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문학 2012년 1월호에 김종상선생님의 창작동화가 수록되어 소개합니다.
푸른 마을
새벽하늘이 붐해왔습니다. 모래언덕들이 울멍줄멍 모습을 드러
냈습니다. 어둠의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다가 하나, 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합니다.
“햇살이 퍼지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야 한다.”
들쥐가 도마뱀들을 돌아보며 재촉했습니다. 들쥐는 사막을 건너
다니며 물건을 파는 떠돌이 장사꾼이었습니다. 사막을 건너 숲 속
의 푸른 마을로 가는 길입니다. 도마뱀들이 끄는 수십 대의 수레에
식량과 옷감과 일용품을 싣고 사막으로 들어선 것은 달포 전이었
습니다.
사막은 낮 동안은 가랑잎에 불이라도 일 것같이 뜨겁다가도 밤
이면 들쥐수염에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낮보다
밤이 좋았습니다. 낮의 더위는 피할 길이 없지만, 밤의 추위는 두
터운 옷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사꾼 들쥐 일행은 언제나
밤길을 택해서 걸었습니다. 모랫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새벽하늘이 호수처럼 맑아지면서 해가 두둥실 떠올랐습니다. 그
러나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해뜨기가 바쁘게 벌써 더워지기 시작이야.”
들쥐가 해를 쳐다보며 두터운 겉옷을 벗었습니다. 수레를 끄는
도마뱀도, 뒤따르는 개미 일꾼들도 두터운 겉옷은 훌훌 벗어 수레
에 실었습니다.
“벌써 이렇게 더운데, 얼마나 더 갈 수 있겠나?”
들쥐가 거미에게 물었습니다. 거미는 길 안내자였습니다. 사막
은 정해진 길도, 이정표도 없는데다가 바람이 모래언덕을 매일 이
리저리 옮겨 놓기 때문에 안내자가 없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길안
내를 맡은 거미는 황금거미인데 사막에서 살기 때문에 뛰어난 방
향감각과 경험으로 모래산과 바람골짜기의 모양이 바뀌어도 별자
리를 보고 방향을 잘 알아낼 뿐만 아니라 황금갑옷에 억센 턱을
무기로 일행의 경호원 노릇까지 할 수 있어서 믿음직했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도록 해야지요.”
해가 불끈 솟아오르자 사막은 불가마처럼 달아올랐습니다. 그와
동시에 먼 지평선으로부터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일었습니다.
모래먼지였습니다. 사막은 늘 그랬습니다. 모래가 햇볕에 뜨거워
지면 바람이 그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사막의 바람은 나뭇잎을 흔
드는 숲 속의 바람이나 호수에서 찰방찰방 물장난을 하는 귀여운
바람과 전혀 다릅니다. 얼마나 심술궂은지 뜨거운 모래를 끌고다
니며 장사꾼들에게 마구 뿌렸습니다. 뿌려지는 모래는 살갗을 파
고들었고, 햇살은 모닥불을 들어붓는 듯 뜨거웠습니다. 긴 수건으
로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들쥐 일행은 여러
날을 이러한 낮의 열기와 밤의 추위와 싸우며 걸어왔습니다.
“안 되겠어요. 오늘은 이곳에서 쉬어가야겠습니다.”
길안내자 거미가 말했습니다. 장사꾼 들쥐가 둘레를 돌아보았습
니다.
“지금 여기는 어디며 얼마나 온 것이냐?”
“여기가 초막골이니, 거의 절반은 온 셈입니다.”
“그러면 푸른 마을까지는 아직 한 달은 더 가야 되겠구나.”
“길만 제대로 든다면 한 달 안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초막골은 거미가 길을 안내할 때 꼭 쉬어가는 곳입니다. 비교적
바람이 적은 골짜기라서 사막을 건너가는 길손들이 쉬어가기에는
가장 알맞은 장소입니다.
거미는 도마뱀들에게 수레를 둥글게 이어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늘 해온 대로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꽁무니에서 밧줄을 풀
어 수레를 이어 묶도록 했습니다. 수레는 울타리가 되어 바람을
막고 그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모두 거기에서 아침을 지어 먹고
낮 동안은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초막골에서 또 하루 낮을 보냈습
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자 낮 동안 기승을 부리던 모랫바람도
잠잠해졌습니다.
거미가 어둠살이 기어드는 모랫벌을 멀리 바라보며 일행들을 깨
웠습니다.
“자, 모두들 일어나요. 햇살이 엷어졌습니다.”
일행은 모래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둘레는 이미 어둠
살이 끼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뒤쪽에 있던 모래언덕이 사라지
고 앞으로는 새로운 골짜기가 생겨났습니다. 쉬고 있는 낮 동안에
바람이 모래를 이리저리 옮겨서 그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서둘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겸 저녁이었습니다.
“오늘 밤은 더 빨리 걸어서 내일 아침까지는 물이 있는 곳에 도
착해야 합니다.”
개미들은 수레를 이어 묶어놓았던 밧줄을 끊었습니다.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 나타났습니다. 사막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박였습
니다. 거미는 그 별들을 가만히 살폈습니다.
“저 모래골짜기만 따라가면 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출발합시다.”
갖고 온 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샘이라는 말에 모두
힘이 솟았습니다. 거미는 제일 선두의 수레 앞에 앉아 길안내를
했습니다.
하늘에는 어느덧 깨진 유리알갱이를 쏟아놓은 듯 많은 별들이
반짝였습니다. 쳐다보고 있으니 금방 이마 위로 우수수 쏟아져내
릴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습니다.
“모두들 좀 더 빨리 가도록 걸음을 재촉합시다.”
양쪽 모래언덕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들쥐 일행을 쫓아오다
가는 뒤로 밀려나갔습니다. 마치 수레가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
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막을 모래의 바다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거미는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여러 날 길을 안내하느라고 지친데다가 이 모래골짜기만 빠져나가
면 샘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동안의 긴장이 풀렸던 모양입
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수레가 멈추는 느낌에 거미는 깜작 놀라 눈을 떴습니다. 둘레
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여기가 어디야? 이럴 수가……”
수레가 멈춘 곳은 거미가 생각했던 샘이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
다. 뜻밖에도 어제 낮에 쉬었던 초막골이었습니다. 도마뱀들은 분
명히 거미가 말한 대로 모래골짜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는 멀리 사막을 가다가 되돌아서 초막골로 이어진 것이었습
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내일이면 샘을 만날 것이
라는 희망에 부풀어 밤새워 걸어간 것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야 말았으니, 꼭 도깨비에게 홀린 것만 같았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아? 밤새 걸은 것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다니.”
거미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장사꾼 들쥐가 벌컥 화를 냈습
니다.
“밤새 걸어온 것이 초막골로 되돌아오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더 걸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수레가 멈춘 것도 도마뱀들이 어제 낮 동안 쉬었던 장소인 것을
알고 스스로 멈추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처럼
수레로 그늘을 만들고 아침을 지어 먹었습니다. 아침을 짓고 나니
물이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사막에서는 물
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물 남은 것 없나? 목이 타서 못 견디겠어.”
“나도 목이 말라 못 견디겠는데, 누가 물 좀 찾아봐요.”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목이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습니다. 햇살은 어제처럼 불화살로 쏘아오고, 바람이 몰고 오는
모래도 변함없이 불에 달군 쇳가루 같았습니다. 일행은 모두들 수
레에서 수건이나 옷가지를 꺼내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몸을 고슴
도치처럼 웅크렸습니다. 물이 떨어졌다는 생각이 갈증을 더 느끼
게 했습니다.
“물, 물 좀 줘요. 어디 물 없어요?”
“이러다가 우리 모두가 여기에서 죽게 될 거야.”
수레를 끄는 도마뱀도, 부지런한 일꾼 개미도 이제는 꼼작하기
조차 싫었습니다.
“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집에서는 엄마가 기다린단 말이야.”
마침내 개미 한 마리가 미친 듯이 모랫벌로 뛰어나갔습니다.
“안 돼, 어서 이리 와. 거기 모랫벌로 나가면 죽어.”
거미가 쫓아갔지만 개미는 뜨거운 모랫벌을 미친 것처럼 달려갔
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수레그늘로 끌어왔
지만 개미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거미는 안내자로서의 책임을 생각했습니다. 물을 빨리 구하지
못하면 모두가 죽은 개미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을 구하러 가기
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뜨거운 모래 위를 그대로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가까운 모래언덕 위로 조각구
름 한 장이 길을 잃은 듯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거미는 구름을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조각구름아, 너도 길을 잃었구나.”
“응.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까 하고 생각하는 중이야.”
“나는 샘을 찾아야 해. 네가 좀 도와주지 않겠니?”
“샘은 내가 알아. 지나오다가 봤어. 그렇지만 어떻게 도와주니?”
“나 좀 거기에 데려다 다오. 거기로 가다 보면 네가 잃은 길도
찾게 될지 모르잖니? 부탁이야.”
“네가 한낮에 거기까지 걸어갈 수 있겠니?”
“네가 좀 태워다 주면 갈 수 있어.”
“그럼 내 등으로 올라 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응, 할 수 있어.”
거미는 조각구름을 향해 꽁무니로 밧줄을 쏘았습니다. 밧줄은
조각구름의 잘룩한 허리께에 걸렸습니다. 거미는 타잔처럼 밧줄에
매달렸습니다.
“내가 샘 있는 데로 갈 테니 떨어지지 않게 꼭 붙잡아.”
조각구름이 가는 데로 끌려갔습니다. 모래언덕을 몇 개나 지났
습니다. 아래를 살폈습니다. 가도 가도 모래뿐인 사막에 까만 점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딱정벌레였습니다. 조각구름이 멈추어 서
며 말했습니다.
“저기 딱정벌레 가는 데 샘이 있었어.”
거미는 밧줄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딱정벌레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었습니다.
“물을 구하러 왔어요. 샘은 어디 있나요?”
“저를 따라오세요.”
딱정벌레를 따라갔습니다. 조금 우묵한 곳에 대추야자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저기예요. 며칠 전부터 물이 줄던데, 있을지 모르겠어요.”
거미가 달려가 보니, 샘은 모래에 덮이고 물은 한 방울도 없었습
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물을 구하지 못하면 일행 모두가 살아
남을 길이 없습니다. 딱정벌레를 쳐다보았습니다.
“샘물이 다 말라버렸으니, 어쩌면 좋아요?”
“여기를 파보면 어떨까요? 혹시 물이 나올지도…….”
딱정벌레는 모래에 덮인 샘자리를 가리켰습니다. 겨우 샘의 흔
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럼 기다려보세요. 우리 일꾼들을 데리고 올 테니.”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바람은 샘터를 지나가며 거미와 딱정벌레
에게 모래를 뿌렸습니다.
“아이, 따가워! 심술쟁이 같으니라고.”
거미는 대추야자나무 잎을 엮어 얼굴과 몸을 가리며 지나가는
바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은 모두 방금 거미가 왔던 쪽으로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조각구름에 매달려 올 때를 생각했습니다.
바람을 타고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밖에 없어. 저 바람을 붙잡고 매달리는 거야.”
바람은 열두 형제, 줄줄이 사탕이었습니다. 한 무리가 지나가면
연달아 뒤를 이어 불어왔습니다. 거미는 대추야자나무 위로 올라
가 밧줄을 늘여놓고 기다렸습니다. 뜨거운 사막과 푸른 하늘을 휘
젓고 지나가는 바람을 낚으려는 것입니다. 저만큼 어른 바람 뒤를
따라오던 아기바람이 밧줄에 걸렸습니다. 거미는 재빨리 아기바람
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아기바람은 거미를 떨어뜨리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거미는 여섯 개의 다리로는 아기바람의 허리를 감고 두
개의 다리로는 아기바람의 목을 감아 죄었습니다.
“아이고, 숨막혀! 왜 이러는 거야?”
“살고 싶으면 나를 우리 일행이 있는 초막골로 데려다 다오.”
“거기 가면 나를 놓아주겠니?”
“그래, 빨리 가줘야 해.”
아기바람은 숨가쁘게 달렸습니다. 금방 초막골에 도착했습니다.
거미는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아기바람의 등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 일어나요. 샘을 찾았어요.”
목마르고 지쳐서 쓰러져 있던 일행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
서 일어났습니다.
“뭐야! 샘을 찾았다고? 그럼 물은?”
“샘을 찾았다면서 빈손이잖아. 물은 어디 있어?”
“지금은 말라 있지만 파면 물이 나올지도 몰라요.”
“그럼 파서 물을 갖고 와야지. 왜 그냥 왔어?”
들쥐가 빈손으로 돌아온 거미를 보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혼자는 못 파요. 일꾼들을 데리러 왔어요.”
“그럼 모두 가자. 샘을 파서 물을 구해야 해. 그렇지만 어떻게
간단 말이냐?”
목이 타서 서로 샘을 파러 가겠다고 나섰던 개미들도 금방 표정
이 어두워졌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거미는 지나가는 바람을 보았지만 샘이 있는 쪽으로 가는 바람
은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얼굴과 몸을 가리기 위해 갖
고 온 대추야자나뭇잎을 밧줄로 엮어 몸에 날개로 달았습니다. 물
동이와 삽을 준비했습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개미 몇을 골랐습
니다.
“자, 내 등에 업혀라. 떨어지지 않게 꼭 잡아.”
거미는 개미들을 업고 대추야자나뭇잎 날개를 흔들며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조금 전 아기바람을 타고 왔던 길을 거꾸로 더듬
어 날아갔습니다. 너무 힘겨웠지만 죽을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습
니다. 모래벌판을 건너서 언덕을 넘고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멀리
대추야자나무가 내려다보였습니다. 거미는 대추야자나뭇잎으로
만든 날개를 접으며 사뿐히 내렸습니다.
“여기가 샘이 있던 자리야. 빨리 파라. 물이 나올 때까지.”
개미들은 열심히 삽질을 했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까만 몸뚱이
는 땀에 함빡 젖어 번들거렸지만 삽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파내려갔습니다. 축축한 흙이 나왔습니다.
“자, 조금만 더 파면 물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삽 끝에 돌이 닿았습니다. 바위였습니다.
“어떻게 하지? 바위가 막고 있으니…….”
“막히면 돌아가라고 하지 않느냐? 옆으로 뚫도록 해라.”
개미들은 땅 파는 데는 선수였습니다. 바위를 피해서 옆으로 꼬
불꼬불 파내려갔습니다.
깊이 파내려가자 개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미는 걱정이 되
었습니다.
“어디까지 파내려갔니? 물이 나올 것 같니?”
그때였습니다. 꾸룩꾸룩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물줄기가 터졌습니
다. 물줄기는 분수처럼 뿜어져나왔습니다. 물줄기에 밀려 개미들
이 삽을 든 채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개미들
은 모래와 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외쳤습니다.
“물이야. 물. 물. 물 봐라.”
“만세! 이젠 살았다. 물이 나왔어.”
개미들은 서로 얼싸안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딱정벌레는 급히
동이에 물을 받았습니다. 거미도 갖고 온 물통에 물을 채웠습니다.
물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흠뻑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사막길을
들어서고는 처음 해보는 목욕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거미는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는 올 때처럼 대추야자나뭇잎 날개
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마침 아기바람이 앞서가
고 있었습니다. 거미는 날갯짓을 하면서 밧줄을 쏘아 아기바람의
허리를 감았습니다.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재빠르게 초막골로 날
아갔습니다.
“야! 거미가 온다. 물동이를 갖고 오고 있어.”
목이 말라 축 늘어져 있던 일행들은 거미가 갖고 온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다시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모두 짐을 챙겨요. 일꾼개미들이 샘터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마뱀들이 끄는 수레는 다시 어둠이 깔리는 사막을 나란히 줄
을 지어 굴러갔습니다. 긴 행렬이었습니다. 그것은 꿈틀거리며 기
어가는 기다란 한 마리의 뱀이었습니다. 주인 들쥐와 길안내자 거
미는 선두 수레의 앞자리에 앉아서 앞길을 살폈습니다. 그 모양은
꼭 카멜레온의 머리에 툭 불거져나온 두 개의 눈알처럼 뒤룩거렸
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하룻밤을 꼬박 달려서 초막골로 되돌아왔
던 실수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린 것입니다.
들쥐 일행은 샘 파던 개미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추야자나무 밑
샘터에 도착했습니다. 물통마다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며칠간 뒤
집어쓴 모래먼지도 씻어냈습니다. 물이 넉넉하니 생기가 돌았습니
다. 힘이 저절로 났습니다.
“자, 모두들 힘내요. 이제는 목적지 푸른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
습니다.”
들쥐와 거미가 제일 앞 수레에 오르며 손짓을 했습니다.
수레는 다시 나란히 줄을 지어 사막을 건너갔습니다.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다시 밤이 왔습니다. 그렇게 사막은 뜨거운
낮과 추운 밤을 번갈아 시우쇠를 당금질하듯 괴롭혔지만 물이 넉
넉한 일행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들쥐 일행은 푸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야, 장사꾼 들쥐 일행이 왔네. 모두 나와 봐요.”
수다쟁이 멧새가 나무 위에서 먼저 보고 짹짹거리며 떠들었습니다.
“뭐, 장사꾼들이 왔다고? 빨리 가봐야지.”
“먼 길 오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었소?”
풍뎅이, 여치, 무당벌레, 달팽이, 다람쥐 등 숲 속 친구들이 모두
달려나왔습니다. 갖고 온 물건들은 순식간에 다 팔렸습니다. 들쥐
일행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지만 돌아갈 일이 걱정이었습
니다. 또다시 사막을 건너갈 일을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습니다.
“여기는 참 좋은 곳이군. 모두들 생각이 어때? 여기에 눌러앉는
것이.”
들쥐가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푸른 마을
은 참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장사만
해온 들쥐가 늘 생각해온 낙원이었습니다. 떠돌이 생활도 이제는
싫어졌습니다. 들쥐의 말에 개미와 도마뱀이 서로 쳐다보며 머리
를 끄덕였습니다. 이들도 장사꾼 들쥐를 따라다니는 떠돌이였습니
다. 푸른 마을 친구들은 모두 정답게 어울려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
니다. 그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해요. 이제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은 정말 지긋지긋
해요.”
“좋아요. 다시 돌아가자면 또 어떤 고생을 하게 될지 모르잖아
요.”
숲 속 푸른 마을 친구들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환영잔치가 벌어
졌습니다. 여치, 무당벌레, 다람쥐들이 들쥐 일행을 환영하는 잔치
였습니다. 여치는 노래하고 무당벌레는 춤을 추었습니다. 요리사
풍뎅이가 음식 만드는 일을 개미들이 도왔습니다. 잔치는 낮이 가
고 밤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새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날이 밝아
도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두 달이나 사막의 무더위 속을 모래바
람과 싸워 온 들쥐 일행은 푸른 마을의 시원한 바람, 향기로운 풀
냄새, 맑은 물소리에 흠뻑 취했습니다. 그러나 낮이 되자 졸음이
왔습니다. 밤이면 걷고 낮에는 쉬거나 잠을 잤던 생활습관 때문이
었습니다.
“먼 길에 피곤할 텐데 이젠 좀 쉬십시오.”
사막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잘 아는 풍뎅이가 들쥐 일행에게 말
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는 일하러 가겠습니다.”
푸른 마을 친구들은 밤을 새우고도 피곤하지 않은가 모두 일터
로 나갔습니다. 들쥐 일행은 참으로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고 일어
났습니다.
오늘 하루도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숲 속으로는 어둠살이 소
리 없이 기어들고 있었습니다. 푸른 마을 친구들이 일터에서 돌아
왔습니다.
“어서 들쥐 일행들을 깨웁시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그런데 숲 속에서 자고 있어야 할 들쥐 일행이 보이지 않았습니
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낮과 밤을 거꾸로 보내며
살아왔기에 저녁때가 되어야 잠자리에서 깨어날 텐데.
들쥐 일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나무그늘에서 잠드는
것을 보고 일터로 나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수레까
지 모두 없어진 것으로 보아 떠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 사막을 건너 또다시 어디론가 떠난 것이었습니다.
“기어이 또다시 떠나고 말았구나. 한 세상 사는 일이 어차피 나
그넷길인데…….”
“그래서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나 봐요. 그렇지만 이렇게 서둘러
떠날 게 뭐람.”
발걸음이 빠른 다람쥐가 나무 위로 올라가서 사막 쪽을 바라보
았습니다. 어둠살이 스님의 옷 색깔로 덮여가고 있는 먼 모래언덕
모퉁이를 돌아가는 행렬이 보였습니다.
들쥐 일행은 푸른 마을을 좋아했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습관대로 해가 지자 길을 떠난 것입니다. 그들은 사막 너머 또 다
른 어느 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다람쥐가 보고 있는 사이에 그들의 행렬은 아득한 사막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모래언덕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다람쥐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마
음 한구석이 허전하게 비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세월 속을 가는 길손인데…….”
푸른 마을 친구들도 모두 나와서 사막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
다. 거기에는 어둠에 덮여가는 빈 모래벌판뿐이었습니다. 푸른 마
을 친구들은 모두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게 될 텐데, 그렇게 서둘러
갈 게 뭐람.”
들쥐 일행이 걸어간 발자국이 바람에 지워지듯이, 아쉽고 그리
운 정도 세월 속에 지워지겠지만 푸른 마을 친구들은 먼 사막 너머
로 향하는 눈길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들쥐 일행이 사라진 사막도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처럼 어둠 속에 점점 지워져가고 있었습니
다. 우리 모두가 세월 속에 지워지듯이.
김종상 선생님은 ------------------------------------------
∙ 1958년 ≪새교실≫소년소설 입선, 1960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동시 당선.
∙ 동시집 ≪흙손엄마≫, 동시조집 ≪꽃의 마음≫등 27권의 동시집.
∙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대한민국동요대상, 대한민국5·5문화상 등.
∙ 현재 새문학신문 주필,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회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인현장학상 운영위원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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