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문학 수상작

계간 『인간과문학』 제 1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허문구'님을 소개합니다.

신아미디어 2014. 7. 25. 18:41

계간 『인간과문학』 제 1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허문구'님을 소개합니다.

 

 

 

 

 

 

수직이동 외 2편

 

그곳은 무수한 1층을 향해 하강하는 거인과
모서리에 웅크리고 상승하는 난쟁이가 있으며
중력에 말려 있는 철사가 있다

 

관심은 늘
단 한 걸음도 허락하지 않는 벽과 벽을 향하고
치킬 게 많은 사람은 따질 게 많아
발바닥 같은 귀를 천장에 붙여 놓는다

 

창밖은 노란 물이 들어
구름이 더 큰 구름 속에 갇혀 이리저리 흘러다닌다
나는 빈방에 구름을 넣다 말고
한 뼘 두께의 집을 짓는 그대를 바라본다
천장이 바닥이 되는 방법으로 집을 짓고 있는 그대를,

 

언젠가 그대는 떠나고 꺼지는 감각에 무언가 고정되는 눈만 남고
발자국도 남기지 않는 구두를 신고 파문이 인다 

 

마침내 누군가 벽을 향해 설전을 다짐하는 동안
누군가는 여기저기 공룡의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1층과 또 다른 1층 사이
계단을 타고 흐르는 취기를 아는 그대는
측면을 타고 오르는 싸늘한 공기를 주머니에 주워 담는다

 

새벽이 오지 않고 다시 밤이 내려가는 날
엘리베이터 문은 열리고
두 발로 걷던 사람들 틈에서 나는 네 발로 걸어 나온다

 

무수한 1층은 천장과 천장만 남고
다음날 새벽, 화면 속에 서리다

 

 

 

별들이 무질서하다

 

별들은 무질서했으며 나는 오랫동안 집에 없었네    
숲은 바람처럼 쏟아지고 있었으며 나는 아직 집에 없었네

 

그대는 주머니 속에 머리를 넣고 다니며
수의를 건네받고 낄낄대던 사람
환자복에 수의를 겹쳐 입었지

 

별들은 무질서했으며 나는 아직 집에 없었네

 

그대는 알지, 낯선 하늘이 혼자 웃고 있을 때 
어느 하늘 하나쯤은 아슬아슬하게 빛나고 있을 거라는 거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 신 나는 죽음의 길에 길길이 날뛰던 무수한 상상  

 

나는 아직 집에 없으며 공중은 무거워야 날개를 달고
돌려주지 않는 것들의 가벼움
그것은 미치지 않고 미칠 수 있는 경전 또는 신념

 

살아야 할 죄인은 꽃처럼 죽고 죽지 못한 죄인은 가시처럼 퇴원하고
공중은 뜨겁게 올려다볼 하늘만 오그라들어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것들의 이탈 

 

나는 아직 집에 없고 별들은 무질서했으며 숲은 바람처럼 쏟아지네
피곤한 그대는 눈물처럼 반짝이며 숲에 서 있네

 

 

 

카페 쿠바

 

냉장고 문을 열면
쿠바는 왕복하는 밤을 밀면서 운항 중이고
보드카를 담아놓은 병에서는 작은 새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 귀는 수상하리만큼 기울어 며칠 먼저 빌려 준 금요일 오후 같은 기분

 

쿠바에 앉으면 뉴올리언즈 바다를 가로지르는 불빛이 술잔에 번진다   
그것은 백만 분의 일 초 순간에 전력 질주하던 바퀴를 접어야 하는 이륙의 방식
스스로 둥글게 말리는 일상이지만 나는 이쯤에서 재즈감정이라 말 해놓고

 

흰 건반이 무릎에 물컹하게 쏟아지면 은빛날개가 거둬들인 지상의 무게
은밀한 운해의 지붕 위로 날아가는 그림자 끝에 간신히 매달려 가는데

 

시간이 바다에서 펑펑 털리면서 날자고
오늘이 오늘로 돌아갈 수 없는 높이까지 오르고
번지는 속도감에 목은 마르고

 

창밖은 번개 튕기듯 조각난 하늘이 쏟아진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얼굴들이 비켜 지난다
끈적한 기타소리, 깁슨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얼음 심은 보드카, 야마하 드럼을 쪼개 시간을 맞춘다

 

지금쯤 오랜 기억 속으로 날아가는 비둘기는 폐쇄된 사서함을 집으로 했지
유리창에 걸려있는 불 그림자 치사량의 연기를 머금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국수 가락 길게 깔아놓고 덜컹거린다.
나는 벌써 날개의 일부가 된 듯 찬바람에 뜨겁다

 

쿠바는 기상악화로 되돌아가는 도요새를 본 적 없으며
부리에 굶주림이 가득해도 날기 위에 기류를 탈 것이며
무덤조차 없는 원시인이 절벽을 날았다는 기록 또한 없을 것이다

 

폭우가 가져다준 오후, 금요일 오후 같은 오후 
나 엡솔루트 하지 않으면 
낯선 거리 이름들이 무섭게 달려드는 이 오후를,

 

 

 

허문구  -------------------------------------------

   Lincoln College Of Denver Colorado 자동차과 졸업(1997),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2013), 콜로라도 오로라 시에 거주, 아내와 사이에 2남 1녀, 제10기 해외 평통위원 역임(2001), 콜로라도 주 한인회 이사장 역임(2001-2005), 2007년 4월 27일 뇌출혈로 콜로라도 대학병원 입원, 42일 뒤 퇴원,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 4인에 포함(2012), 미주시인협회 신인상 최우수상 수상(밖, 모든 1년의 죽음 외9편)(2013.7)

 

 

 

당 선 소 감

 

   2007년 6월 8일이 생각납니다. 그날 퇴원의 문은 다른 세상이었죠. 제가 살던 지구는 온데간데없고 어항 속 세상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제 눈은 금붕어였으며 물 밖의 사람들은 외계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경험한 42일은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제 사유의 끝은 어딘지 모르게 우주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퇴원의 문은 겹겹이 닫혀 있어 어리둥절하지만, 이성복 시인의 표현처럼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밀고 있는 대상이 다름 아닌 시라는 것에 전혀 의심할 수 없습니다. 밀 수 없을 때가 되면 1961-?, 물음표에 정확한 숫자가 생길 겁니다.         
   돌아보니, 로키 산을 마주하며 산지가 어언 21년이 되었습니다. 동굴 속에 들어 지낸 지도 7년이 되어갑니다. 시심은 산속에 있고, 시상은 세상을 향하고, 시감은 하늘과 땅을 오고갑니다.   
   오늘 이렇게 볼품없는 초로의 시인을 불러주신 《인간과문학》 심사위원 여러분 이하 모든 관계자분께 고마움 전합니다. 아울러 늘 곁에 있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장치들로 시를 오므리고 펼칠 수 있게 해준 저의 모든 시적 대상에게 고마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