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문학 수상작

계간 『인간과문학』 제1회 신인작품상 희곡부문 당선자 '김수용'님을 소개합니다

신아미디어 2014. 10. 1. 12:14

"김수용은 이 기시감을 통해서 개인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점을 찾고자 하였다. 이는 일종의 해체 방식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주체는 자아 중심의 에고를 벗어나 자신의 본성을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他者와의 맞섬을 통해서 합리주의와 장유유서長幼有序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는 에고 중심에 가득 차 있는 현대인을 풍자한 것인 듯하다."

 

 

 

 

 

 데자뷰        김수용

 

 

등장인물

 

청년
아저씨

 

곳 : 어느 곳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때 : 어느 때 (특정한 때가 아니다.)
시간 : 어느 시간 (특정한 시간이 아니다.)
무대 :
   어두컴컴한 무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시계들만 가득하다.
   커다란 자명종 시계부터 모래시계와 작은 전자시계까지.
   막이 열리면, 이 각양각색의 시계들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소리들이 무대 안에
   가득 울려 퍼진다.
   한참을 그러다가 이 소리가 차츰 잦아들면서 무대 왼편에는 청년이 조심히 앞을 더듬으며 등장하고 오른편에는 아저씨가 조심히 앞을 더듬으며 등장한다.
   이 둘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지 겁먹은 표정으로 앞을 조심히 더듬으며 걸어간다.
   그러다가 서로의 손을 만지고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한다.

 

아저씨: 누구에요?
청  년: 누구세요?

 

   다시 앞을 조심히 더듬다가 서로의 손을 만지고는 깜짝 놀라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거기, 누구냐고요……?
청  년: 누구신데요……?

 

   정적.

 

아저씨: ……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예요……?
청  년: 무슨 말을 하라고요……?
아저씨: 알았어요. 그러면 이거 하나만 물읍시다. 여기가 어디에요?
청  년: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
아저씨: 정말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청  년: 예……
아저씨: 정말요?
청  년: 네.
아저씨: 정말…….
청  년: (말을 끊고) 네! (사이)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아저씨: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청  년: 아닌 것 같은데…….
아저씨: 뭐요?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청  년: 아니, 솔직히 이해가 안돼서요.
아저씨: 맞아요! 이해가 전혀 안 돼요. 그러면 어떻게 여길 왔는데요?
청  년: 그걸 제가 묻고 싶다는 겁니다.

 

   사이.

 

아저씨: (고개를 갸웃하며) 가만, 내가 어떻게 여길 왔지……?
청  년: (고개를 갸웃하며) 이상하네. 어떻게 여기를 오게 되었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네. 
아저씨: 지금 그 말 정말이죠?
청  년: 네! 몇 번을 말해요! (사이) 근데, 지금 하신 그 말 다 사실인겁니다.
아저씨: 이봐요, 속고만 살았어요?

 

   청년과 아저씨는 다시 앞을 더듬으며 걸어가다가 서로를 만지고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청년과 아저씨.
   이번에는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된다.
   그러자 청년이 조심히 왼쪽으로 걸어가고 아저씨가 이것을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조심히 오른쪽으로 걸어가자, 청년이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것을 몇 번 반복하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청  년: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아저씨: 이봐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보다는 한참 어린 분 같은데 이제 장난은 그만 합시다.
청  년: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목소리 톤이 딱, 저의 아버지 연배쯤 되시는 분 같은데 이제 그만하시죠.
아저씨: 이자식이, 정말…….
청  년: 참나, 아저씨. 내가 아저씨 자식이에요? 왜 이 자식 저 자식을 찾아요?
아저씨: 뭐? 아저씨?
청  년: 그럼, 뭐라고 불러 드릴까요? 아가씨라고 불러 드려야 만족 하시겠어요?
아저씨: 뭐야 이 자식아!
청  년: 정말, 초면에 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아저씨: 지나치기 뭘 지나쳐! 그렇게 떡하니 버티고 서서 지나치게도 못하게 하고 있으면서.
청  년: 아니, 언제 봤다고 계속 반말이에요!
아저씨: 지금 뵈는 게 없어서 반말이다! 어쩔래?
청  년: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하시네요.
아저씨: 뭘 너무해? 이봐, 집에 가면 너 같은 자식이 있어!
청  년: 저도 집에 가면 아저씨 같은 부모님 계세요!
아저씨: 지금 해보겠다는 건가!
청  년: 못할 것도 없죠.

 

   청년과 아저씨는 앞을 더듬으며 걸어와서는 정면으로 마주선다.
   그리고는 각자 앞으로 걸어가려고 한참을 거칠게 몸싸움을 한다.
   그때 갑자기 오른쪽으로 뛰어 가는 아저씨, 그러자 청년이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번에는 청년이 왼쪽으로 뛰어 가자,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것을 한참을 반복하다가 지쳤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천천히 일어나며) 양보 좀 하지?
청  년: (천천히 일어나며) 먼저 모범을 보이시죠?
아저씨: 이봐, 자네는 장유유서도 몰라? 젊은 사람이 이러면 쓰나.
청  년: 그렇죠! 저는 젊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모든 것에서 합리적으로 해야죠. 아, 그리고 장유유서라고 하셨죠? 나이 많은 게 벼슬은 아닙니다.
아저씨: 이거 정말 왜 이래? 나 바쁜 사람이야.
청  년: 전 한가한지 아세요?
아저씨: 이봐, 어떻게 자네 시간과 내 시간이 같을 수가 있나?
청  년: 다르긴 뭐가 달라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죠.
아저씨: 똑같긴 뭐가 똑같아.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청  년: 사람일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 아저씨가 먼저 가실지, 아니면 제가 먼저 갈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죠.
아저씨: 자넨, 부모도 없어!
청  년: 아저씨는, 자식도 없어요!
아저씨: 그래, 자네는 평생 안 늙을 것 같지? 평생 이대로만 살 것 같지? 두고 봐, 나처럼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테니까.
청  년: 지금 악담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거든요, 그러니 말씀 좀 조심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초면이잖아요.
아저씨: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초면은 무슨…….
청  년: 그렇죠. 아무것도 안 보이니 아저씨가 정말로 아저씨인지? 아니면 나보다 한참 어리면서 아저씨 흉내를 내고 있는 건지? 그것을 누가 알겠어요.
아저씨: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런 중후한 목소리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청  년: (아저씨를 흉내 내며) 사실, 나는 53년 뱀띠이네.
아저씨: 지금 장난하나?
청  년: 이럴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말해 본겁니다.
아저씨: 이봐, 우리 유치하게 말장난은 이제 그만하고…… (사이) 맞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청  년: 어떻게요?
아저씨: 그러니까, 자네는 아무 생각 말고 그 자리만 굳건하게 서 있으면 되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청  년: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말씀 한번 속 시원하게 잘 하셨습니다. 아저씨가 그 자리만 듬직하게 지키고 서 계시면 모든 문제는 다 해 결되는 거였네요. 아, 아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아저씨는 잘 피해 갈 테니까요.
아저씨: 이봐, 양보 좀 해!
청  년: 아저씨가 하세요!

 

   청년과 아저씨는 다시 마주서고 다시 거친 몸싸움을 한참을 계속 한다.
   그러다가 청년이 갑자기 왼쪽으로 뛰어가자,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번에는 아저씨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뛰어가자, 청년이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이것을 반복하는 청년과 아저씨. 점점 지쳐간다.

 

아저씨: 그만!
청  년: 그래요, 이제 그만!
아저씨: 안되겠어. 우리 이렇게 하자.
청  년: (퉁명스럽게) 또 어떻게요!
아저씨: 이봐,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나?
청  년: 여기서 뭘 더 예쁘게 말하라는 겁니까? 그럼, 화장이라도 하고 말할까요?
아저씨: 이 사람이 정말……. (참으며) 그래, 그러니까 이러는 게 좋겠어. 그러니까 내 말은…….
청  년: (말을 끊으며) 그러니까 어떻게요!
아저씨: 화 좀 내지 말게. 지금 말하려고 하잖나.
청  년: 아, 진짜. “그러니까!”는 이제 됐고요! 도대체 본론이 뭔데요?
아저씨: 다 나만 잘못인가?
청  년: 그만하죠.
아저씨: 뭘 그만해?
청  년: 아무리 아저씨께서 빙빙 돌면서 본론을 언제 이야기 하실지 몰라도 잘 참고 경청하겠습니다. 자, 말씀하시죠.
아저씨: 뭐라고? 아, 진짜……. (긴 한숨을 쉬며) 됐네. 됐어. (겨우 참으며) 난, 내가 계속 그랬던 것처럼 오른쪽으로 갈 테니 자네는…….
청  년: (이어서) 아, 왼쪽으로 가라는 말씀이죠?
아저씨: 그래, 바로 그거야. 이제야 말길을 알아듣는구먼.
청  년: 간단한 거였네요.
아저씨: 그렇다니까. 그러니 이젠 긴말 할 것 없이 바로 해버리자고.
청  년: 좋아요.
아저씨: 자, 시작하면 하는 거야?
청  년: 예.
아저씨: 시~작!

 

   그 말과 동시에 재빠르게 움직이는 청년과 아저씨.
   그런데 다시 마주선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건가!
청  년: 그건 제가 할 소리입니다!
아저씨: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어디다 대고 큰 소리인가!
청  년: 참, 어이가 없네요.
아저씨: 뭐? 어이가 없어? 이 사람이 정말, 난 약속대로 오른쪽으로 갔다고!
청  년: 전 왼쪽으로 안간 줄 아세요?
아저씨: 자네,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날 물로 보는 모양인데? 자네가 약속대로 왼쪽으로 갔다면 우리가 왜 이러고 있을까?
청  년: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저씨: 정말 계속 이럴 거야.
청  년: 정말 계속 이러시기에요.
아저씨: 난, 정말로…… (사이, 참으며) 그래, 알았어. 맞아! 젊은 사람이면 당연히 실수하는 게 정상이지. 그래, 젊고 혈기가 왕성하다보면 그것을 못 이겨서 실수가 잦은 법이니까. 물론, 나도 그랬었고. 그래, 자네는 어느 쪽으로 가는 거라고 했지?
청  년: 왼쪽이요. 왼쪽!
아저씨: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나? 자네만 성질 있는 줄 아나? 정말 최대한 잘 참아 보려고  하는데 끝까지…….
청  년: (말을 끊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나이 드시다보면 깜빡깜빡 잘 잊으시고 그래서 당연히 실수가 잦은 법인데,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아저씨. 아저씨는 왼쪽으로 가는 거 맞죠?
아저씨: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건가?
청  년: 아, 잘 알고 계셨군요. 나는 헷갈리시는지 알고. 그래요, 아저씨는 오른쪽으로 가시면 되는 거예요. 알겠죠?
아저씨: 자네나 (청년을 따라하며) 알겠죠?
청  년: 이 아저씨가 정말……. (참으며) 그래요, 빨리 시작하죠.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할 것 아니에요.
아저씨: (비아냥대듯) 알았으니까, 시작이나 하세요. (청년을 따라하며) 알겠죠?
청  년: (화를 억누르며) 자, 시작!

 

   그러나 다시 정면으로 마주서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정말 자넨 구제불능이군. 더 이상 자네하고는 할 말이 없네.
청  년: 정말 계속 이러시면서 저보고 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아저씨: 이봐, 자네보다 훨씬 인생을 더 산 인생 선배로써 간절히 부탁하네. 제발,  그. 자. 리. 에. 만. 서. 있. 어. 주. 세. 요.
청  년: 요. 세. 주. 어. 있. 서. 만. 에. 리. 자. 그. 발. 제.
아저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청  년: 제. 발. 그. 자. 리. 에. 만. 서. 있. 어. 주. 세. 요.를 거꾸로 말해 봤어요. 이렇게 해야 알아들으실까 해서요.
아저씨: (자신의 앞을 거칠게 휘저으며) 너 지금 어디 있어? 너 이 새끼 잡히기만 해봐.
청  년: (절묘하게 피하며) 왜 이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아저씨: (더 거칠게 휘저으며) 니깐 놈이 감히 날 가지고 놀아?
청  년: (절묘하게 피하며) 제가 뭘…… (사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아저씨: (동작을 멈추고) 어떻게?
청  년: 아무 신호 없이 가는 거예요.
아저씨: 아무 신호 없이?
청  년: 예, 아무 생각 없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거예요.
아저씨: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청  년: 그럼, 자,
아저씨: 쉿!
청  년: 아, 맞다. 아무 신호 없이?

 

   청년과 아저씨는 각자 아주 조심히 살금살금 걸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청년이 가는 방향을 절묘하게 아저씨가 막아서고 아저씨가 가는 방향을 청년이 절묘하게 막아선다.
   그것을 반복한다.

 

아저씨: 너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여기서 날 괴롭히는 거야?
청  년: 그러는 아저씨는요!
아저씨: 빨리 말해! 대체 여긴 어디고? 어떻게 여길 오게 되었는지?
청  년: 아저씨부터 말해요!
아저씨: 내가 말을 말아야지, 또 순서 타령인가!
청  년: (긴 한숨을 쉬며) 안 되겠어요. 우리 감정싸움은 이제 그만해요 이러다간 평생 여기서 못 나가겠어요.
아저씨: 난 진작부처 그러려고 했는데, 자네가…….
청  년: (말을 끊고 큰 소리로) 아저씨! (사이) 이제 그만하자고요.
아저씨: 정말로……?
청  년: 네.
아저씨: 정말이지?
청  년: 아저씨!
아저씨: 알았어. 알겠는데, 뭘 어떡하자고?
청  년: 무엇보다 대화를 해야겠어요. 서로 어느 것 하나 숨기는 것 없이 진실 되게요.
아저씨: 맞아! 허심탄회하게 다 털어 놓다보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이 나올 것 같아.
청  년: 우선, 서로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아저씨: 좋아. 
청  년, 아저씨: (동시에) 여기를 어떻게 오게 되었…….

청년과 아저씨는 그렇게 동시에 말을 하다가 말고 놀란다.

아저씨: 먼저 하게.
청  년: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 역시, 기본이 안 되었어.
청  년: 또 뭐가요?
아저씨: 아니, 아무리 내가 먼저 하라고 했다고 정말로 그렇게 먼저 해야겠어? 얄밉게.
청  년: 아저씨. 우리 감정싸움 하지 말자고 약속한 게 방금이었어요.  
아저씨: 알았어, 알았네! 또 나만 잘못이지?
청  년: (개의치 않고) 여기를 어떻게 오게 되었어요?
아저씨: (잠시 생각을 하고) 여기를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정말, 여기를 어떻게 오게 되었지? 어떻게……. 어떻게…….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되돌아 온 것 같아.
청  년: 되돌아오다니요?
아저씨: 그러니까,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모든 길과 거리 그리고 내가 살았던 여러 집들과 머물렀던 여러 건물들 그리고 회사와 군부대와 여러 학교와 그리고 내가 만나고 헤어져서 잊혀진 많은 사람들을 역순으로 찾아 갔었어. 한마디로 나의 과거로 시간 여 행을 떠난 거였지. 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태어난 고향집까지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는데도 난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걷고 또 걸었어. 그런데, 거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 그 다음은 기억이 전혀 없어.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를 걷고 있더라고.
청  년: 왜 그렇게 하신 건데요……?
아저씨: 그건……. 그건…….

 

사이.

 

청  년: 이상하네요.
아저씨: 뭐가 이상해……?
청  년: 저랑 너무 비슷해서요.
아저씨: 자네랑 비슷하다고?
청  년: 네. 저는 아저씨와는 반대로 제가 태어난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제가 걸어간 길과 거리 그리고 제가 살았던 여러 집들과 여러 학교 그리고 군 생활을 했던 군부대와 그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을 차례대로 찾아 갔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때,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여기를 걷고 있더라고요.
아저씨: 그런데, 왜 그렇게 한 거야……?
청  년: 그건…….
아저씨: 왜 말을 못 하는 거야? 왜 나와는 반대로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차례차례 찾아 간 거냐고……?
청  년: 그건……. 그건…….

 

사이.

 

아저씨: 저기, 혹시, 지금이 꿈은 아닐까?
청  년: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안보이고.

청년과 아저씨는 동시에 자신의 팔을 꼬집어본다.

아저씨: 역시……. 하나도 안 아파.
청  년: 정말이요? 이상하네? 나는 아픈데.
아저씨: (자신의 팔을 꼬집으며) 이걸 아프다고 해야 하나? 안 아프다고 해야 하나?
청  년: (다시 자신의 팔을 꼬집으며) 난 확실히 아파요. 아닌가?

 

사이.

 

   청년과 아저씨는 갑자기 앞으로 뛰어간다.
   그리고는 세게 부딪쳐서 넘어진다.

 

아저씨: 아이고, 사람 죽네…….
청  년: 아, 진짜 짜증나서…….
아저씨: 왜 갑자기 뛰어오고 난리야!
청  년: 그러는 아저씨는요!
아저씨: (천천히 일어나며) 꿈이 아닌 것은 사실이구먼. 이렇게 아픈 것을 보니.
청  년: (천천히 일어나며) 어? 이걸 아프다고 해야 하나? 안 아프다고 해야 하나? 난 모르겠는데?
아저씨: 가만…….

 

   아저씨는 뭔가를 깨달은 듯 조용히 일어나서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청년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막아선다.

 

아저씨: 아니, 어떻게 자네는 내가 그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나?
청  년: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몸이…….
아저씨: 자네, 혹시 앞이 보이는 것 아니야?
청  년: 보이다니요? 그러면 제가 이러고 있겠어요? 여길 빠져나가도 벌써 빠져 나갔지.

 

   이번에는 청년이 조심히 왼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막아선다.

 

청  년: 그러는 아저씨는 제가 어떻게 그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저씨: 나도 몰라……. 내가 왜 그런 거지……?

 

사이.

 

   동시에 뛰어가는 청년과 아저씨.
   서로 막아선다.
   그것을 반복하는 청년과 아저씨.
   조금 지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아저씨: 우린 여길 벗어 날 수 없는 것 같아.
청  년: 불길하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저씨: 자네가 내 앞에 있는 한 언제나 막아 설 것 아닌가?
청  년: 그러는 아저씨는요?
아저씨: 그럼, 우리 한번 참아 볼까?
청  년: 그래요. 몸이 아무리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해도 끝까지 참아 보자고요.
아저씨: 자네가 먼저 참아 볼 텐가?
청  년: 아니요. 아저씨가 먼저 하셔야죠.
아저씨: 아니야. 이번만큼은 내가 양보하지.
청  년: 아니에요. 장유유서인데.
아저씨: 젊은 사람이 이러면 쓰나, 아까 자네가 자네 입으로 똑부러지게 말한 것처럼 합리적으로 살아야지. 나이 많다고 장땡인가?

 

사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괴로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참을만한데.
청  년: 그러게요, 별거 아닌데요.
아저씨: 뭐야? 그러면 자네도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던 건가?
청  년: 뭐에요? 아저씨도요?
아저씨: 난 또, 장유유서라고해서.
청  년: 저는 합리적으로 살라고 하셔서.

 

사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청년과 아저씨는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 마주선다.


아저씨: 정말 호흡이 안 맞는구먼.
청  년: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저씨: 자네는 도대체 누구인가?
청  년: 제가 간절하게 묻고 싶은 말입니다.
아저씨: 분명히, 자네를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난 것을 보면 보통 인연은 아닐 거야.
청  년: 그렇긴 한 것 같네요.

 

긴 사이.

 

아저씨: 혹시……?
청  년: 설마……?
아저씨: 이봐, 잠깐 이리로 와보게.
청  년: 어디 계신데요?
아저씨: 그냥 자네가 원하는 데로 걸어가면 되잖나. 어차피 그 앞에는 내가 있을 테니.

 

   청년과 아저씨는 정면으로 마주선다.
   그리고는 조심히 더듬다가 서로의 얼굴을 잠깐 만지고는 깜짝 놀라며 손을 뗀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다시 조심히 서로의 얼굴을 만진다. 

 

아저씨: 역시, 그랬군…….
청  년: 설마설마 했는데…….
아저씨: 내가 어떻게 이 감촉을 잊을 수 있겠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갔어도…….
청  년: 많이 변할 것 같았는데 별로 변하지 않았네요. 이렇게 금방 익숙해지는 것을 보니까…….

 

사이.

 

아저씨: 맞아, 그때 그랬었지.
청  년: 뭐가요?
아저씨: 자살을 하기 전에, 내가 태어난 곳에서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내 모든 삶을 직접 보고 죽고 싶었었어.
청  년: 그것을 이제야 기억하시는 거예요?
아저씨: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앞두게 되니까 다시 그때처럼…….
청  년: (말을 끊고) 병에 걸렸다고요?
아저씨: 어? 아니, 그게…….

 

   그러자 청년은 아저씨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만지던 손을 서둘러 뗀다.
   그러자 아저씨도 청년의 얼굴에서 손을 뗀다.

 

청  년: 언제요? 왜요?
아저씨: 얼마 전에 통고 받았어. 그래서 너무 너무 억울해. 난, 그냥, 인생을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데 왜 나를…….
청  년: 왜 인생을 막살았는데요!
아저씨: 뭐라고?
청  년: 그러니까, 병에 걸린 것 아니겠어요!
아저씨: 너 지금 말 다했어? 그게 지금 나한테 할 소리야? (사이) 그래, 그 때부터였어.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너 때부터였다고! (절망한 듯) 그 때 더 용기를 내서 죽었어야 했는데……. 그때 죽었다면 지금의 이런 고통은 없었을 텐데…….
청  년: 싫어! 싫어! 당신 같은 미래는 싫어. 당신처럼 결말을 맺긴 싫다고!

청년과 아저씨는 서로를 찾아서 거칠게 두리번거리면 앞으로 걸어간다.

아저씨: 너 지금 어디 있어? 지금 어디에 있냐고!
청  년: 지금 어디 계세요? 어디에 계시냐고요?
아저씨: 이리와. 너한테 이야기 해줄 게 있어. 아니, 너한테 꼭 이야기 해줘야 하는 게 있다고!
청  년: 빨리 저한테 오세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묻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요.
아저씨: (갑자기 멈춰 서서) 가만, 지금 이 모든 것을 예전에도 한 번 겪어 본 것 같아…….
청  년: (멈춰 서서) 맞아요. 지금과 똑같은 상황을 예전에도 한 번…….

 

   청년과 아저씨는 정면으로 마주선다.
   그리고는 다시 조심히 서로의 얼굴을 만지기 시작한다.

 

아저씨: 너무 예뻐…….
청  년: 너무 멋져요…….

 

   그러다가 갑자기 서로의 목을 잡는 청년과 아저씨.

 

아저씨: (목을 조르며) 죽어! 너 때부터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라고!
청  년: (목을 조르며) 죽어 버려요! 당신 같은 미래는 싫어요!
아저씨: (목이 졸려서 겨우 소리 내며) 죽으라고…….
청  년: (목이 졸려서 겨우 소리 내며) 죽어요…….
아저씨: 제발……
청  년: 제발……
아저씨, 청년: (목이 졸려서 겨우 소리 내며)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내 인생을…….

 

   이제 무대는 다시 다양한 시계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고 청년과 아저씨는 있는 힘을 다해서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 막 -

 

 

 

 

김수용  ---------------------------------------------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도깨비 스토리텔링 공모전 희곡 《드르렁~ 쿨~ 드르렁 쿨쿨~》 수상(2010. 7), 목포문학상 희곡 부분 《명의 도용》 신인상 수상(2011. 11), 한국문화예술, 희곡 부분 《스승의 은혜 》신인상 수상(2013. 2), 2013 ASAC 공연 예술제 연극 《그가 사라졌다.》(작가) 공연(2013. 10),

 

 

 

당선소감

 

   솔직히, 처음 쓰는 당선 소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당선소감은 그 어느 글을 쓸 때보다도 행복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늘 같은 패턴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네요. 그 무엇보다도 한없는 이해심으로 언제나 지켜주시고 계시는 우리 주님과 크나큰 포용력으로 늘 가슴 가득 안아 주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윤종대 도미니꼬 신부님과 이형민 스테파노 신부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늘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시는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과 형에게는 자연스럽게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글쓰기의 자신감을 심어주신 이강백 교수님께는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친동생이자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있는 동지인 우리 강정훈과 나의 대부님 장문식 마카리오, 나의 영원한 베프 이성미양에게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지금의 그 고마움들을 다 갚아갈 거라고 약속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열광적인 지지자인 이진원과 윤승, 성규에게도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그녀! 나에게 많은 영감과 설레임을 안겨주고 있는 그녀!에게는 당신 때문에 지금 너무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듯,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아 행복한 당선 소감이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쓰고! 부지런히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