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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사색의 창] 꽃불 - 최민자

신아미디어 2013. 7. 11. 13:22

"소통의 소도구이고 욕망의 심부름꾼이기도 한 꽃. 이제 알겠다. 하느님이 불을 놓는 진짜 이유 말이다. 화목火木으로 구들을 덥히듯, 사람 사람의 가슴 안쪽, 쇳덩이 같은 내연기관에 불기운을 옮겨 붙이고 싶으신 거다. 해묵은 가지와 갓 돋은 풀을 모조리 불쏘시개 삼아서라도 계산에 지치고 속도에 시달려 차갑게 식어버린 불연성不燃性 몸뚱어리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려는 것이다. 심장에 꽃불이 일지 않고는 번식이 어려운 특이동물을 아직은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꽃불   -  최민자


   하느님은 방화범, 그것도 상습적인 연쇄방화범이시다.
   설악산 오대산 내장산 골골을 단풍나무 환한 불로 태우시더니 불장난에 맛을 들이셨는가. 이 봄에 또 불을 놓으신다. 밤새워 별똥별들을 투척하셨는지 목련나무 가지 위 하얀 촛대들을 잘팍잘팍 엎지르신 건지 뒷마당 박태기나무에, 재 넘어 복숭아 과수원에, 잡목 성성한 산기슭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실성한 불길은 사납게 짖으며 등성이를 왈왈 기어오른다. 겨우내 바싹 말라 화력 좋은 산들을 널름거리는 혓바닥으로 집어삼키더니 강 건너 도심에까지 파고들 기세다. 아파트 마당에도, 골목 안에도 불기운이 번져있다. 이 도시가, 봄이 위험하다.
   왜 자꾸 불을 지르시는가. 오줌싸개 소년도 네로 황제도 아닌데 당신의 불장난으로 환해지는 세상에 무량한 희열을 느끼시는가. 불신과 탐욕으로 얼룩진 세상, 황홀한 불길로 전소해버리고 싶으신 건가.
   머리에 꽃을 꽂은 아이가 유모차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짝퉁 가방과 파마머리도 인파 속으로 섞여든다. 벚꽃 축제에 모여든 사람들은 꽃이란 걸 생전 처음 보았다는 듯, 북새통 속에서도 호들갑을 떨며 탄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어댄다. 도시의 벚꽃이 노점상들을 한철 반짝 먹여 살린다.
   키가 멀쑥한 청년 하나가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몇 걸음 앞서 여자와 걷고 있다. 교회 친구나 서클 선후배쯤 될까. 엊그제, 아니 조금 전에 처음 만난 사이일까. 주먹 하나쯤 떨어져 걷는 폼이 연인 사이는 아니다. 솔기 터진 스웨터처럼 비주룩이 웃음을 흘리는 청년도 흥성거리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꽃 같은 사랑 하나 제 청춘에 찔러 넣고 싶을 것이다. 삼십여 년 전, 남편이 처음으로 데이트를 신청한 것도 벚꽃축제에 함께 가자는 말이었다.
   소통의 소도구이고 욕망의 심부름꾼이기도 한 꽃. 이제 알겠다. 하느님이 불을 놓는 진짜 이유 말이다. 화목火木으로 구들을 덥히듯, 사람 사람의 가슴 안쪽, 쇳덩이 같은 내연기관에 불기운을 옮겨 붙이고 싶으신 거다. 해묵은 가지와 갓 돋은 풀을 모조리 불쏘시개 삼아서라도 계산에 지치고 속도에 시달려 차갑게 식어버린 불연성不燃性 몸뚱어리들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려는 것이다. 심장에 꽃불이 일지 않고는 번식이 어려운 특이동물을 아직은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최민자  -------------------------------------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집: ≪손바닥 수필≫, ≪흰 꽃 향기≫, ≪꼬리를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