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국... 개항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의 호칭이었다고 합니다.
한상수님의 커피에 대한 추억을 한모금 같이 하시지 않으시렵니까?
양탕국에 관하여
‘어떤 이에겐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음료가 다른 이에겐 생존을 위
한 식량이자 신을 향한 경배의 예물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아픈 몸
과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하루 십육억 잔
을 소비한다는 커피가 바로 그러하다.
와인의 궁극적 효능이 잠이라면 한 모금의 쓰디쓴 커피는 각성과
같다. 커피가 발견된 초기, 수도승들과 학자들은 빨간 열매를 끓여
먹고 잠을 잊은 덕에 기도와 연구에 더 정진했다는 기록과 치료약으
로도 쓰였던 이 음료를 마신 후 실제로 자신이 이전보다 좀 더 지혜
로워졌다는 믿음도 가졌던 것을 보면 카파라는 커피의 어원이 아랍
어로 힘을 뜻한다는 데서도 그 비중이 엿보인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서 열매를 먹고 흥분해 뛰어노는 염
소로 인해 발견되었다. 발굽 갈라진 이 동물은 고대의 중요한 동물로
서 당시엔 포상에도 숫염소가 주어졌고 가수들은 염소 가죽을 뒤집
어쓴 채 노래를 했다. 일례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 제의祭儀에서 부른
염소가수의 노래는 비극(tragedy)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중세유럽
이 와인주도의 사회라면 커피는 안티바쿠스 이슬람의 와인인 셈이
다. 사람을 대신해 그려진 염소 그림도 주로 알코올로 인해 딸기코가
된 염소 모습이라거나 카페인에 도취되어 몽롱해 있는 염소 형상을
보면 와인과 커피가 서로 상반된 기능을 함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모
습은 취醉였다.
방향성 식물은 재배지역 수분함량에 따라 향에 변화를 가져온다.
수분 없는 조건에서 자라야 하는 우수품종 중에 브라질 커피를 빼놓
을 수 없다. 아라비아커피나무를 인도네시아 인근 섬에 옮겨 심은 뒤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부를 거머쥔 이들은 네덜란드 인들이었다.
프랑스령 기아나에도 심어진 커피나무엔 반출금지령마저 내렸지만
삼엄한 경비체제를 뚫은 사람은 기아나의 총독 부인이었다. 그녀가
한 브라질 관리에게 몰래 건넨 작은 관목 하나가 브라질 인들에게 지
금도 낭만적인 사건으로 회자되는 건 오늘날 유명한 브라질 커피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예 상에 의해 유럽에 흘러들어간 커피는 화려한 카페문화를 조
성했다. 커피가 발달한 유럽에서 대표적 특징을 가진 나라는 단연 이
탈리아이다. 이 나라의 식사문화는 점심만 해도 평균 두 시간으로 알
려져 있어서 성급한 식사를 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다소 인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와 다르게 식사 후 즐기는 이탈리아의 에스프
레소 커피는 속도와 관련된다. 양이 적고 맛이 진해서 향이 날아가기
전 빨리 마셔야 하는 에스프레소의 영어는 빠름을 뜻하는 익스프레
스이다.
부자富者가 마시는 커피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산産루왁커피는 일
명 똥 커피이다. 야생 긴꼬리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인 루왁은 고양이
의 위장효소가 원두의 쓴맛 나는 껍질을 벗겨내고 특유의 사향을 가
미하는 소화과정을 거친다. 풍미 지닌 이 배설물을 찾아 농부들은
온 산을 들쑤시고 다닌다. 희소가치에 의해 진품 한 잔에 십만 원을
육박하는 이 커피에 간혹 제기되는 이의는 가격문제가 아니다. 고양
이가 파묻은 배설물이 드러나기까지 과연 신선도가 유지된 상태인
가이다.
양탕국은 개항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커피의 호칭이었다. 아관에
서 커피외교를 펼쳤던 고종은 서양에서 온 탕국을 최초로 마신 애호
가이다.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생긴 남대문역 다방(1913년)은 우리
나라의 첫 커피다방이며 십 년 후엔 명동에 후타미다방이 들어섰다.
커피를 맛본 사람들은 외국명품이라는 인식을 했었고 쓰디쓴 그 맛
조차 오히려 서양의 신비로 여기는 심리였다.
커피를 즐기는 나라마다 고유의 커피문화가 우리나라에선 다방문
화이다. 6·25 전쟁 후 미군부대를 통해 ‘쓴 거’라고 불리던 커피에
첨가물을 섞기 시작했고 이러한 인스턴트커피 대중화 중심에 있던
것이 다방문화였다. ‘둘둘 하나’, 언뜻 무슨 구호와도 같은 이 외침으
로 커피주문이 해결되던 때도 있었다. 설탕 둘, 프림 둘, 커피 한 스
푼을 줄인 둘둘 하나는 다방커피 맛의 절묘한 배합이었다. 이 다방커
피를 원조로 한 맛이 지금의 믹스커피와 자판기커피이다.
어느 해 겨울 여행지에서 마신 커피가 유독 기억에 있다. 곱은 손으
로 종이 커피잔을 감싸쥘 때 펑펑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이 커피 속으
로 연신 녹아들어갔다. 텅 빈 시골휴게소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던 음
악은 털모자 안에 단발머리를 구겨넣고 연소자출입불가를 통과해 처
음 음미했던 커피다방으로 귀향한 느낌이었다.
도심을 지나다 보면 테이크아웃점이나 커피전문점의 일변도를 흔
히 본다. 구舊와 신新의 공존풍경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비단 다방
문화뿐일까.
한상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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