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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신작수필 21인선] 복사꽃 피는 마을 - 이영옥

신아미디어 2012. 5. 2. 09:31

고향..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는 고향은 어떤 모습인가요 ?

이영옥님의 복사꽃 피는 고향을 같이 느껴보세요.

 

 

복사꽃 피는 마을

 

   어느 날 지하철에서였다. 한 노인이 횡설수설하며 주위를 시끄럽
게 하자 누가 신고를 했는지 완장을 두른 안전요원이 와서 주의를 주
었다. 그러자 그는 남을 해롭게 하지도 않는데 그런다며 투덜대더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한 손에는 보퉁
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의자 옆 난간을 붙잡고 서서
   “수양버들 휘늘어진 분홍 입술에
   송아지 우는 마을 복사꽃 피네.
   얼마나 좋은 말이여, 음 좋고 말고 훗훗훗…….”
   하며 혼자 웃더니 다시
   “수양버들 휘늘어진 분홍 입술에.”
   하고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아∼ 아아∼, 송아지 우는 마을 복사꽃 피네였지.”
   그러기를 반복하더니 다음 역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몇 년 전까지는 내게도 복사꽃 피는 그런 시골이 있었다. 남편이 태
어나고 시댁 조상들이 대대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동네였다.
   결혼 전 서울에 살던 남편은 조부모님이 살고 계신 시골집 이야기
를 자주 해 주었다. 가을이면 메뚜기도 잡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물장
구도 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시
골에 집이 세 채나 된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조부모님께 인사를 드
리러 찾아갔을 때였다. 그는 마당 한가운데 나를 세워놓고 안채와 사
랑채, 허술한 광이 딸린 방 한 칸을 가리키며
   “이것 봐, 세 채지.”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 후 가끔 말다툼이라도 벌어지면 나는 순진
한 처녀 속여 먹었다고 그를 닦달하기도 했다.
   서울 생활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던 남편은 조부모님이 연로해
자주 편찮으시게 되자 직장에만 충실한 아버님을 대신해 근무지를
시골집 근교인 대전으로 자원했다. 우리 부부는 휴일이면 언제나 아
이들을 데리고 시외버스를 탔다. 정거장에서 내려 다시 한참을 걸어
야 했는데 그때에 아이들의 투정을 길가에 핀 노란 민들레와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달래주기도 했다.
   마을을 향해 좁은 논둑길로 들어서면 멀리 은행나무 사이로 낡은
기와지붕이 어른거렸는데 거기가 할먼네였다. 집이 가까워지고 텃밭
에서 서성대는 증조할머니의 구부정한 모습이 눈에 띄면 두 아이는
입 모아
   “할머니!”
부르며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 손에 들린 바구니에는 옥수수와 감자가 담겨 있었다. 그것
들을 무쇠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 부지깽이를 들고 아이들은 마냥 신
기해 아궁이 앞을 떠날 줄을 몰랐다.
   그곳은 연기군과 공주시 경계선 부근에 있는 제천리라는 동네였는
데 이제는 추억으로만 아련히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국가 정책으로
행정복합도시로 태어나기 위해 모든 것이 송두리째 없어진 것이다.
버팀목처럼 우뚝 서 생전의 남편처럼 묵묵히 지켜주던 담장의 백 년
된 은행나무도 흔적이 없이 사라지고 그가 그토록 옛집 그대로 보전
하길 원했던 ‘세 채의 집’도 허물어져 허허벌판이 되었다.
   가끔 궁금해 그곳에 들르면 ‘행복도시 세종’이라는 문구만 눈에 띄
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없어진 집터를 찾아보았다.
뒤란에는 철마다 따먹을 수 있는 과일 나무가 꽤 있었는데……. 다시
시선을 옆집 터골 할머니네로 그리고 큰댁이 있는 돌담길을 어림잡
아 그려보았다.
   “들어와서 밥 한술 뜨고 가.”
하며 과일 한 조각 미숫가루 한 대접이라도 먹여 보내려던 다정한 친
척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선산을 찾았다.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정년퇴직하면 내려와서 살겠다며 산에 잣나무와 호두나무를 심고 가
꾸던 남편이 홀연히 세상을 떠났을 때, 그래도 할아버지와 거닐던 논
둑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잠들어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허나 이제 그는 그마저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 시제 때는 타곳에 이장된 조상의 묘소를 찾았다. 헌데 올라
가는 길목이 쇠줄로 막혀 있었다. 산 일부를 우리에게 매매한 부친이
세상을 뜨자 남은 산까지 팔려는 아들이 저지른 소행이었다. 종중에
서 마을회관에 기부금도 내고 명절에는 선물까지 하면서도 동네를
지나 산을 오를 때는 마음 편치 않게 다녔었다.
   이제 세대를 이어줄 고향의 모든 것은 사라졌다. 세종시의 출범이
다가오면서 높은 건물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었
다고 한다.
   문득 복사꽃 피는 마을을 절절이 되뇌이던 노인이 떠오른다.


우물터를 싸고도는 붉은 입술은
송아지 우는 마을 복사꽃이냐.
수양버들 휘늘어진 맑은 냇가에
두레박 끈을 풀어 별을 건지자.


   금박댕기라는 노래가 마구 뒤바뀐 줄도 모르고 읊어대던 노인처럼
나도 그 노래나 부르며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이영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