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 비평 2012년 2월호, 권두수필] 그리기 연습 - 강돈묵

신아미디어 2012. 2. 29. 08:31

리기 연습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에게 한자漢字도 가르치게 되었다. 시간이 모자
랄 때는 과제물만 부과하고 수업시간에는 다루지 못했는데, 학과에서
특별히 요구가 있어서 시간을 쪼개어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한자를 쓰지 않고 그리고 있었다. 글씨는 분명 쓰는
것이다. 상형문자라서 그럴까? 한 번 바라보고 한 획 그리고, 다시 쳐다
보고 또 한 획을 그린다. 글자가 이지러지고 모양새도 꼴불견이다. 너덧
자를 붙여서 그리다 보면 앞뒤 글자의 방傍과 변邊이 뭉쳐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여 글자수가 늘어나는가 하면 줄기도 한다.
   바라보는 데는 순서가 없으니,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부터 그려나간
다. 맨 먼저 머리를 쓰고, 마지막으로 발을 써야 한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알 바 아니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그리다 보니 발에서 시작하여
머리로도 올라간다. 당연히 필순이 엉망이다.
   글자를 그려야 한다는 데에 몰두할 뿐이지, 그 글자의 의미에 대해서
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과제로 적을 때는 얼마나 많이 그렸느냐가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다 그리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글자는
하나도 없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디고 늦더라도 한
글자씩 의미를 설명하기로 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머릿속에 남는 것이
있을 테니까. 학생들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 기억에 남을 글자부터 챙
긴다.
   삶의 보금자리인 집에서부터 출발한다. ‘家(집 가)’자를 설명한다. ‘宀
(집 면)’ 밑에 ‘豕(돼지 시)’이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이 글자에
왜 ‘豕’가 들어가는가를 묻는다. 답이 없다. 차분히 설명해가자 학생들의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한다. 용기를 얻는다.
   “중국 남쪽지방에는 뱀이 많았어. 나무 위에 집을 지어도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오는 거야. 그래서 뱀의 천적인 돼지의 집을 짓고, 그 위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거든.”
   학생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점차 흥미를 느끼고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한 발 더 나가본다. ‘舍屋’은 모두 집을 의미하는 말인데 어떻
게 다른지 묻는다. 역시 아무도 답이 없다. 물론 모르려니 하고 물은
것이니 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舍(집 사)’는 작은 집이고, ‘屋(집 옥)’은 큰 집이야. 근데 옛사람들은 얼
마나 슬기로웠는지 몰라. 마치 환경문제를 예측한 것 같아. 작은 집은
‘人(사람 인)’ 밑에 ‘吉(길할 길)’이니, 작은 집에 살면 사람이 길하고, 큰 집은
‘尸(시체 시)’ 밑에 ‘至(이를 지)’이니, 큰 집에 살면 시체에 이르게 된다고
글자를 만들었어.”
   옛사람들이 슬기로웠다고 말하는 나를 그들은 의심 없이 동조했다.
그리고 나의 수업을 신뢰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학생들이 제
출한 과제물을 꼼꼼히 점검한다. 한 자 한 자 살펴보며 획을 빠뜨린 것,
틀린 것을 표시하여 그 장을 접어서 돌려준다. 한 학생의 과제물 검사에
시간이 제법 소비된다. 많게는 삼사십 분의 시간을 앗아가기도 한다.
많이 지적한 것은 과제물의 두께가 제출할 때보다 두 배가 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학생들에게 신뢰를 얻어 점차 학습에 흥미
를 얻게 해 주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글씨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쓰는 거야.’ 하고 농
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 스스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고향의 시민체육대회에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오십 년이 지나서 만난 초등학교 시절 친구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주변머리만 남은 친구나 백발인 친구나 알아보기 어려운 것은 매일반
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댔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내게 친구는 연꽃
씨를 한 봉지 사서 반을 덜어 준다. 다음에 점검하러 내 집에 오겠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친구가 알려준 대로 연꽃 씨의 밑동을 잘라내고 심었다.
그러나 그 씨는 싹이 나오지 않았다. 친구의 마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싹을 틔워 잘 기르겠다는 나의 각오는 무너지고 말았다. 다시 씨를 구했
다. 씨앗을 판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자세하게 알려준다.
   “밑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잘라야 싹이 나와요.”
   친구가 준 씨앗을 반대쪽을 잘랐으니 싹이 거꾸로 틀 리 만무했다.
정확한 이치를 알고 씨앗을 심어야 싹이 제대로 튼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무지하여 일을 그르친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면서 보다 더
확신을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얄팍한 지식으로 화초를 기르려다가
죽인 식물도 꽤나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학생들처럼 글씨를 쓰지 못하
고, 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나의 그리기 연습은 언제나 끝이
날까.
   정확한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고 삶에 대처하여 일을 그르침으로써 주
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 경우도 제법 되는 것 같다. 이제는 깊이 있고,
확신이 있는 삶을 꾸리기 위해 좀 더 치밀한 탐구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것을 진즉에 터득했어야 했는데, 사람이 미혹하여 이제
야 깨달으니 참으로 나는 우매한 사람이다.

강돈묵 ------------------------------------------------------
문학박사, 수필가.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호서문학상 수상. 거제문화상 수상.
거제대학 교무, 학생, 교학, 평생교육원장 역임.
≪수필과비평≫, ≪대한문학≫, ≪문학세계≫, ≪포스트모던≫, ≪수필시대≫, ≪에세이스
트≫ 편집위원. ≪현대수필≫ 이사. ≪한국문인≫ 기획상임이사.
수필집 ≪러브레터와 로비레터≫, ≪놓아주기 연습≫ 외.
현재 거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