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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1월호, 그림이야기-22] 라오콘과 권투사 - 이동민

신아미디어 2012. 2. 27. 08:38

라오콘과 권투사

   미술책은 글자를 한 자, 한 자씩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림만 보면서 책장을 건둥건둥 넘기기만 해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더구나 그리스-로마 미술책을 훑어보면 눈에 익
은 작품들이 수두룩하여 책장을 빨리 넘긴다. 나칸드로의 여인상. 승리
의 니케상, 원반 던지는 사람, 창 던지는 아폴론상, 그리스 미술에서 다
루었던 크니도스, 메디치, 카피톨리노,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까지 수없
이 많다. 그중에는 라오콘 상도 있다.
   그 조각상들은 우리의 감성을 흔들어서 감동에 떨도록 하는 마력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미술사 책에 실리는 참뜻은 미술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름을 열거하였던 작품들은 미술사에
서 그리스 미술의 특징을 비교적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이번의 ‘그림 이야기’에는 미술사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보다
는 특정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미술

               
사란 미술을 지적이고,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미술작품
의 감상은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개인적인 감정의 울림으로 이루어진다.
<라오콘>과 <권투사>를 나의 개인적인 시선으로 감상하도록 하겠다.
   라오콘 상은 지금까지 보아 온 그리스 조각상과는 차이가 보인다. 결
론부터 말하자면 격렬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러한 미술 양식을 헬레니
즘 양식이라고 한다. 그리스 시대가 끝나고 알렉산더 대왕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세계화가 이루어진 그리스 시대를 일컫는다. 다양한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스가 끝나고 로마 시대로
접어드는 길목에, 또는 두 시대가 서로 겹쳐지는 시대의 작품이다.
   1506년에 로마의 근교에 있는 포도밭에서 농부의 괭이가 둔탁한 소리
를 내면서 육중한 돌멩이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었다. 그 돌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돌덩이가 아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한달음에 달려와서 감동에 젖어서 바라보았다. 오늘까지 만인들에게 두
고두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불멸의 조각 작품인 <라오콘>이 햇볕을
받으며 형체를 드러냈다. 이 조각품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이
거나, 그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 시대에 복제되었으리라고 한다. 지금
은 로마의 바티칸에 고이 모셔져 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대표작 <아이네이스>: 트로이의 영웅 아이
네아스를 찬양하고 기념하는 시이다.)는 아이네이스를 통해서 라오콘의
운명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10년 가까이나 그리스 연합군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트로이의 성문
앞에 거대한 목마가 놓여 있었다. 성을 공격하던 그리스 군들이 퇴각하
면서 그냥 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트로이는 그 목마를 전쟁의 전리품으
로 생각하고 성안으로 가져오려 하였다. 승리를 가져다 준 신들에게 감
사하기 위해서 신전에다 봉헌물로 바칠 계획이었다. 이때 트로이의 제
사장(아폴론 신전의 신관임)이었던 라오콘은 절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
다면서 반대하였다. 만약에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이면 크나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러면서 목마를 긴 창으로 마구 찌르기까
지 하였다.
   그리스 편을 들고 있던 제우스는 라오콘의 행동을 보고 노발대발하였
다. 예언은 신의 영역이다. 하잘 것 없는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제우스는 그를 징벌키 위해 거대한 바
다뱀 두 마리를 내려 보냈다. 바다뱀 두 마리는 핏발이 선 두 눈을 희번덕
거리면서 바다 위로 떠올라 해안으로 달려갔다.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면
서 해변으로 다가간 바다뱀은 라오콘의 두 아들을 감아채고, 흉측스러운
몸둥어리를 소용돌이치듯이 꿈틀거리면서 라오콘의 몸을 조였다. 뼈마
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두두둑거리면서 살과 피가 튀었다.
   아이네이스에서 표현된 대로라면 “그의 비명은 마치 도끼에 맞은 황
소의 울음처럼 공포에 질린 외마디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라고 하였다.
   그리스인들의 생각이라면 그는 ‘신성모독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마땅
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을 뿐이다. 라오콘이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 것을
목도한 트로이인들은 라오콘이 거짓말을 하였다고 믿었다. 그래서 목마
를 성안으로 옮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서야 라오콘이 옳았음이 증
명되었다. 트로이는 목마로 인하여 멸망이라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많은 그리스 비극 작품의 소재가 만들어졌다.
   세상에는 영원히 진실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인들의 믿음에는 “신에 대한 인간의 거역”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
다. 그러나 로마시대로 접어들면서 신에서 인간으로 가치의 이동이 일
어나면서 신의 지위가 약화된 반면에 인간을 위해 희생당한 영웅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라오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질 배경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아들과 함께 비참한 최
후를 맞은 라오콘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로
마인들은 신에 대한 불손한 반역이 아닌 신에 저항하는 인간의 고통에
찬 모습을 경이롭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발굴이 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더구나 미켈란젤로
가 이 작품을 두고 쏟아낸 찬사들은 이 작품을 더욱 더 유명하게 만들었
다. 원작은 그리스의 청동 조각이었으나 로마의 석조 복제품이라고 하
였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원작이 과연 그리스 시대의 작품인가 하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리스 조각 작품의 양식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조각은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것이 특징이므로(앞의 <크니
도스 비너스>에서처럼) 고통의 감정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은
그리스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두고 내심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교황청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켈란젤로는 <라오콘>을 미리 묻어두고 발
굴이라는 쇼를 연출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왜냐면 라오콘의 표현
기법이 미켈란젤로의 기법(<천지창조>의 그림)과 너무나 흡사하였기 때
문이었다. 그 이후에 헬레니즘의 후기 작품에서 <라오콘>과 같은 양식
들이 발굴되므로 그와 같은 오해는 많이 해소되었다.
   미술사가 빙켈만이 <라오콘>을 두고 그리스 미술에 대한 정의를 내릴
만큼 서양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그에 따르면 “이 조각
상은 완전무결한 미의 규범으로, 비극적 영웅의 정신적 존엄을 가장 고
도로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레싱은 빙켈만의 주장에 반박
하여 <라오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므로 이 작품은 미술사뿐 아니
라 미학 이론에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미술을 공부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귀중한 작품이 되었다.
   나는 이 작품을 사진을 통해서 처음 대하였다. 비록 사진이긴 하였지
만 그의 표정에 나타난 고통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바티칸에서 실제로 보았을 때는 오히려 감동이 사진에서만큼
진하지를 못하였다. 너무 많은 지식들이 내 감정을 갉아 먹어버려서인
지 모르겠다. 예술 작품은 지식으로 알려 해서는 안 된다. 마음으로 느껴
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지식은 참된 감상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 “그림을 알아야 보지요.” 하는 말은 잘못된 생각
인 것 같다.
   로마 미술은 그리스 미술을 흉내 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
다른 점도 있다. 로마 미술에는 자기들의 관습이 반영되어서 초상화가
많다. 그리스 미술이 가장 이상적인 인체의 모습을 나타내려 하였다면

로마 미술은 냉정하리만치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
조각처럼 매끈한 아름다움은 없지
만 대신에 가슴을 울리는 진실성
이 있다.
   내가 미술책을 넘기다가 이 청
동 조각상을 만났을 때 사전 지식
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등허
리를 꾸부정하게 하여 정신을 놓
고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서……, 그것도 응시하는 눈빛이
아니고 뒤쪽을 힐끗 쳐다보는 멍
한 표정에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이 우러났다. 제
목을 보니 <권투사>라고 하였다.
기원전 100년경의 작품이라면 라
오콘 상과 밀로의 비너스 상과는

 


 

 

 

 

 

 

 

 

 

 

 

 

 

 

 

 

 

 

 

 

 

 

 

 

같은 시대이다. 우리가 흔히 후기 헬레니즘이라고 하는 시대의 작품인
것이다.
   그때 그리스는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로마가 칼타고
의 한니발 장군을 격파하고 나서 세계사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시대이
다. 그러니 그리스 시대가 아니고 로마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라오콘>
도, <밀로의 비너스>도 모두 그리스 미술이라고 한다. 다만 이 청동 조각
상은 로마 미술로 분류되어 있다. 이 작품이 풍겨내는 분위기가 로마적
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검투사(권투사)라는 특별한 인간상을 표현한 탓이 아닐까. 검
투사라면 로마를 상징할 만큼 로마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검투사(권
투사)가 어떤 부류의 직업인(?)인지는 잘 알고 있다. 노예 신분으로서,
우리에 갇힌 맹수와 하나 다르지 않은 비극적인 인간군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는 노예반란을 일으켜 로마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스
파르타쿠스의 명연설이 어렴풋이나마 남아 있다. “내 고향은 저 멀리
푸른 산들이 휘몰아 달리면서 길게 뻗어 있고, 사이사이에 산등성이들
이 팔을 벌려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산골 마을입니다. 망아지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거리낌 없이 뛰어 놀고 있고, 새들은 끝없이 높은 창공
을 막힘없이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그 고향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
평화로웠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나도 마음껏 자유를 숨 쉬면서 들판으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싶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같았다.
   얼마 전에는 <글라디에이터(검투사)>라는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영화에서도 검투사는 자유를 뻬앗긴 채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
을 죽여야 하는 처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검투사라면 왠지
막연하나마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의가 노예들이다. 로마의 군사들이 어느 날 로마의 변방지역에서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양을 치며 살고 있는 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노예로 만들었다.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떨며 살고 있는 그들
에게 꿈이라면 어릴 때 마음껏 뛰놀았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
까.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도 돌아가고 싶은 곳은 고향이었다. 고향
은 영원히 갈 수 없는 그 어떤 것의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갈망하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돌 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권투사는 방금 생사를 건 시합을 치렀는지
아직도 손에 가죽과 납으로 만든 권투장갑을 끼고 있다. 양 팔꿈치는
그의 무릎 위쪽에 얹어 구부정하게 앞으로 숙인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
다. 그리고는 오른쪽 어깨너머로 힐끗 쳐다 보는 그의 시선이 내 감정을
한없이 깊고 어두운 골짜기로 떠밀어 넣고 있었다. 이빨은 빠져있고 한
쪽 귓바퀴는 퉁퉁 부어올라 있다. 울퉁불퉁하게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
에는 여기저기에 긁히고 피멍이 맺힌 자국들이 선명하다. 콧날은 굽어
있고, 표정은 멍하다. 저 멍한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이 조각상을 볼 때마다 스파르타쿠스의 연설이 떠오른다. 멍한
그의 표정 너머에는 졸졸거리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고, 이웃집 처녀애
가 미소를 띠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시
선의 끝자락은 하늘의 한 귀퉁이에서 산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방금 자기와 혈투를 벌였던 권투사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들
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깨 너머로 힐끗 쳐다
보는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묻어 있지 않다. 방금 전에 납으로
무장이 된 장갑을 끼고 생사를 넘나들면서 사투를 벌였던 그의 행적하
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잔인함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면 모든 것을 체념해버리는 듯한 그의 표정
은 오히려 하나의 초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잃어버린 그로서는 아무리 처절한 광경이더라도 무표정해질 수밖에 없
을 것이다.
   헬레니즘 미술의 한 흐름에는 지나치리만치 극도의 사실적인 표현이
있다. 그리고 격렬한 감정을 표출시키는 표현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라오콘>처럼 얼굴에 격렬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도 그 어느 조각상보다도 더 강렬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중용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
른다. 그러나 이 권투사 상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이 아닌 걸로
보아서 미술사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미술책을 건둥건둥 넘겨가다가 이 작품 앞에서는 오래도록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우리는 <라오콘>과 <권투사>를 통해서 그리스와 로마를 잇는 미술을
보았다. 빙켈만이 말하였듯이 그리스 미술은 고요하고, 단순하고, 위대
한 것이라면 인간을 표현하였다고 할 수 없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격렬
한 감정의 표현이 더 인간적이다. <권투사>는 그리스 미술과는 다르게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실적 표현은 로마 양식의 특징이기도 하다.
   나에게 미술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였던 두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동민 --------------------------------------------------------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 교실에서 소아학을 전공.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 교실에서 소아학을 전공.
소아의 심리 발달과 육아를 다룬 육아서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가?≫를 저술.
수필이론서 ≪수필, 누구를 쓸 것인가?≫. 수필평론서 ≪다시, 붓 가는 대로≫.
실제의 임상경험과, 육아이론으로서 심층심리와, 치료문학으로서 수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문학치료와 수필≫을 저술.
황의순문학상 수상(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