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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신인상 당선작] 삶의 동반자 - 김양택

신아미디어 2012. 4. 16. 11:54

신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신선합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과 감각의 새로움을 느껴보세요.

 

 

삶의 동반자


   제주항 동쪽 바닷가를 접한 위치에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봉
우리가 있다. 사라봉이다. 그 옆에 나란히 쌍벽을 이루고 있는 오름은
별도봉이다. 그리 높지 않는 이 두 봉우리는 환상의 콤비요, 동반자다.
   사라봉은 그저 평범한 봉우리 같지만,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보물
과 같은 존재다. 또한 이곳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허파이
고, 옛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는 안식처다. 사라봉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매우 아름다워 사봉낙조紗峯落照라 하여 영주십경瀛洲十景 중의 하나로 꼽
힌다.
   나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아름다운 봉우리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르내리고 있으니, 오랫동안 숨결을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사라봉을 오르면 오를수록 새로운 느낌이 더해 간다. 사
라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맑은 공기와 파란 바다, 높은 하늘과 푸른 산이
서로 함께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녹아 삶에 밝은 빛으로 환생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 사라봉에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겨울이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햇살이 따사롭다. 차를 타고 사라봉 주차장에 이르니,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차에서 내려 사라봉의 숨결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사라봉 자락에는 거상 김만덕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모충사가 있다.
김만덕은 1739년에 김응열 딸로 태어나서 부모를 여의고 어렵게 독신으
로 자라 농·축·수산물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었다. 1794년 큰 흉년이
들자 굶주리는 동포들을 생각하여 거금을 출연, 육지에서 양곡을 사들
여 사람들을 구휼했다. 그분의 근검절약과 박애정신은 내가 살아온 길
에 경고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발길을 재촉하여 걷다보니 은은한 목탁 소리와 스님의 불경 소리가
귓가에 살포시 스며든다. 무심코 발길을 절로 향했다. 백팔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나를 깨우치는 참회, 감사, 발원하는 백여덟 개 항목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글 속에 스며있는 참뜻을 음미하며 읽다보니, 지난날들
이 주마등같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나도 삶의 진리를 깨달아 환골탈
태할 수 있을까.
   별도봉 둘레길로 발길을 옮기면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
는 곤을동 마을이 나온다. 4·3이 일어나기 전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골과 화북천 두 지류의 가운데 위치한 가운뎃골, 밧골에는
수십 가구가 있었다. 곤을동이 불에 타 폐동이 된 때는 1949년 1월 초순.
국방 경비대가 주민들을 전부 모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워버렸다. 해
안 마을이면서도 폐동되어버린 곤을동은, 지금은 옛 집터의 흔적을 알
리는 오밀조밀 쌓아올린 돌담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텅 빈 자리
에는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눈시울이 저절로 붉어졌다.
   4·3의 아픈 흔적을 둘러보다 잠시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겼다. 조상들
의 숨결이 귓가에 맴돈다. 눈을 떠 보니 산비둘기 한 마리가 돌담에 앉아
목청 높여 운다. 4·3의 슬픈 역사와 아픔을 전하는 듯 울음이 구슬프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별도봉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모금의 물을 입에 넣었다. 시원한 그 물맛!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으
랴. 발길은 곡선 길을 따라 사라봉으로 옮겨가고 있다. 등산복 차림을
하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가 정답다. 모두가 활력이
넘치고 사라봉에 동화된 듯하다.
   산책길이 잘 정돈된 오르막길. 휘어진 조그만 언덕 따라 계절을 잃고
방황하는 개나리꽃이 천연스레 피어서 길손을 반긴다. 며칠 후엔 혹한
이 몰아친다는데, 온난화의 희생양처럼 일찍 피어버린 개나리가 가엾
다. ‘기후변화에 대비하라’는 선봉장으로 나섰는가. 가녀린 꽃잎마다 내
게 일침을 주며 깨우치라는 것 같아 쳐다보기도 미안하다.
   사라봉 정상에 오르니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한라산에는 하얀 눈이 덮여 어머니의 포근한 품 같은 생각이 든
다. 활주로에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면서 힘차게 하늘로 치솟고 있다.
여객선은 뱃고동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사라봉에는 자
연 속의 생명체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 생동하는 느낌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사라봉이 나를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그동안 나는 건강만을 위하여 별 생각 없이 사라봉을 오르내렸다. 사
라봉의 베풂과 나눔을 망각하고 살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 생각의 한
계였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의 오감五感을 활짝 열어야겠다. 사라봉,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다오. 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너를 내 가슴속에 새기며, 너를 사랑하
고 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해다오. 오, 사라봉이여!

 

 

김양택 -----------------------------------------------------
(전)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 평생체육교육과장.

(현) 조천향우회 회장.

수상소감 ---------------------------------------------------
   휴대폰에서 갑자기 벨이 울려 무심코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필 신인
상에 당선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한참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 작품이 뽑혔다니,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너무나
좋아서 환호작약했습니다.
   먼저 졸필을 뽑아 작은 길 하나 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저의 작품을 뽑아 주신 것은, 앞으로 품위를 잃지 말고 면벽정
진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써 보라는 격려의 메시지로 알고 초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꽃피우겠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처럼 삶의 열정이 남아 있는 한, 다양
한 삶 속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한 편의 수필로 완성되어 세상에 빛을
볼 때, 그보다 행복한 보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삶이 곧
수필’이다는 마음으로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늘 신선한 공기처럼 힘이 되어 준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호주에
가 있는 아들, 며느리와 영광을 함께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