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3년 5월호, 사색의 창] 지혜의 생성은 신화 예찬에서 상징예찬으로 - 배화열

신아미디어 2013. 7. 11. 08:56

"문학(특히 신화)은 과학이나 철학과 다르지만, 뚜렷한 진리관(특히 상대적 진리)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대표를 문사철(문학과 역사와 철학)이라고 한다. 문사철은 서로 도와가면서 인문학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철학에서 문과철(문학과 과학과 철학)은 문사철처럼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힐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특히 자연과학)에서 4차원(공간과 시간의 계속. 3차원의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이 합침)이 있지만, 문학처럼 타임-머신(영국의 H.G. Wells의 공상과학소설)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지혜의 생성은 신화 예찬에서 상징예찬으로   -  배화열


   나는 수년 전부터 신화 예찬자요 동시에 상징예찬자가 되었다.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논문을 통해서, 온통 신화를 예찬하고 상징예찬도 겸하고 있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시작으로, 문화철학(주로 캐시러)을 공부하고부터, 신화예찬론자와 상징예찬론자가 되었다.
   신화는 우리 주변에 가는 곳마다 널려있다. 왜냐하면 문학과 예술 그리고 문화는 신화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담기계(joke machine)로 알려진 매스미디어(대중매체)도 온통 신화로 범벅이 되어 있다. 한편 신화의 진리는 상징적 진리를 통하여,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가르친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히스토리아>는 문학이라고 한다. 철학에서 신화를 빼면 딱딱한 과학논리만 남는다. 철학도 문학과 과학의 주변을 맴돌게 되어 있다. 마크 에드먼드슨의 <문학과 철학의 논쟁>은 철학의 역할이 문학 물고 늘어지기에 다름 아니다.
   문학(특히 신화)은 과학이나 철학과 다르지만, 뚜렷한 진리관(특히 상대적 진리)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대표를 문사철(문학과 역사와 철학)이라고 한다. 문사철은 서로 도와가면서 인문학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철학에서 문과철(문학과 과학과 철학)은 문사철처럼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힐책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특히 자연과학)에서 4차원(공간과 시간의 계속. 3차원의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이 합침)이 있지만, 문학처럼 타임-머신(영국의 H.G. Wells의 공상과학소설)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과학은 철학에 대하여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칸트 이전에 과학을 무시하던 철학자들을 내쳤고, 뉴턴의 진리를 철학의 진리로 삼은 칸트를 추켜세웠지만, 다시 칸트도 내쳤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칸트 살리기에 나선 신칸트학파(캐시러 포함)와 실증주의가 나타났지만, 새로운 과학이론으로서 상대성원리나 양자론 그리고 최근의 힉스가 나타나면, 철학은 재빨리 자신의 뿌리를 찾기에 나서는데, 바로 과학에 기대려고 분주해진다. 실제로 <철학대사전>에서 철학이란 용어는 과학과 함께 발전하여왔으며,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을 물고 늘어지면서 과학에 기대는 철학, 과학에 막강한 힘을 구사하면서 철학에 뒷걸음질 치는 문학, 문학에 밀리면서 철학에 막강한 힘을 구사하는 과학은 서로 삼자가 물고 물리는 상태에 놓여있으면서, 문화를 발전시키거나 후퇴시킨다. 문화의 발전과 후퇴는 바로 아이디어의 성공과 실패에 좌우된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생성되는가. 아이디어에 관한 철학적 고찰인 ≪철학대사전≫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의어로 특히 존 로크의 이데아의 현대에 생겨난 이름으로써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데 그친다.
   그렇다면 이데아-아이디어는 과연 동의어에 그치는 것일까. 이데아는 그동안 중세에는 신의 정신으로 나타났다가, 근세에는 인간의 의식으로 살아났으나, 현대에 와서는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칸트의 순수이성이나 헤겔의 절대이념이 이데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현대는 이데아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20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문화는 캐시러에 의하면 상징이므로, 20세기는 문화의 상징 시대에 속한다. 캐시러와 더불어 엘리아데와 피아제와 프로이드와 라캉은 모두 상징사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기(1.5세)때부터 인간은 상징적 사고를 하고 있으며, 문화의 뿌리로서 아이디어나 이데아도 모두 상징에 속한다.
   성당에서 예수님의 지혜로운 아이디어에 관한 복음 내용을 들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관한 복음(요한 8장)이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사형(돌로 심판)으로 판정된 여인이다. 만약 죄를 물어 사형을 주장하면, 예수의 새로운 선언이 모두 거짓과 위선으로 드러나고, 무죄를 주장하면 실증법은 어기는 중죄로 다스릴 것이다. 죄지은 여자와 가르치는 자가 둘 다 사형을 선고 받을 위기에 놓였다. 그의 죄없는 자는 법의 집행자가 되라는 아이디어는 두 사람을 모두를 살린다.
   지혜로운 아이디어는 리스트(헝거리 음악가)와 가난한 피아니스트(리스트의 제자라고 사칭함)의 행복한 에피소드를 만든다. 법학자 K씨는 아이디어가 가난한 미술가 피카소를 부자로 만들었고, 부자 카네기를 만들었고, 가난한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모옴을 부자 작가로 만들었으며, 찰스 루이스를 이름난 뉴욕의 티파니(tiffany’s)라는 보석 상인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과연 아이디어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나는 4개의 신화(myth)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본다. 특히 신화의 원형적 이미지(archetypal image)가 세계를 바꾸는 아이디어를 생성한다고 본다. H학회에 제출한 4번째 논문도 바로 신화예찬에서 비롯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산업의 기초인 기술과 이데아와 아이디어 그리고 신화와 문화가 모두 상징임을 알아야, 신화예찬에서 상징예찬으로 나아가는 카시러의 <상징형식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는 무한경쟁의 숨막히는 전쟁의 연속이다. 아이디어가 무한대로 필요한 시대에 접어든 21세기에, 인류를 유토피아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기초는 상징산업과 상징학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일상생활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신화 예찬에서 상징 예찬까지를 연결하는 노력이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다면, 새로운 세계에서 상징의 유토피아는 자유와 평화를 구하는 민주주의 꽃을 제공하는 근원(아르케)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배화열  -------------------------------------------------
   에세이집: ≪청담예찬≫, ≪청담일지≫.