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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촌감단상] 걱정 가불 - 김새록

신아미디어 2013. 7. 15. 08:35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한답시고 정 붙이고 막 살려고 하는 것을 내막도 모르고 캐가지고 들어와 안에 가둬놓고 새살림을 차려주었으니 쯧쯧. 거두어준 마음을 헤아려 탓할 수도 없고 그저 생기를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혼자서 측은지심에 정성을 들여놓고 왜 몰라 주냐는 생각은 답답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을 미리 가불하여 전전긍긍하는 괜한 기우와 뭐가 다를까 싶었다."

 

 

 

 

 걱정 가불    -  김새록


   넘치는 정이 해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시린 바람이 부는 초겨울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데 길 가장자리의 차가운 땅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선인장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 기르다가 버린 듯했다. 얕게 뿌리를 내렸으나 제법 싱싱해 보였다. 선인장이라면 생김새와 상관없이 아열대성식물 아닌가. 추위 속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 같은 처지가 안쓰러웠다. 머잖아 닥칠 한파에 얼어 죽을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얼른 캐가지고 집으로 왔다. 화분에 옮겨 심어 놓고 양지바른 거실에 놓아두었다.
   옮긴 지 두 달이 지났건만 선인장은 줄기 가장자리가 갈라진 채 희끄무레 마른 상태로 생기를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발을 받아먹기도 하건만 전과 다르게 생동감이 없다. 새로 단장한 푸르스름한 작은 토기 화분 속에서 낯가림을 하는 것일까. 내가 건네는 말을 잠잠히 듣고만 있다. 시무룩한 선인장의 침묵을 나는 마음의 귀로 헤아린다.
   ‘나도 매화처럼 달빛 서늘하게 한기 들도록 불어닥친 동장군의 행패도 견딜 수 있거늘….’ 하는 듯한 느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매화 가지 끝에 꽃망울이 부풀어 오를 오밀조밀한 모양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갓 시집온 새댁이 적응 못하고 친정만 떠올리고 있는 듯 애처로웠다.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검색 창을 열었다. 웬걸, 나는 걱정을 가불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어 죽을까봐 우리 집으로 캐가지고 들어온 ‘손바닥선인장’은 4계절 노지에서 자연 상태 그대로 자라는 다년초 식물이었다. 특히 혹한의 영하 20℃에서도 살아나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는 우리나라 토종 선인장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한답시고 정 붙이고 막 살려고 하는 것을 내막도 모르고 캐가지고 들어와 안에 가둬놓고 새살림을 차려주었으니 쯧쯧. 거두어준 마음을 헤아려 탓할 수도 없고 그저 생기를 잃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혼자서 측은지심에 정성을 들여놓고 왜 몰라 주냐는 생각은 답답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을 미리 가불하여 전전긍긍하는 괜한 기우와 뭐가 다를까 싶었다.
   가끔씩 어디선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 자연 속에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었던 선인장 아닌가.
   깊고 넓은 대지 위에서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아픈 일을 번갈아 헤아리며 뿌리 내리는 우리네 삶이리라. 근심걱정은 접어두고 아무튼 흐르는 물처럼 살 일이다.

 

 

김새록  ---------------------------------------

   ≪수필과비평≫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달빛, 꽃물에 들다≫. 수상: 부산문학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