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오랫동안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돌아와, 문학에 그것도 비평에 관심을 둔 신인비평가에게 거는 기대는 이 평론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 문학을 외국 특히 러시아 문학과 비교하여 우리 소설의 나아가야 할 지평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작금에 발표되고 있는 소설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를 대라는 것이다."
삶을 위한 한탕주의가 가져오는 결말 / 송원진
- 이기영과 푸시킨 소설의 대비 소고
1. 인연, 필연, 우연
세상은 너무 많은 우연을 가장한 인연들이 있다. 이것은 곧 필연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인연’ 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떠올리지만 이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는 설명조차 필요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연이란 형식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비단 인간관계뿐만이 아니고 어떠한 일을 어떻게 만났느냐 라는 것도 하나의 인연, 혹은 필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면에 있어서 농민문학의 대가라고도 불리우는 소설가 이기영의 작품이나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푸시킨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고 인간이 발을 딛고 있는 그 시대가 그 삶이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어도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인간에게 있어서 삶에 가장 중요한 형태인 인연, 필연 그리고 우연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기영(李基永, 1895~1984)은 조명희, 한설야, 김남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카프의 대표적인 작가로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가난한 가정형편에서 자라난 그는 1922년 일본으로 가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학하였다. 일본에서도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하며 고학하였고, 귀향후 〈사死의 영影에 비飛하는 백로군白鷺群〉 이란 일천 수백 매의 소설 집필에 매달렸으나 이 첫 작품은 실패하였고, 1924년 《개벽》 창간 4주년 기념 현상문예에 단편 〈오빠의 비밀편지〉가 3등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다. 그 후 1925년 〈조선지광사〉에 입사하면서 카프에 가입하였고 1926년, 일본유학을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온 청년의 절망적인 삶을 다룬 자서전적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한다. 이 시대는 추상과 관념성에서 크게 탈피하지 못한 작품들을 보여주지만 이후 그가 쓴 〈민촌〉(1927), 〈농부 정도룡〉(《개벽》, 1926.1-2), 등을 통해 단순히 빈곤의 묘사나 갈등만이 아닌 지배, 피지배 계층 간의 계급적 인식을 모색하여 농촌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1927년 카프의 방향전환과 함께 이기영도 카프의 주요 관심사인 예술의 대중화에 발맞춰 노동자, 농민 대중의 계급적 각성을 일깨우는 중간적 인물을 창조하는데 중점을 두고 〈민며느리〉(1927), 〈해후〉(《조선지광》, 1927.11)등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위적 인물을 내세워 이념을 주입시키거나 교화시킴으로서 예술에서 대중을 오히려 분리시켰다. 이것을 조금 극복한 것이 〈홍수〉(1930)였고 이 작품은 조금 후 발표하게 되는 장편 〈고향〉(1933-1934 연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러던 중 발표한 〈서화鼠火〉(쥐불, 1933)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단계로 진입하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이 되고 이기영은 한설야와 더불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약칭: 프로예맹)을 결성하지만 임화 중심의 ‘조선문학건설본부’와 ‘프로예맹’이 결합하여 ‘조선문학동맹’이 결성되고 남로당 지령하에 움직이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긴 그는 곧 월북한다. 월북한 후 한설야와 더불어 극좌적 성격을 띤 ‘북조선예술총동맹’을 주도하고 이어 ‘조선문학예술총 동맹’ 위원장을 역임한다.
이기영은 분단 이후 남로당 일파는 물론 한설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월북 문인들이 숙청당하는 상황에서도 북한 문단의 최고 대우를 받는다. 1960년 인민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상설위원회 부의장직 등 고위간부직을 두루 역임하며 꾸준히 말년까지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은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지만 혁명적 사상가 차다예프(Chaadaev, 1794-1856)와의 교류로 인해 데카브리스트의 한 그룹 ‘녹색 등잔’에 참가하며 농노제 타도의 정치사상이 차차 확고하게 되었다. 그런 그의 사상은 〈농촌〉(Derevnya, 1819)이라는 작품에 잘 담겨졌고, 그 안에 있는 자유를 사랑하는 내용의 시가 화근이 되어 남부 러시아로 유배되었다. 1824년 국외 망명에 실패하고 유폐되어 〈에브게니 오네긴(Evgenij onegin)〉(1823~31)등을 집필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가 그에게 높은 사상적, 예술적 성장을 가져다주며, 러시아의 역사적 운명과 민중의 생활 등에 대하여 깊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밑거름이 그를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초석을 쌓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마지막 서사시 〈청동의 기사(Mednyi Vsadnik)〉(1833)에서는 전제적 국가권력과 개인과의 대립 모순을 조명하고 제정 러시아의 역사적 숙명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소설가 이기영이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로서 어찌 보면 푸시킨이 작품 활동을 했던 러시아 농노들에게 지극히 노예적이며 암울했던 시기인 제정러시아의 모습과도 흡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두 소설가는 그 시대 현실에 있었던 하층민의 모습을 세상에 알려 그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자유를 되돌려 줄 수 있기를 갈망했었다.
2. 도박성
소설가 이기영은 ‘농촌 사람’ 혹은 ‘평민’이라는 뜻이 내포된 민촌民村으로 자신의 호를 삼았다. 그런 그가 작가로서 당연히 관심이 있는 것은 식민지하의 농촌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시대 많은 지식계층이 가졌던 계몽의 대상이나 관념의 영역으로 농촌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현실의 조건에 부딪혀 있는 농촌의 변화과정을 더 관심 있게 주시했다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해석일 듯싶다. 농민은 일제강점 기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집단이다.
우리 근대사의 주요한 모순이 잠재된 실재태實在態로서의 농촌이다. 일제강점 기간 동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집단이 농민이다. 이 변화를 단순화하자면 “① 농촌 중간층의 몰락과 소작농민 증가, ② 소작조건 악화와 그 결과인 농가수지 악화, ③ 농가부채 증가와 농촌빈민 수 증가, ④ 이들 농촌빈민의 이농과 화전민화, 그리고 걸인화”로 요약할 수 있다.
-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창작과 비평사
그래서 그는 ‘개명’ 이전의 상태에 있던 일제강점기의 아직 청산되지 못한 봉건적 잔재와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등의 농촌의 카오스(chaos)적인 상태를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너무나도 냉철하고 현실적인 언어로 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1930년대 농촌의 현실을 실감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에서 보아왔던 모습에 대한 끌림, 동향이나 향수로 인해 더 농민 문학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모친이 생존했을 때에는 비교적 명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무 애들과 장난을 몹시 해서 집안에서도 어머니에게 여간 말을 씹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일순 사랑하던 어머니를 여읜 뒤로 나는 자기도 모르게 우울한 성격을 이루어갔다.
모친은 바로 건너다보이는 안산에다 묘를 썼다. 나는 조석으로 산소를 바라보며 모친을 생각하였다. 밤에 자면서 남모르게 베개를 적신 적도 있었다.”
- 이기영, 〈나의 수업 시대〉, 동아일보(1937. 8. 6.)
이기영의 소설 〈서화鼠火〉는 주인공 돌쇠가 이웃집에 살고 있는 바보 응삼이를 상대로 도박을 하여 응삼이가 가지고 있었던 소를 판 돈 모두를 따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추운 겨울 소작민이 가족들의 굶주림 속에서 노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돈 때문에 바보 응삼이와 조혼을 한 이쁜이가 돌쇠를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이쁜이를 남몰래 흠모하는 면서기를 다니는 김원준은 응삼이의 집을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고, 이쁜이가 돌쇠에게 품고 있는 연정을 눈치 채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돌쇠와의 관계를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동안 마을에서 있었던 노름과 풍기문란에 대해 열띤 설교를 한다. 하지만 사실 이런 그의 행동은 얼마 전 있었던 응삼이에 대한 돌쇠의 노름에 대해 고발하고 이쁜이와의 관계마저 알려 돌쇠를 궁지에 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원준이 하나 간과했던 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지식인 정광조의 존재였다. 결국 정광조는 원준이 말하는 도박과 풍기문란은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여러 가지 악습관에 의해 생기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원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돌쇠의 잘못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곰곰이 생각하며 바로 잡아야 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이런 일을 통해 돌쇠와 이쁜이는 더욱 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고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끝을 맺는다.
이기영의 소설 〈서화鼠火〉 속 도박이 농민들의 굶주림이나 오래된 악습에 대한 이야기라면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Pique Dame)〉(1833)은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의 도박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귀화한 독일인 아버지에게서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물려받은 게르만이 자신의 친척인 ◯◯◯ 노백작 부인이 프랑스 여행에서 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 엄청나게 큰돈을 카드게임에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친구인 톰스키에게서 우연히 듣게 된다. 단 세 장의 카드만으로 잭팟을 터트린 그 비밀은 절대 누설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르만은 굉장히 도박을 하고 싶지만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어서 그저 다른 사람들이 신들리듯 재밌게 하는 도박을 바라만 보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후 그의 머리속은 하나의 새로운 계획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선 게르만은 백작부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백작 부인이 양녀로 거두고 있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그런 게르만을 거부했지만 차츰 그가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었고, 급기야 밤중에 그녀를 만나러 온다는 게르만에게 자신의 처소를 세세히 알려준다. 그렇지만 그것은 게르만이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만나러 오는 꿈같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닌 노백작 부인의 침소에 숨어 들어가 노백작 부인을 협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노백작 부인은 게르만의 협박에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쇼크를 받은 게르만은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의 방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 이야기하고 도망간다. 그 후 게르만의 꿈에 노백작 부인이 나타나 3장의 카드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3, 7, 에이스〉 이었던 것이다. 꿈에서 노백작 부인은 하루에 한 번 돈을 걸되 이 세 번이 지난 후 더 이상 이 방법으로 도박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게르만은 그날 밤 도박의 세계로 직행하고 노백작 부인이 알려준 대로 게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연달아 이틀 동안 그녀가 알려준 카드들이 그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고 믿은 마지막 밤인 셋째 날 게르만은 자신의 전 재산을 마지막 카드에 걸었다. 하지만 그의 착각 속에 나온 카드는 에이스가 아닌 스페이드의 퀸이었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날려버린 게르만은 결국 정신이 이상해져서 정신병원에 수용되게 된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결국 현실로 돌아와 관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상당한 재산도 가지고 있는, 전에 노백작 부인의 집사를 하던 사람의 아들과 결혼을 해서 가난한 친척 소녀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
이기영의 소설 〈서화鼠火〉의 주인공 돌쇠는 필연적 이유에 의해 자신의 우연적 ‘도박성’을 사용하게 된다.
“임자의 부모도 여북해야 그랬거나! 임자는 벌써 배고픈 걸 잊어버렸구려!”
“차라리 배고픈 것이 낫지…….”
“흥 그건 임자가 모르는 말이지. 그렇다면 임자는 아즉도 내가 응삼이와 노름한 사정을 모르는 모양이구려!”
“노름한 사정을?
이쁜이는 말귀를 잘 모르는 것처럼 눈썹을 찡그리며 쳐다본다.
“그래! 그럼 임자는 나를 그저 노름에 미친 사람으로만 보고 있단 말이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노름에만 정신이 팔린 놈이 아니네. 나는 지금도 노름꾼이 되고 싶지는 않아……. 집에 먹을 것이 없다. 나무는 산에 가서 해 올 수 있다 하나 쌀은 어디 가서 얻나? 농사는 해마다 짓지마는 양식은 과세도 못 하고 떨어진다. 해마다 빚만 는다. 엄동설한 이 치운데 어린 처자와 부모 동생이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이 꼴을 차마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오냐 도적질 이외에는 아무것이라도 하자! 아니 도적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하자! 그러면 노름이라도 하자! …… 그래서 나는 응삼이를 꾀여낸 것이다! 그런데 임자는 ……
- 〈서화鼠火〉 본문 중에서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얻을 목적으로 도박을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생계를 위해 도박을 하였다. 주인공 돌쇠는 정확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절대 노름꾼이 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가족’이라는 무게를 위해 그는 낭떠러지의 마지막 난간인 노름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Pique Dame)〉의 주인공 게르만은 돌쇠와는 정반대로 생계를 위해 도박을 하지 않고 있다. 게르만에게도 ‘도박성’은 필연적 관계로 볼 수 있는 것은 도박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게르만은 정신적으로 주체하기 힘든 상태가 되지만 이를 악물고 도박을 멀리하여 쥐꼬리만큼 받은 유산을 어떻게서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다.
게르만의 아버지는 러시아에 귀화한 독일인으로 아들에게 얼마 안 되는 현금을 물려주었다. 자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게르만은 이자 수입에는 손도 안 대고 봉급만으로 살아갔으며 조금의 낭비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한편 그는 마음을 좀처럼 털어놓지 않는 성격에다 야심가였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의 과도한 검약을 비웃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그는 강열한 열정과 불같은 상상력의 소유자였지만 굳건한 의지의 힘으로 보통 청년들이 겪는 방종을 피해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타고난 노름꾼이면서도 절대로 카드를 손에 잡지 않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분의 돈을 따려고 꼭 필요한 돈을 희생시킬 처지가 아니다”(〈스페이드의 여왕〉 본문 중에서) 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면서도 밤새도록 노름판에 눌러앉아 열병에 걸린 사람마냥 부들부들 떨며 노름의 다양한 형국을 지켜보았다.
3. 두 주인공이 만난 여자들과의 관계
〈서화鼠火〉의 주인공 돌쇠는 그를 흠모하는 응삼이 처 이쁜이를 어느 면으로는 대화를 나누는 좋은 상대자로만 생각한다.
“아이구! 저 웬수를 어째…….”
그럴수록 그는 사내가 미워서 죽겠다. 먹는 것도 살로 안 갔다. 만일 법이 없는 세상이라면 그는 벌써 응삼이를 사약이라도 해서 죽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한편으로 돌쇠에게 정을 쏟게 되었다. 돌쇠는 자기 집에 사랑방이 있기 때문에 자주 놀러왔다. 낮으로 밤으로 일거리를 가지고 와서 응삼이와 함께 새끼를 꼬기도 하고 멱을 치기도 하였다.
이 동리는 모두 그렇지마는 남녀 간에 내외를 하지 않는 까닭으로 그는 안에도 무상출입을 하였다. 돌쇠는 자기 시어머니를 보고 아주머니라 불렀다. 그럴 때마다 이쁜이는 돌쇠에게 추파를 보내고 남모르는 가슴을 태우며 있었다.
--- 돌쇠의 사내답게 생긴 풍채와 언변 좋은데 고만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벌써 돌아갔지마는 시어머니가 늘 집에 있고 응삼이가 안방구석을 좀처럼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오직 상사의 일념이 조각구름처럼 공허한 심중에 떠돌고 있었다.
작년 가을이었다.
동리 사람들은 한창 논밭을 거두어들이기에 바쁠 참이었다. 응삼이 집에서도 집안 식구가 모두 들로 나가고 이쁜이만 혼자 집을 보고 있었다. 시동생 응룡이는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웃 아이들도 모두 들로 나갔다.
마침 그때 무슨 일로 왔던지 돌쇠가 응삼이를 부르며 들어왔다. 그때 이쁜이는 돌쇠를 보고 웃었다. 그는 그때 꽈리를 불고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심장이 뛰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초련의 독배였다.
- 〈서화鼠火〉 본문 중에서
위의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서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이쁜이는 가난 탓에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소위 동네 바보라 불리우는 응삼이에게 시집오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쁜이는 남편의 바보스러움에 지치게 되고 남성혐오까지 치닫게 되는데, 이때 그녀의 강퍅한 마음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바로 돌쇠이다. 그녀는 능동적인 사랑으로 돌쇠를 구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에 나오는 여자주인공인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살펴보자.
리자는 너무나도 변덕스런 백작부인의 양녀로서 힘들고 슬픈 어찌 보면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게르만은 건넨다. 이 만남은 그녀에게 매일 들뜬 기분의 행복함을 선사하고 이로 인해 점점 빠른 속도로 그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리자는 이런 사랑을 필연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을 뿐 게르만은 그녀를 백작부인에게 다가가기 위한 악랄한 수단으로 밖에 생각치 않았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매일같이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들은 더 이상 독일 소설을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게르만은 열정에 사로잡혀 썼으며 자기 나름의 언어로 말을 했다. 거기에는 불굴의 욕망과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상상력이 표현되어 있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되돌려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편지에 도취되어 있었고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편지는 시시각각 길어져 갔고 또 다정해져 갔다.
- 〈스페이드의 여왕〉 본문 중에서
위의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알 수 있듯이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서화〉의 이쁜이와는 정반대로 처음부터 남자주인공인 게르만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점점 더 빠져들며 사랑과는 관계없이 도박만을 위해서 그녀에게 다가간 게르만과는 달리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기영의 소설과 푸시킨의 소설을 대비해서 보자면 두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바라본 시각은 틀리지만, 여자주인공들이 가지고 있는 남자주인공에 대한 사랑은 똑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서화〉에서의 돌쇠와 이쁜이는 도박이라는 도구를 통해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곧 사랑으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게르만과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의 관계를 보면 게르만이 도박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가 바로 여주인공인 리자베타 이바노브나였고, 자신의 계획이 다 이루어지고 필요가 없어진 상태에서 게르만은 여주인공을 바로 버려버린다.
또 다른 면에 있어서 서화의 이쁜이는 〈스페이드의 여왕〉의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보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그 당시 한국적 사고로 봤을 때 여인이 보여주어야 되는 덕목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악습에 매여 있는 한 인간이 그 악습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조금 더 개방적인 면을 보여 줄 거라는 생각을 무참하게 깨버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4. 도박의 필연
〈스페이드의 여왕〉은 재미있는 결말을 보여준다. 게르만은 도박으로 인한 정신 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리자 또한 게르만과의 열렬한 사랑은 한 여름 밤의 꿈으로 여긴 채 현실로 다시 돌아와 심심한 자신의 필연적인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게르만은 미쳐 버렸다. 그는 오부호프 병원 17호실에 앉아서 무엇을 물어도 대답은 하지 않고 놀랍게 빠른 속도로 “3, 7, 에이스! 3, 7, 에이스…”만 중얼거릴 뿐이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매우 착한 청년과 결혼했다. 그는 어느 관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상당한 재산도 가지고 있다. 그는 전에 노백작부인의 집사를 하던 사람의 아들이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는 가난한 친척 소녀를 맡아 키우고 있다.
- 〈스페이드의 여왕〉 본문 중 마지막에서
사실 도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비슷할 정도로 길다. 서양사회에서는 도박을 하는 것을 ‘운명의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에 기독교적 가치관을 정면으로 배반한 불경한 짓으로 생각했다. 동양사회에서도 근면과 성실을 배제하고 단박에 돈을 벌려는 행위를 도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지금은 도박에 빠지는 중독적인 상황을 비윤리적이고 나쁜 행동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도박중독이라는 병에 걸리고 개인적 사회적 폐해가 발생하더라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짓을 하다가 타당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박중독은 사회환경과 개인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생기는 뇌질환이라고 한다.
어느 연구에서는 도박 관련 비디오와 즐거운 내용의 비디오, 그리고 슬픈 내용의 비디오를 각각 도박 중독자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보여주면서 기능적 MRI소견을 관찰한 결과, 즐거운 내용과 슬픈 내용의 비디오를 볼 때는 두 집단 간 차이가 없었지만, 도박관련 비디오를 볼 때는 뇌 영상에서 차이를 보였다. 즉, 도박 중독자들은 도박 이외의 자극에는 일반인들과 별 차이가 없는 반응을 보였으나, 도박과 관련된 자극을 보여줄 때는 처음부터 도박 욕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박 중독자들이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평범해 보이지만, 도박 자극을 줄 때는 과민하게 충동적으로 변하며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스페이드의 여왕〉의 게르만이 보여주는 모습과 똑같다. 그에게 있어서 도박은 필연적이었는데 결국 중독이었다. 그래서 도박은 게르만에게 파멸의 길 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욕망 중의 하나가 바로 도박과 재물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사랑도, 돈도 정신도 그 모든 것도 얻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상한 세계로 더욱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기영의 소설 〈서화〉의 돌쇠에게서는 〈스페이드의 여왕〉의 게르만이 보여준 것 같은 도박의 필연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삶이라는 필연성을 위해 도박이라는 우연을 만들어 냈고 그랬기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어둠 속에서 도란도란 한다. 이쁜이는 돌쇠에게 온몸을 실리다시피 치개면서 걸음을 떼놓았다.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별세상이 또 있는가 부지? 그이(정주사의 아들)는 그것을 아는 모양이 아닌가!”
돌쇠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무심코 이런 말을 하였다.
“참말로 우리도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면……”
그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 〈서화鼠火〉 본문 중 마지막에서
이기영의 소설 〈서화〉와 푸시킨의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 이 두 작품은 주인공들이 도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필연을 가장한 우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이 두 작가들이 표현하고 있는 세계가 여실히 펼쳐져 있는 것을 볼 때, 문학이라는 예술형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러시아에 유학을 갔을 때 러시아어를 배우면서 처음 접한 문학가가 바로 그들의 국민 시인 푸시킨이다. 그래서 푸시킨은 전 러시아인의 국민시인임과 동시에 오랜 유학생활로 필자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러시아의 혼을 문학으로 접한 최초의 작가다. 그런 그를 더 접하면서 그의 자유로운 사상과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노들의 자유를 울부짖었던 참인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한국에도 그와 비슷한 사상을 가진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바로 이기영이라는 소설가다. 게다가 월북작가인데도 숙청을 당하지 않고 꾸준히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다. 어쩌면 사회주의 나라였던 러시아가 추앙하는 국민 시인 푸시킨과 너무 닮은 생각을 글에 담으며 살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라고 판단된다.
두 작가를 대비해 보면서 현대 시대에는 그 시대와는 달리 계급사회는 표면적으로 없어졌지만 인간 개개인은 무엇인가에 의해 정신적, 내면적, 물질적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사랑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의 족쇄와 억압을 치유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인생 자체가 도박일 수도 있다. 시대가 각박해지고 물질만능주의로 나아갈수록 돌쇠나 게르만의 상황을 마주칠 수 있지만 이기영이나 푸시킨이 독자에게 그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처럼 진솔한 삶만이 우리의 삶을 정당하게 지탱해 주는 게 아닐까.
송원진 ---------------------------------------
바이올리니스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17년 모스크바 유학, 예원학교,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 졸업, 러시아 볼고그라드 제2회 국제 콩쿠르 “심포니아” 현악부문 2위, 제4회 모스크바 국제 콩쿠르 현악부문 1등 없는 2등.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제 27회 주목할 예술가상 신인상 수상, 저서 〈불멸의 사랑이야기〉, 머니투데이 〈송원진의 스토리 클래식〉, 〈송원진의 클래식 포토 에세이〉칼럼 연재 중.
당선소감
열세 살 가을 참으로 햇빛이 고운 날,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러시아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날 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자 살벌함과 냉기가 덮쳤습니다. 그렇게 저의 러시아 유학생활은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보다 더 긴 세월을, 유년기를 막 벗어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모스크바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긴 유학생활 중 아주 큰 행운은 러시아 작가의 소설들을 원문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참으로 치열한 시간을 보냈지만 문학과 예술을 아주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러시아의 생활환경 속에 노출되다보니 어느 덧 문학은 너무 자연스럽게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뿌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 점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러시아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골”의 〈죽은 혼〉이 내 혼과 같이 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푸쉬킨”은 정말 러시아에서는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술을 사랑하고 특히 소설가나 시인을 최고의 인텔리로 격하게 사랑하는 민족 속에서 살았던 제게 글쓰기는 제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의식행위였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제 삶은 오로지 음악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을 바라보다 모스크바의 하늘이 생각났고 잠시 잊고 있었던 “이반 부닌”의 〈어두운 오솔길〉이 생각났고 불현듯 소설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저의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인간과문학》 관계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발전이 함께 하시길 간곡히 빕니다. 감사합니다.
'계간 인간과 문학 > 인간과문학 수상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간 『인간과문학』 제2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김수진'님을 소개합니다 (0) | 2015.01.13 |
---|---|
계간 『인간과문학』 제1회 신인작품상 희곡부문 당선자 '김수용'님을 소개합니다 (0) | 2014.10.01 |
계간 『인간과문학』 제1회 신인작품상 동시부문 당선자 '최하얀'님을 소개합니다. (0) | 2014.07.26 |
계간 『인간과문학』 제1회 신인작품상 단편소설부문 당선자 '서하나'님을 소개합니다. (0) | 2014.07.26 |
계간 『인간과문학』 제 1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허문구'님을 소개합니다. (0) | 2014.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