천天과
지地는 눈앞에서 숨바꼭질한다.
지었다 하면 고층이지만 도심과 수도권은 집 없는 가구가 점점 는
다. 올라가는 층수에 견줄 만큼 전셋값이 치솟는다. 전체 인구의 사
분의 일이 쏠린 탓이다. 지방 곳곳에 경제권을 분산하지 않은 과거와
현재 정부의 부족한 지혜가 원인이다. 그들의 식견을 탓해 무얼 할까
만, 제 고향을 지켜도 먹고 살 수 있는 적절한 경제와 사회적, 교육적
환경을 구축했다면 지금처럼 조밀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이제 내 집이 동굴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집 안에서 계절 따라 몸
피를 변형하는 산이나 비 온 후 산을 얼싸안고 피어오르는 안개의 몸
짓을 보는 호사는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끝없는 하늘을, 자연을 보려면 고유가 시대에 밖으로 나돌아야만
될 이내 신세. 제대로 된 글을 생산하지 못하는 감성을 탓하며 컴퓨
터 자판에 놓인 손을 떼지 못한다. 주저리주저리 푸념에 불과한 단어
를 나열하다가 서재를 돌아보며 “갑갑해서 어쩔꼬, 어쩔꼬.” 혼잣말
하며 자판만 톡톡 두드린다.
정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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