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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촌감단상] 내 쉴 곳은  - 백남일

신아미디어 2013. 7. 15. 08:40

"오붓한 가정을 내팽개치고 군중 속으로 뛰어든 현대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신제가 뒤에 평천하를 모토로 삼았던 한국인의 속성임에랴. 오순도순 말소리가 이어지는 울안은 오케스트라 박스와 같아서, 조화로운 음률이 배음背音으로 흐를 때 무대 위의 인생살이 또한 신바람을 타게 마련이다."

 

 

 

 

 

 내 쉴 곳은    -  백남일


   요즘 ‘가정 해체家庭解體’란 말이 세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또 있어서도 아니 될 인류 최후의 보루堡壘가 허물어지는가 싶어 자못 우려되는 바 크다. 하긴 통계청의 수치를 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가 전체의 25%를 상회하고 있으니, 네 가구 중 한 집이 ‘나 홀로 가정’이라는 의미렷다.
   봉건사회의 퇴영과 함께 대가족제도가 와해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하나 솔로solo 족이 늘어가도 유분수지 어떻게 명색이 집구석(?)인데 외톨이로 칩거해야만 한단 말인가. 가정은 혈연으로 맺어진 우리네 모듬살이의 초석으로 살붙이끼리 등 기대고 살아가는 곳을 의미하는 자립명사다. 하면, 끈 떨어진 뒤웅박 처지가 된 독불장군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천애의 고아란 말인가, 아니면 땅 속에서 솟아나온 태생적 개물個物이란 말인가?
   1846년 초겨울이었다. 미국 서부 개척민 80명이 캘리포니아 산맥을 넘다가 그만 폭설을 만나 도너 계곡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 젊은 독신 남자 15명을 빼곤 대부분이 나약한 어린이와 노인들로 구성된 가족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봄 이들이 구조됐을 때 살아남은 독신 청년은 3명뿐이었는데 비해, 소그룹으로 결속된 가족들은 노약자가 많았는데도 거개가 생존해 있었다.
   남극의 바닷새인 펭귄은 한겨울 혹한기에는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둥글게 무리지어 안팎으로 섞바꿔 돌면서 서로가 추위를 견뎌낸다.
   가족은 웬수니 뭐니 하며 서로를 타박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끈끈한 정으로 동기간의 우애를 다지며 살아가기 때문에 가계가 존속된다. 그래서 인류학자 도널드 그레이슨은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라 했다.
   지난 세기말에 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산업화 물결은 기존 가족제도의 틀을 탈바꿈시키는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 비대화된 도시 집중 현상은 농촌 공동화를 부추겼고, 핵가족화의 변신은 이혼율 증가와 독거노인들의 탄식을 증폭시켰다.
   가정의 충분조건은 집이라는 울타리와 식구끼리 보듬는 가족애다. 옛말에 재가빈역호在家貧亦好란 말이 있다. 비록 째지게 가난해도 삼간초옥 아랫목에 묻어둔 밥주발 속에는 허허로운 우주를 품고도 남을 다슨 온기가 서려있다.
   “즐거운 곳에선 날 오라 하여도―”라고 운을 떼는 세계인의 애창곡 <홈 스위트 홈>의 작자 존 하워드는 애시 당초 가정을 꾸려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집 없이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며 눈물로 지은 이 노래는 기실 노래가 아니라 숫제 절규였다. 그는 끝내 그처럼 소원했던 가정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한 채 객사하고 말았다. 그의 시체는 고향 오크 언덕의 공동묘지에 묻혀 비로소 안주했다.
   오붓한 가정을 내팽개치고 군중 속으로 뛰어든 현대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수신제가 뒤에 평천하를 모토로 삼았던 한국인의 속성임에랴. 오순도순 말소리가 이어지는 울안은 오케스트라 박스와 같아서, 조화로운 음률이 배음背音으로 흐를 때 무대 위의 인생살이 또한 신바람을 타게 마련이다.

 

 

백남일  ---------------------------------------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여백의 철학≫, 선집: ≪억새들의 춤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