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문학 수상작

계간 『인간과문학』의 제1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김민재'님을 소개합니다.

신아미디어 2014. 7. 25. 18:28

계간 『인간과문학』의  제1회 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자 '김민재'님을 소개합니다.

 

 

 

 

 

회화나무 점빵 외 2편

 

오래된 기억이 내 눈을 콕콕 쪼는 시간
어둠이 무럭무럭 자라던, 정말
회화나무였을까 느티나무였는지 몰라
없었다 해도 상관없어 외갓집에
나를 맡기고 돈 벌러 갔는지
엄마의 내일은 아직도 멀었지
할아버지보다 더 늙은 집 뒤란에 앵두가 열리고
봉숭아 수국이 아무리 고와도 회화나무
점빵 아제 머리위에서 팔랑이는 초록 잎들
깜박일 때마다 바람이 불었고 나무 그림자
바람이 익숙하게 잡아 늘리면 어느새
달큰한 밥 냄새가 노을처럼 울컥 붉었지
국수를 미는 할머니 머리위엔
안개같이 눅눅한 밀가루가 쌓이고
밥 무근나 묻는 회화나무 점빵이
진짜로 있었는지 내가 정말
엄마를 그토록 기다렸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회화나무 한 그루, 점빵이 있었지

 

 

 

나를 만든 달

 

근육으로 단단해진 달이
구름을 마악 비껴갈 찰나였지
너무 붉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밤
모서리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커다란 달이
심심풀이 화투점 치던 엄마 등 뒤로 박혔어
솔 매화 벚꽃 난초 나란히 줄 세우며
달이 아무리 밝아도 눈은 어두워
화투장 안 보인다며 혀를 끌끌 차고는
이쯤 살았으면 명줄만큼 산거라며
패를 뒤집다 말고 손금을 들여다봤지
모란 국화 단풍 오동 갈라놓듯
기억을 가만가만 가르고 있는지
어깨너머 화투패 훔쳐본 달은
술 향 가득한 국화를 밟고 섰어
엄마는 어깨에서 조금 미끄러진 달을 흘기고
밤이 명줄만큼 길다고 투정을 했지만
가만 보니 달도 이젠 순하게
부풀었던 근육에서 바람을 빼고
엄마의 허벅지를 베고 있었던 거야

 

 

 

적당한 거리

 

사방 연속무늬 모란 몇 송이를 깔고 앉았어
모란이야 얼마든지 자라니까 신경 쓰지 마
모퉁이로 갈수록 더욱 화려한 공간
세계일주 준비 치곤 어설픈 축에 들지도 않아
어차피 완벽한 계획은 세상에 없으니까 다행이야
날짜 변경선에 하나 둘 걸린 노랑 메모지들 도대체
외워지지 않는 난해한 단어들
땅과 땅 물과 물 사이 파고들어 노랗게
팔랑팔랑 언제 남겼는지 기억 할 수 없는
적당한 거리는 어떤 거리일까 
수없이 많은 빨갛고 파란 선들
점으로도 안 찍히는 동네
모란이 피는 정원은 어디쯤일까
이 끝과 갈 수 없는 저 끝의 거리
인생 자체가 억울하다는 엄마와 나의 거리
적절한 용도로 쓰여 본 적 없는 단어들
세상 어딘가에서 정말 쓰이기나 하는 걸까
곰팡이가 야무지게 지구정복을 꿈꾸는
여기는
똑같은 모란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세상과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는
빳빳하게 코팅된 표준행정 세계지도

 

 

 

김민재  ----------------------------------------------

   경기도 파주 출생, 서울에서 성장, 캐나다 노바스코샤 거주, 상지대학교 공예학과,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당 선 소 감

 

   태평양이 가운데 있는 세계지도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마치 세상의 끝처럼 보입니다. 참 멀리 왔습니다. 멀어지니 생각은 오히려 촘촘해집니다. 게다가 말[言語]이 다른 사람들과 살다보니 생각은 더욱 안으로 잦아듭니다. 처음에는 그 많은 생각들을 주워 담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생각도 쌓이면 무겁고 단단해지나 봅니다. 생각을 글로 풀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생각을 비우니 새가 하는 말이 들리고 사과나무의 가르침이 들립니다. 그리고 다시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당선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일 먼저 부족한 제 시를 예쁘게 봐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처음으로 시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김용국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첫 행을 쓰기 전에 선생님의 가르침을 상기하곤 합니다. 제가 쓸 마지막 시의 마지막 행을 쓸 때까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게으른 제자를 가르치고 이끌어주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믿음과 격려가 저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했던 김포 열린문학회 문우님들과 대학 선후배 동기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무한한 상상의 즐거움과 지구별 여행의 행복을 알게 해준 위대한 작가 더글러스 에덤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아직은 더 비워낼 것도 많고 귀 기울이고 싶은 소리도 많습니다. 열심히 비우고 열심히 듣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말을 거는 다정한 소리를 소중하게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