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문학에서 장은영님의 '바들바들 바이러스'를 다시 읽는 추천동화로 추천합니다.
바들바들 바이러스
무용 연습을 하려고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눈앞이 하얗게 흐려
졌다. 음악이 시작되었지만, 후들후들 떨려서 손발을 제대로 움직
일 수가 없다. 결국 첫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왼손을 위로 올리고 돌아야 하는데 오른손이 올라갔다. 허둥지
둥 손을 바꾸고 또 반대로 돌다가, 제대로 돌아온 재희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야, 너 몸치 아니냐. 세상에 이 쉬운 걸 제대로 못해. 이러면
너랑 어떻게 짝꿍을 하니? 한심하다 한심해!”
재희는 자기가 마치 선생님이라도 되는 듯 야단을 쳤다. 순간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 앞에 섰다.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무용 연습을 시작했다. 학교에서처럼 후
들후들 떨리거나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재희의 짝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손을 올려 돌고 뛰며 맹연
습을 했다. 실력이 조금 늘어난 것 같았다.
‘내일은 잘할 수 있을까?’
무대 공포증이 있는 나는 자신감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학교
가기가 싫었다.
‘아휴, 떨리지만 않으면 그래도 어떻게 잘해 볼 수 있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느새 창밖이 어둑어
둑했다. 어쩌면 내일 또 친구들에게 망신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어깨가 축 쳐졌다. 좋아하는 재희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야, 바들바들, 뭘 그런 걸 갖고 그렇게 고민하니?”
갑자기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반짝거리는 빛이 방안
으로 훌쩍 날아들었다.
“누, 누구야?”
오르락내리락하던 빛은 내 앞에서 멈췄다. 빛은 꼬마의 머리에
달린 뿔에서 나오고 있었다. 양볼이 둥그렇게 튀어나온 녀석은 얼
굴, 눈, 코 모두가 동글동글했다. 머리에 달려 있는 새끼손가락만
한 뿔만이 뾰족했다.
“난 너의 집 추녀마루 끝 망와 속에 사는 도깨비 꼭비야!”
“뭐, 도깨비라고?”
“뭘 그렇게 놀라. 넌 집집마다 그 집을 지키는 도깨비가 사는
거 모르니?”
놀라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꼭비는 왼팔을 올리고, 뒤로 돌아
엉덩이를 씰룩이더니, 오른손을 올렸다 내렸다, 어깨를 흔들었다
멈췄다 했다. 보란 듯이 방금 전 내가 추던 춤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어휴, 보다보다 못해 내가 찾아왔다. 넌 도대체 그걸 무용이라
고 하는 거야? 자신감 좀 가져라. 자신감!”
“도대체 네가 뭘 안다고 큰소리야?”
나는 함부로 말하는 꼭비가 짜증나 불퉁거렸다.
“아쭈, 그럴 땐 자신감 있네. 좋아, 가능성이 있어. 자, 나 따라서
주문이나 외워 봐.”
“꼭깨비 왕깨비 깨비깨비 꼭꼭 얍!”
“꼭깨비 왕깨비 깨비깨비 꼭꼭 얍!”
얼떨결에 꼭비가 외우는 주문을 그대로 따라 하고 말았다.
갑자기 내 몸이 붕 떴다. 창 밖에서 강한 힘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어어어’ 비명을 지르며, 자석에 붙은 쇳가루처럼
꼭비를 따라 끌려갔다. 우리의 몸이 순식간에 지붕 위로 올려진
순간, 내 몸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져 도깨비 그림이 그려져 있는
추녀마루 끝 망와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몸이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풀밭이었다. 몸을 꼿꼿하게 세우자 말랑거리던 몸
이 원래대로 변했다.
꼭비와 나는 조심조심 앞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
은 들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도깨비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꼭비와 나를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모두 전부터 나를
아는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꼭비 뒤만 꼭
붙어 따라다녔다.
그때 어둡던 하늘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대왕도깨비님이야.”
꼭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도깨비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대왕도깨비 주위로 모여들었다. 대
왕도깨비는 짙고 굵은 눈썹 아래 두 눈을 둥그렇게 부라리며 큰
주먹코를 벌렁댔다. 하지만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울퉁불퉁
한 얼굴에 까만 털이 수북이 덮여 있는 대왕도깨비는 손에 번쩍이
는 불방망이를 들고 있었는데 도깨비 아이들은 그것을 만지려고
서로 야단이었다. 대왕도깨비는 그것을 보며 하하 웃었다.
“허, 오늘은 용우에게 힘을 주기로 했다고?”
대왕도깨비 말이 우렁우렁 울렸다.
“네!”
꼭비와 도깨비 아이들은 큰 소리로 함께 대답했다.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용우는 혼자 있을 때는 잘하는데 여러 사람이 있으면 긴장되고
떨린대요.”
꼭비가 말했다.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고 당
황해 바들바들 떨었다.
“응, 그것은 용우 탓이 아니야. 지금 용우가 바들바들 바이러스
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까짓 거 당장 날려버리면 끝이야.
걱정 없어.”
대왕도깨비의 자신 있는 말에 도깨비 아이들도 한 마디씩 했다.
“크크, 그래. 나도 그랬어. 그 까짓 거 털어내면 돼.”
“맞아.”
“쉿, 모두 조용조용. 방석, 보자기, 빗자루 얍!”
대왕도깨비가 도깨비방망이를 높이 들며 소리쳤다.
갑자기 방석도깨비가 나를 태우자, 보자기도깨비가 다가와 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빗자루도깨비 같은 것이 내 몸을 싹싹 쓸어
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둥둥 떠다니는 느낌만
있었다.
“하나, 둘, 셋…… 열!”
도깨비들이 함께 합창하며 수를 세었다.
잠시 후,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왕도깨비가
친절하게 말했다.
“그동안 바들바들 바이러스 때문에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지만
이젠 걱정 없다. 우리가 다 털어냈으니. 네 얼굴을 가린 것은 우리
도깨비 나라의 비밀 규칙 때문이니 이해해라. 그런데 우리가 아무
리 바들바들 바이러스를 털어냈어도 네가 마음속에 자신감을 키우
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네가 해야 할 몫이야. 이 말을
명심하도록. 그럼 가봐라.”
대왕도깨비가 굵은 도깨비방망이를 머리 위로 치켜올리며 흔들
자 모두들 소리쳤다.
“키키키키, 타타타타, 쿠쿠쿠쿠, 코코코코, 키코키코, 카카
카…….”
여기저기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도깨비불이 번
쩍번쩍 터졌다.
“잘 가라는 인사야. 손을 흔들어 줘. 그럼 주문 나간다. 꼭깨비
왕깨비 깨비깨비 꼭꼭 얍!”
나는 도깨비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꼭비를 따라 주문을 외웠다.
어느덧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내 몸에 ‘바들바들 바이러스’가 붙어 있었다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감이 생겼다. 막혀 있던
가슴이 툭, 열리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가슴과 다리, 그리고
팔을 털었다. 갈비뼈 밑도, 뱃속도 털어내고 싶었다.
“크크크크.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꼭비가 장난스럽게 웃어댔다.
“그래, 이젠 알겠어. 그러니까 너는 망와 속으로 돌아가도 돼.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와줘서 고마워.”
“그래, 그럼 잘해나가길 빈다!”
꼭비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무용 연습을 하는데 놀랄 만큼 잘되었다. 재희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자꾸 쳐다보았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재희와 호흡을 맞
추었다.
“용우야, 너 정말 멋지게 잘한다. 너랑 짝꿍 하게 돼서 진짜 기
뻐.”
재희가 내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나도 네가 좋아!”
처음으로 재희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쿡쿡, 신나는 웃음이 자꾸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나는 솟아나는 자신감으로 바들바들 바
이러스를 뻥뻥 차버렸다.
장은영 선생님은 ---------------------------------------------
∙ 전북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 2009년 ≪전북일보≫ 동화 부문 신춘문예 당선.
∙ 2011년 통일동화공모전 우수상 수상.
∙ 현) 한우리 서신, 서천 독서교실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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