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 하던 시절을 그려봅니다.
『수필과 비평』 4월호에 수록된 박영수님의 별밤에 대한 그리움을 같이 느껴보세요.
별밤을 그리며
오래전 금강 상류에 댐을 막는 공사가 시작될 무렵, 그 물속에 잠기게
될 강변마을을 찾아간 일이 있다. 수몰예정지 유적 조사를 하고 있던
친구인 고고학자 L 교수로부터 ‘볼 만한 유물들이 나왔으니 나들이 삼아
다녀가라.’는 전갈을 받고서였다.
고향마을 가까운 곳이어서 길이 익숙했다. 나룻배로 강을 건너 다다
른 작은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했다. 발굴현장에는 L 교수를 비
롯한 10여 명의 단원들이 고인돌 무덤방에서 수습되었다는 판잣돌을 놓
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빨래판처럼 매끈한 노트북 크기의 돌면
에 촘촘히 작은 구멍을 쪼아서 어떤 형상을 그려 놓았으나 도무지 해석
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칫 강가에 버려질 뻔했던 이 돌판이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는 귀중
유물임이 밝혀진 것은 출토지인 청원군 문의면 아득이 마을이 물속에
잠기고 난 한참 후의 일이었다.
“풀렸어. 숙제가 풀렸어!”
L 교수의 환호에 찬 전화목소리를 듣고 달려간 C 대학 박물관에는 오
랜 세월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별자리가 부스스 깨어나 영롱한 빛을 발하
고 있었다. 놀랍게도 기원전 5세기경 북반구 가을 하늘을 관측하여 새겨
놓은 ‘별자리 돌판’이었다. 천체학자들까지 연구에 참여하면서 60여 개
의 점 같은 굼(구멍)들이 북두칠성을 비롯하여 용자리, 작은곰자리, 카시
오페아 등으로 밝혀진 것이다.
청동기시대 별자리를 새겨 무덤방에 넣어 둔 돌판이 나온 것은 처음
으로 하늘의 별을 사주팔자와 길흉을 점치는 신앙의 대상으로 우러렀음
을 알 수 있게 하는 귀중유물이라고 했다.
나라도, 문자도 없었던 그 옛날 내가 태어난 청원凊原의 땅이 밤마다
별이 내려와 살던 별천지였을까. 돌판의 북두칠성 자리를 만져보는 나
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그 후 내륙의 호수로 변한 대청댐을 찾을 때마다 물속에 잠긴 지 오래
인 아득이 마을이 마치 내 고향이기나 한 듯 떠올라 남다른 감회에 젖곤
한다.
이집트를 다녀왔다.
나일강변에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유적들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밤마
다 잠을 설치는 감동을 맛보았다. ‘이집트는 세계여행의 마지막에 가라.’
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하룻밤을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바하리야 사막의 밤’을 꼽고 싶다. 신들의 땅, 신화의 고
향 불모지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대청호반에 잠긴 아득이 마을의 별나라
를 보았기 때문이다.
카이로에서 버스로 4시간 걸려 다다른 망망대해 같은 모래세상은 칠
흑 같은 밤이 좋았다.
4륜구동차에 나를 태운 알라는 장난꾸러기였다. 흑사막을 거쳐 백사
막에 이르는 동안 친구가 된 녀석은 심성이 맑은 낙천가였다. 사막에서
사는 베두인의 전형이었다.
모닥불에 푸짐한 먹거리까지 만들어준 베두인 안내자들은 자신들은
모래 위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자면서 우리 일행에게는 텐트와 침낭을
제공해 주었다.
구름 낀 사막의 밤은 이내 한겨울이 되었다. 술기운이 가시면서 잠이
깬 이른 새벽, 텐트 밖으로 나온 나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구름 걷힌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손에 잡힐 듯 일렁거렸다.
유년의 기억 속에 생생한 북두칠성과 은하수가 거기 있었다. 2천여 년
전 아득이 마을 하늘이 저랬을까? 사람이 살지 못하는 모래 세상, 문명의
혜택이 빗겨간 곳에 문명세계에서 멀어져 간 맑고 청아한 태곳적 하늘
이 살아 있었다.
베두인들에게서 때묻지 않은 원초적 순수함이 느껴지는 것이 이처럼
과학문명에 찌들지 않은 ‘별천지’에서 살고 있음이 아닐까.
어느 문학단체에서 마련한 ‘문학의 밤’에 함께했다. <그대 가슴에 별
을 심다>란 표제가 감성을 자극한 탓인지 시민들이 붐볐다.
도심 빌딩숲에 자리한 야외공연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과 주부층 청
중들은 시가 낭송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나의 짧
은 수필낭독에는 박수만 나왔다.
한껏 분위기가 높아가던 마지막에 사회자가 별을 노래한 시를 한 수
읊은 뒤 목소리를 높여 “여러분, 우리 모두 일어나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볼까요?” 하자 사람들이 우루루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일제히 신
음처럼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올려다본 하늘이 먹통이었다.
전등불이 대낮 같은 도회의 복판에서 별을 보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
실을 마치 처음 알기나 한 듯 젊은층들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오늘날, 맑게 갠 날이라도 밤하늘에 은하수를 관측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 많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도회의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은 고작 열 손가락 꼽기가 힘들다.
극심한 대기오염과 광光공해 때문이다. 문명사회 만들다가 자연의 질서
를 파괴한 탓이다. 이러다가 별이 사람의 눈 밖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서양의 어느 학자는 ‘40년 후면 이 지구상에서 별볼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도 있다.
이제 별을 예찬한 그 많은 시도, 노래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 것인
가. 꿈과 희망, 그리움의 표상이던 별이 보이지 않기에 세상이 삭막하고
각박해져 가는 것일까. 날로 심각해져 가는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해결
책이 학생들에게 별밤을 되살려주는 일일 듯도 하다.
나는 별이 보이지 않는 편한 세상보다도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
도 별이 보이는 청정한 하늘 밑에서 살고 싶다.
오늘따라 뭇별이 쏟아지던 사막의 밤이 그립다.
박영수 -----------------------------------------------------------------------
≪수필과비평≫ 등단.
청주대 대외협력실장, 청주문화원장 역임.
신곡문학상, 충북문학상, 남촌문학상, 한국문인상 외.
수필집: ≪산에서 여는 아침≫, ≪망초꽃 핀 언덕≫ 외.
사단법인 딩하돌하문예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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