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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신인상 당선작] 대숲을 찾는다 - 송차식

신아미디어 2012. 4. 16. 12:04

수필과 비평의 신인상 수상자를 소개합니다. 대나무 숲에서 떠오르는 상상력을 느껴보세요.

 

 

대숲을 찾는다


   속이 비어 무언가 부족하고 약해 보이는 것이 대나무다. 그러나 비어
있는 속에 더욱 더 질기고 유연한 힘을 갖는 대나무는 흔히 말하는 무소
유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대나무와 함께 떠오르는 것은 난蘭이다. 대나무와 난은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상징이 있다. 난은 고요하고 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은은한 향기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에
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사철 푸른 잎을 달고 꼿꼿이 서 있는 절개를 보인
다. 난의 은근한 자태와 대나무의 강직함은 어떤 고절孤節을 생각하게
한다.
   난은 멀리서 은은히 흘러오는 향기가 코끝을 자극해 주는 고귀함이라
면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는 서늘한 기상이 전해주는 의연함이 있다. 쭉
쭉 뻗어나가는 생기 넘치는 잎에서 난의 기상을 읽는다. 그러나 대나무
숲은 매서운 잎 사이로 우러러보는 하늘의 푸른 빛깔이 대숲과 어울려
조화의 멋이 있다.
   대나무 뿌리는 지면을 기듯이 위쪽으로만 뻗는다고 한다. 대나무를
일컬어 양반나무라고 하는 이유가 아마 위로 향하려는 뿌리의 성질 때
문일 것이다. 뿌리의 밑둥치는 매우 딱딱하고 마디도 아주 촘촘히 줄을
지어 있다. 흙이 귀한 맨땅을 딛고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죽순을 뽑아올
린다.
   대나무 숲은 바람을 타고 사각사각 음전한 악기 소리를 낸다. 호숫가
의 대숲은 호수의 물결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대숲이 조용히 잠든
밤에는 침묵의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는 느낌에 찬다. 대
숲은 하늘에 흘러가는 둥근 달과의 대화에서도 사그락거리는 소리의 운
치를 보여준다. 참새 소리는 대숲의 단골메뉴라고나 할까.
   강직하고 곧은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일러 대쪽 같은 사람이라 한다.
부정에 타협하지 아니하고 사사로움을 멀리하는 경우가 그렇다. 주위와
타협이 이루어지기가 어렵고 한쪽만을 고집하는 경우 또한 그렇다. 껄
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고자 때로는 대숲을 찾는다.
   한때는 죽제품이 생활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은 죽
제품을 밀어내고 더욱 편리한 생활용품이 자리를 차지했다. 지혜는 지
혜를 낳는다던가. 최근에는 대나무 숲을 가꾸어 관광지로 주목을 받아
유명해지는 곳도 있다. 담양의 ‘죽녹원’ 대나무숲이 무수한 관광객을 불
러들이며, 거제도 또한 대나무숲길인 거제맹종테마파크가 대숲바람을
들으며 걷도록 하고 있다. 담양 소쇄원의 대숲 소리는 선비들의 고결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고 보겠다.
   대나무 숲에서 맑은 소리가 나고 그윽한 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무엇
일까.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텅 빈 속에서 여러
가지의 악음樂音이 조화를 이루어 퍼지면서 맑은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주위의 계곡에서 흐르는 소리로 변신하기도 하고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로 들리기도 한다. 때론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를 저장해 두었다가 바람
의 방향에 따라 울려 밖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대나무 뿌리는 악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악기의 재료인 대나무 뿌
리는 병든 뿌리가 더욱 처량한 소리로 울릴 것이다. 맑고 깨끗하고 혹은
신음하는 은은한 소리로 울릴 것이다. 사람의 삶에도 아픔과 고통이 따
라야 성숙된 생의 보람이 될 수 있는 이치를 생각해봄 직하다.
   추운 땅속에서 굳건히 견디고 봄에 새로운 힘을 안고 헤치고 올라오
는 그 죽순의 기개가 탐스러운 축복처럼 보인다. 여름에는 푸름 그 자체
로 따가운 햇살을 잊게 하고 시원한 바람을 일게 한다. 가을 들어 대숲바
람과 함께 꿈과 낭만의 노래로 환상조를 만든다. 푸른 잎사귀에 내리는
겨울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절개가 더욱 빛난다.
   봄비가 내리던 날 죽순의 세력은 대단했다. 잠복해 있던 군사들이 봄
비의 신호 아래 일제히 고개를 내미는 함성을 듣는 날이었다. 대나무는
잘라 내는 만큼 다시 죽순을 내밀어 대숲을 무성하게 한다는 것을 어렴
풋이 알 수 있었다.
   죽순요리를 하는 방법도 함께 터득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할
줄 아는 것은 삶아서 무쳐 먹거나 찜으로 해 먹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많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뿌리가 튼튼해야 울창한 대숲이 될 수 있다.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지탱할 수 있다. 무언가에 깊이 잠기고 싶을 때, 혼자이고 싶을
때, 가슴에 일렁이는 그리움이 북받쳐 오를 때, 느릿느릿 대숲을 걷는다.
   무성한 대숲처럼 내 생각의 갈래를 울창하게 키우고 싶다. 더욱 은근
하고 웅숭깊은 악기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고 싶다. 속을 비우되 비워
있지만은 않은 나를 세우고자 오늘도 대숲을 찾는다.

 

 

송차식 ------------------------------------------------------
늘창 문학회 회원.


 

수상소감 ----------------------------------------------------
   대만의 아리산(2400m)에서 옥산(3952m)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
면서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충
격과 감동이었습니다.
   대숲의 소박하고 은근한 소리에 매료되어 살아온 것이 저의 삶을 풍
요롭고 새롭게 이끄는 길이 된 것 같습니다. 많은 체험과 경험이 작품생
활의 힘이 되고 지향점이 됨을 수시로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아쉬웠던
순간들, 지워 버릴 수 없었던 상처들을 새로운 감성과 지성으로 직조하
는 새로운 모둠으로 이어갈까 합니다.
   늘 곁에서 성원해 주는 남편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가능한 길임을
깨닫습니다. 깊은 관심으로 협조해 주는 문우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수필의 길에서 더욱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신 수필과
비평사의 발전을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